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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이전에 올려드린 글 중에 '맹가첩목아의 고려(高麗) 이주 2'와 '맹가첩목아의 고려(高麗) 이주 3'의 내용을 일부 수정했기에 공지드립니다.조선의 이성계와 친밀한 세력이 된 여진족(두만강 주변에 거주하던 세력이라고 본다)은 조선 초기 기록에 그들의 직함이 옛 금나라 관리명칭인 맹안으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따라서 원나라 때도 그들의 조상은 맹안이라는 직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럴 경우 그들은 테무게 오치긴 세력이 이 지역을 분봉지로 받고 이주했을 당시 테무게 오치긴 세력과 함께 두만강 주변으로 이주했던 친원 세력 출신의 여진족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하지만 여진족에 대해서 계속 연구해보니 이들은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인 파르티잔강 주변에 거주하다 두만강 주변으로 이주한 야라나 흑수의 후..
고려 때 저술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각각 주몽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그런데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 고대 사료 DB권 제1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db.history.go.kr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본문과 번역이다.髙句麗髙句麗即卒夲扶餘也. 或云 “今和州又成州䓁”, 皆誤矣. 卒夲州在遼東界.고구려(高句麗)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더러는 말하기를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이다.”라고들 하나 모두 잘못이다.졸본주는 요동지역에 있다.삼국유사의 저자는 주몽이 세운 졸본부여(고구려)의 위치가 요하(遼河) 동쪽인 요동(遼東)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
이전에 올려드린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했기 때문에 공지드립니다. 기존에 올려드린 글을 수정한 이유는 고려와 거란의 국경은 지금의 개원시(開原市)와 철령시(鐵嶺市) 동쪽 어느 지점에서 지금의 영안시(宁安市)와 접한 남쪽지역까지 선을 그은 후 그 선의 남쪽이 고려의 영토라고 보기 때문에 이전에 올려드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또한 길주(吉州)의 위치에 대한 제 견해도 바뀌었기 때문에 수정했습니다(이전에 올려드린 글에선 지금의 길림성 길림시[吉林市]에서 백두산 사이의 어느 지역에 고려가 세운 길주[吉州]가 있었다고 봤었는데 지금은 흑룡강성 수분하시[绥芬河市] 남쪽에 길주[吉州]가 있었다고 봅니다). 고려가 동여진(東女眞) 내지 동번(東蕃)과 전투를 벌여 확보..
요사(遼史)를 읽어보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요양시(遼陽市)가 거란 때의 동경(東京)인지 의구심이 든다.학자들은 지금의 요양시(遼陽市)를 거란 때의 동경(東京)으로 보기 때문에 이때까지 올린 글에서도 그렇게 기술했지만, 요사(遼史)를 읽어보면 지금의 요양시(遼陽市)가 거란 때의 동경(東京)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 개인적인 견해론,지금의 요양시(遼陽市)는 거란의 동경(東京)은 아니며 동경(東京)에서 관할하던 동경(東京)의 속현이었고 아마도 지금의 요양시(遼陽市)는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에서 관할하던 학야현(鶴野縣)과 그 주변이며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려의 국경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된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학야현(鶴野縣) 주변이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거란의 중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