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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린 '두 개의 고구려, 다물(多勿), 기자조선, 우북평'을 보충설명했습니다. 본문

태조왕건과 삼한

이전에 올린 '두 개의 고구려, 다물(多勿), 기자조선, 우북평'을 보충설명했습니다.

박지원( baghatur khan) 2024. 9. 25. 18:40

이전에 올려드린 '두 개의 고구려, 다물(多勿), 기자조선, 우북평'의 글 일부를 좀 더 보충해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글도 보충해서 올렸습니다.

고려사와 중국의 사서들을 보면 주몽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하기 이전 이미 지금의 중국 조양시 부근엔 고구려(高句驪)라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양시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高句驪)는 위만조선에 부속된 세력이었다고 해석됩니다.

그리고 그 조양시 부근의 고구려(高句驪)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高句麗)와 한자 표기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몽이 세운 고구려(高句麗)는 사서에 高句麗로 한자표기했고 주몽 이전에 조양시 부근에 있던 고구려(高句驪)는 한자로 高句驪로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조양시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高句驪)는 중국 진나라(秦)와 한나라(漢) 때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삼국사기 저자는 삼국사기에 기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한(前漢, 西漢) 때 개국한 주몽의 고구려(高句麗)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존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개의 고구려(高句驪, 高句麗)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삼국사기 저자는 주몽이 기존에 있었던 한나라 현도군 고구려현(漢 玄菟郡 高句驪縣)에서 새롭게 고구려(高句麗)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보고 있고,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저자는 주몽이 지금의 요동(遼東) 내지는 마한(馬韓)지역에서 고구려(高句麗)를 세웠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올린 글에선 두 고구려(高句驪, 高句麗)는 한자 표기도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았기에 이전에 올린 글 중에서 한자표기도 다르다는 내용을 정확히 적시했습니다.

아래는 이전에 올린 글 중 일부 내용을 보충한 글입니다.

 

두 개의 고구려, 다물(多勿), 기자조선, 우북평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14 고구려본기(髙句麗本紀)의 모본왕(慕本王)에 대한 내용이다. (음력 49년의 기사이다)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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