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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체 글 (240)
濟世安民 bagtur khan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지리지 권 제 7 내용이다. (1039년 06월 29일 (음)) 고려시대 사료 DBHOI kr_053r_0010_0020_0020_0040db.history.go.kr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지리지 권 제 7 내용이다.靖宗五年六月戊子 西北路大雨, 鴨江水漲, 漂失兵船七十餘艘.정종 5년(1039) 6월 무자 서북로(西北路)에 큰 비가 내려 압록강[鴨江](고려사 원문엔 압강[鴨江]으로 표기되어 있다)이 넘쳐서 병선 70여 척이 떠내려갔다.서북로(西北路)에 큰 비가 내려 압록강[鴨江](고려사 원문엔 압강[鴨江]으로 표기되어 있다)이 넘쳐서 병선 70여 척이 떠내려갔다(漂失兵船七十餘艘)라고 고려사에 기재되어 있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선 압록강으로 ..
이전에 올려드린 '두 개의 고구려, 다물(多勿), 기자조선, 우북평'의 글 일부를 좀 더 보충해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글도 보충해서 올렸습니다. 고려사와 중국의 사서들을 보면 주몽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하기 이전 이미 지금의 중국 조양시 부근엔 고구려(高句驪)라는 세력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조양시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高句驪)는 위만조선에 부속된 세력이었다고 해석됩니다.그리고 그 조양시 부근의 고구려(高句驪)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高句麗)와 한자 표기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주몽이 세운 고구려(高句麗)는 사서에 高句麗로 한자표기했고 주몽 이전에 조양시 부근에 있던 고구려(高句驪)는 한자로 高句驪로 표기했습니다.그리고 중국 조양시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高句驪)는 중국 진나라(秦)와 한..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권 제1(卷一) 세가(世家)의 내용이다. (918년 3월 미상(음)) 고려시대 사료 DB貞明四年 三月 唐商客王昌瑾, 忽於市中, 見一人, 狀貌瓌偉, 鬚髮皓白, 頭戴古冠, 被居士服, 左手持三隻梡, 右手擎一面古鏡方一尺許. 謂昌瑾曰, “能買我鏡乎?” 昌瑾以二斗米買之. 鏡主將米沿db.history.go.kr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권 제1(卷一) 세가(世家)의 원문과 번역이다.“‘三水中四維下, 上宰降子於辰馬’者, 辰韓馬韓也. ‘巳年中二龍見, 一則藏身靑木中, 一則現形黑金東’者, 靑木松也, 謂松嶽郡人, 以龍爲名者之子孫, 可以爲君主也. 王侍中, 有王侯之相, 豈謂是歟? 黑金鐵也, 今所都鐵圓之謂也. 今主初盛於此, 殆終滅於此乎! 先操雞,..
기존에 올려드린 글 중에서 청나라 민족 명칭인 만주(Mamju)는문수사리보살(文殊师利菩萨) 즉, 만주실리보살(曼殊室利菩萨)을 뜻하는 명칭이며이는 고려사에 기재된 백두산을 관장하는 신령한 존재 문수사리보살(文殊师利菩萨)이며그 백두산은 고려왕씨의 발상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따라서 왕건의 후손인 고려왕실과 고려 왕건의 후손으로 보이는 청나라황실이백두산(장백산)과 연계해 민족명칭을 문수보살(만주보살)을 뜻하는만주(Mamju, 曼殊)라는 명칭을 만들어 내었고 이후 이 만주(曼殊)가 지역명칭 의미인 만주(滿洲)로 한자표기 되어 전해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하지만 당시 제가 이 설명을 드릴 때제가 설명한 문수사리보살(文殊师利菩萨)이 만주실리보살(曼殊室利菩萨)이라는 내용에 대해선 그 근거를 밝히는 백과사전 내용을..
이전에 올린 글에서 말갈과 숙신은 기원 전후로 서로 별개의 세력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당시 말갈은 지금의 중국 승덕시에서 중국 적봉시 부근에 걸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숙신은 지금의 수화시(绥化市) 경안현(庆安县)에서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활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다가 말갈은 시간이 지나 중국 수나라 때 이후로는 예전에 숙신과 읍루가 활동했던 흑룡강 주변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아마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위만조선의 유민들이 위만조선 멸망 후 동쪽으로 이주해 지금의 요령성 동쪽(요하 동쪽, 요동)과 길림성, 한반도에서 삼한을 형성했던 것처럼,말갈과 진번(개인적으로 여진의 선조라고 추정한다) 역시 후한과 위진남북조 ..
이전에 올려드린 '일리천 전투의 고려 외국인 부대 철륵(鐵勒)1'의철륵(鐵勒 철리[鐵利])에 대해 좀 더 내용을 보충해서 올렸습니다.936년에 일어난 일리천 전투는 고려사 외에 삼국사기에서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사에서 기재된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의 번(蕃)인 철륵(鐵勒)은 철리(鐵利)로 보인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삼국사기에선 이 내용을 기재할 때 고려사와 달리 철륵(鐵勒)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철리(鐵利)로 표기하고 있습니다.따라서 기존에 제가 말씀드린 내용이 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에선 철리(鐵利)를 고려의 도(道)라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결국, 고려사 내용과 함께 검토하면 철륵(鐵勒 철리[鐵利])은 고려의 울타리이며 귀속된 세력으로서태조 왕건 때는 고려의 번(蕃) 내지는..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이다. 金史/卷1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湼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隋稱靺zh.wikisource.org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원문과 번역일부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으로 번역했다. 번역이 어색할 수 있다. 감안하시기 바란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湼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隋稱靺鞨,而七部並同。唐初,有黑水靺鞨、粟末靺鞨,其五部無聞。粟末靺鞨始附高麗,姓大氏。李勣破高..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후한서 내용이다. 後漢書/卷85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言仁而好生,萬物柢地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御,至有君子、不死之國焉。夷有九種,曰畎夷、於夷、方夷、黄夷、白夷zh.wikisource.org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후한서 내용 중 일부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武帝滅朝鮮,以高句驪為縣,使屬玄菟,賜鼓吹伎人。무제는 조선을 멸했다(한무제를 지칭한다). 이에 따라 고구려에 현을 설치했다, 현도에 속하게 했다(고구려현을 현도군에 배속시켰다는 뜻이다) , 사기를 북돋는 광대를 하사했다위의 후한서를 보면 무제는 조선을 멸했다. 이에 따라 고구려에 현을 설치했다, 현도에 속하게 했다(武帝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