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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아래는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를 나타낸 구글지도이다.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에서 서쪽으로 흑룡강을 넘으면 중국의 흑하시이다.중국 흑하시에서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트와 인접한 곳에 전설상의 인물인 부쿠리용숀과 그가 활동하던 부쿠리산 그리고 그 후손들로 이루어진 만주나라(Manju nation)가 있었다고 한다. 블라고베셴스크 · 아무르스카야 러시아아무르스카야 러시아www.google.co.kr 아래는 중국 흑하시를 나타낸 구글지도이다.빨간 점선이 중국 흑하시이며 부쿠리산은 이 점선 안에서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에 인접해 있다고 한다. 헤이허 시 · 중국 헤이룽장 성중국 헤이룽장 성www.google.co.kr 청나라는 후르카족의 기원 전설인 부쿠리용숀의 만주나라(Manju nation) 전설을 수정해서 새로운 내..
후르카(胡里改) 부족의 묵시커라는 노인이 전해준 구전된 전설이 아닌 청나라에서 새롭게 각색한 전설에 따르면,부쿠리용숀은 부쿠리산을 떠나 일란할라(하얼빈시 의란현)로 이주한 후 그 곳에서 원주민들의 추대를 받아 일란할라(하얼빈시 의란현)의 지도자가 된다.그리고 청나라 사서에선 일란할라(하얼빈시 의란현)에 거주하게 된 부쿠리용숀과 그를 지도자로 추대한 일란할라(하얼빈시 의란현)의 원주민들을 만주(滿洲)로 칭하고 기술한다.즉, 청나라 기록에 의하면 만주(滿洲)은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다.(물론, 이 내용은 각색된 전설이고 천제셴이 저술한 '누르하치[돌베개 출판]'에 따르면 만주구룬[만주국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명칭이 문서로 확인된 것은 1613년 누르하치의 건주세력[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 때라고..
1777년 청나라 건륭제의 지시에 의해 편찬된 만주원류고를 보면 '권1'의 '부족1'에 만주, 숙신, 부여를 기술하고 있다.이 중에 숙신과 부여는 기원전에 형성된 세력과 나라이며 실제로 주변국들과 교섭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에 비해,만주(누르하치의 만주구룬이 아닌 부쿠리용숀이 부쿠리산에 세운 만주나라[Manju nation]를 뜻한다)는 위의 숙신, 부여와 달리 그 성격이 특이하다.구전으로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 부근 중국 부쿠리산에서 활동하던 부쿠리용숀의 후손들을 만주나라(Manju nation) 사람이라고 칭했다 한다. (만주족 이야기, 이훈 저, 너머북스 출판, 페이지 194)그리고 역시 구전으로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에서 거주했던 후르카부..
우리나라에선 아래와 같은 내용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홍타이지가 기존의 여진족들을 만주족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기존의 여진족은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의 근거가 되는 1635년 홍타이지가 선포한 조서의 내용을 보면,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홍타이지가 선포한 조서의 실제 내용은 다르다. 즉, 청태종 홍타이지가 선포한 내용은,"명나라에서 사용하는 명칭인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며 이들 중에 여진족은 없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행정구역상으론 명나라의 건주에 거주하고 있어서 명나라에서 우리를 건주여진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원래 명칭은 만주였으며 아버지 누르하치 때에도 우리는 만주국이라고 칭했었다, 따라서 우리 만주(..
국내에서 사용하는 만주의 의미와 청나라에서 밝힌 만주의 의미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만주라는 의미는 지역 명칭으로 인식한다.예를 들어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고구려의 근거지는 만주 지역 요동이었다!" 등등. 하지만 만주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는 만주라는 명칭을 어떤 지역의 명칭이라고 정하지 않았다. 즉, 1635년 청태종 홍타이지가 내린 조서를 보면,만주는 홍타이지 자신의 세력인 만주(명나라에선 누르하치 세력을 건주 내지는 건주여진이라고 칭했지만 누르하치는 자신들 세력을 스스로 칭할 때 만주라고 칭했다. 다만 대외 관계에선 건주라고도 칭했다)와 홀라온 4대 부족을 통괄하는 전체 집단의 명칭으로 정의를 내렸다. 또한 몽골 부족인 호르친 부 인접 지역에서 거주하던 시..
고려 초기인 990년에서 993년 당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 이북 요성을 포함한 어느 지역까지이며 백두산 북쪽 어느 지역까지도 고려의 영토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또한 936년 일리천 전투 때 송화강과 흑룡강 일대에 거주하던 달고, 철륵, 흑수가 고려의 제번으로서 고려군 소속으로 출전한 고려사 기록을 볼 때 고려태조 왕건 당시 이들은 고려에 간접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거란이 등장하면서 이들 제번에 대한 영향력은 약화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고려와 거란간에 군사적 충돌과 화해로 이어지면서 고려가 거란을 상국으로 인정했지만 그 반면 철리국(철륵)은 이전처럼 고려에 다시 귀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철리국(鐵利國)에서 고려에 귀부를 타진하는 내용..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나 역사 강사들의 강의와 책을 읽어 보면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책을 보면,고려 초기의 영토는 북쪽으로 청천강 이남까지이고 남쪽으론 함경남도 일부까지라고 이야기하거나 기술한다. 그런데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고려왕건의 후예이자 우리 집안과 같은 계열로 보는 청나라 황제가 명령해 편찬한 만주원류고(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직접 지시해서 편찬한 책이다)를 보면 고려 초기의 영토는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나 내가 고등학교 때 교과서 그리고 현재 역사강사들의 강의 내용과는 차이가 난다. 고려사는 고려 때를 다루는 사서이지만 이 기록은 조선 초기의 기록이다.또한 천문지리에 관한 '지'는 조선의 학자들이 고려 당시 등장하는 지역이 현재 조선의 어느..
우리나라 사료에서 단군을 처음으로 언급하는 책은 삼국유사이다.그리고 약 7년 후에 제왕운기에서도 단군을 언급한다.두 책에서 기재한 단군에 대한 내용은 차이가 난다.단군에 대한 한자 표기도 다르고 단군 이야기도 중요 부분에서 다르다.현재 우리나라에선 단군의 한자 표기는 제왕운기에 기재된 한자를 따르고,단군 이야기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재된 스토리를 따른다.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이 한자 표기와 스토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각자 하나씩 인용해서 사용하면 그 표기에 따른 스토리의 뉘앙스를 해석할 수 없다고 본다.또한 내 개인적인 견해론,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한 책이라고 본다.즉, 이 두 책엔 실제 역사 보다는 이 책을 집필한 저자나 그 저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