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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의 내용 일부 수정합니다. 본문

태조왕건과 삼한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의 내용 일부 수정합니다.

박지원( baghatur khan) 2024. 4. 21. 12:46

이전에 올려드린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했기 때문에 공지드립니다.

기존에 올려드린 글을 수정한 이유는 고려와 거란의 국경은 지금의 개원시(開原市)와 철령시(鐵嶺市) 동쪽 어느 지점에서 지금의 영안시(宁安市)와 접한 남쪽지역까지 선을 그은 후 그 선의 남쪽이 고려의 영토라고 보기 때문에 이전에 올려드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또한 길주(吉州)의 위치에 대한 제 견해도 바뀌었기 때문에 수정했습니다(이전에 올려드린 글에선 지금의 길림성 길림시[吉林市]에서 백두산 사이의 어느 지역에 고려가 세운 길주[吉州]가 있었다고 봤었는데 지금은 흑룡강성 수분하시[绥芬河市] 남쪽에 길주[吉州]가 있었다고 봅니다).

고려가 동여진(東女眞) 내지 동번(東蕃)과 전투를 벌여 확보한 길주(吉州)는 갈라전(曷懶甸) 안에 있다고 기재한 금사(金史)의 기록이 보입니다(물론, 금사[金史]에선 길주[吉州]라는 명칭을 사용하진 않았고 9성이라고만 기재했다). 그리고 갈라전(曷懶甸)은 합란(갈라, 합라, 청나라에선 해란이라고 칭한다)에 속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합란(갈라, 합라, 청나라에선 해란이라고 칭한다)을 지금의 함경북도 함흥 주변이라고 보는 것은 조선 때 조선학자들이 동북 9성을 함경도 지역으로 보던 견해의 연장일 뿐이고, 정작 여진의 역사를 다룬 금사(金史)에선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또한 금사를 해석해보면 고려가 세운 길주(吉州)는 지금의 수분하(금사[金史]에선 소빈수로 기재했다) 주변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고려가 세운 길주(吉州)는 지금의 함경북도 길주(吉州)가 아니라고 봅니다.

청나라에선 갈라전(曷懶甸)이 속한 합란(청나라에선 해란으로 칭한다)의 지역적 범위를 지금의 중국 영안시(宁安市) 서북쪽에서 대략 두만강보다 위 지역으로 범위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합란(갈라, 합라, 청나라에선 해란이라고 칭한다)에 속한 갈라전(曷懶甸)은 이 지역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고려는 동여진(東女眞), 동번(東蕃)과 전투를 벌이면서 전투의 지역적 범위가 늘어났다고 보입니다. 고려는 지금의 하얼빈 아성구에 위치한 완안부여진과 러시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야라(耶懒) 두 세력를 견제하면서 갈라전(曷懶甸)에서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야라(耶懒)와도 어느 정도 무력 충돌을 벌였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완안부여진은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그 주변의 부족들을 공격한 것 아닌가 판단됩니다.

그리고 고려사에 기재된 개마산(盖馬山) 동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큰 바다(大海)를 끼고 있다는 여진(女眞)은, 하얼빈시 아성구에 거주하는 완안부여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파르티잔강(빨치산강, река Партизанская, Partizanskaya River)이나 아니면 그 주변에 거주하던 야라(耶懒)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선 후에 다시 언급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수정한 글인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입니다.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

고려 초기인 990년에서 993년 당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 이북 요성을 포함한 어느 지역까지이며 백두산 북쪽 어느 지역까지도 고려의 영토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또한 936년 일리천 전투 때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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