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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8 (수정된 내용) 본문
고려 초기인 990년에서 993년 당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 이북 요성을 포함한 어느 지역까지이며 백두산 북쪽 어느 지역까지도 고려의 영토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또한 936년 일리천 전투 때 송화강과 흑룡강 일대에 거주하던 달고, 철륵, 흑수가 고려의 제번으로서 고려군 소속으로 출전한 고려사 기록을 볼 때 고려태조 왕건 당시 이들은 고려에 간접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거란이 등장하면서 이들 제번에 대한 영향력은 약화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고려와 거란간에 군사적 충돌과 화해로 이어지면서 고려가 거란을 상국으로 인정했지만 그 반면 철리국(철륵)은 이전처럼 고려에 다시 귀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철리국(鐵利國)에서 고려에 귀부를 타진하는 내용이다.(1021년 03월 18일 (음))
고려시대 사료 DB
世家 卷第四 축소 좁게 확대 열기 닫기
db.history.go.kr
아래는 고려사 본문과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번역이다.
癸巳 鐵利國遣使, 表請歸附如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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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 철리국(鐵利國)에서 사신을 보내 예전처럼 귀부할 것을 청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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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如舊)이라고 기재한 것을 봐서 이전 일리천 전투 때처럼 철리국(철륵)이 고려에 귀부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인다.
또한 이 날이 1021년 3월이니 거란과의 전쟁을 치룬 1019년에서 2년이 지난 후이다.
철리국(鐵利國)이 이전처럼 고려에 귀부한다는 것은 서로간에 영토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 짐작되고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에서 백두산 북쪽과 동북쪽 어느 지점까진 지켜냈고 종전 후 거란으로부터 고려 영토로 인정받았다고 해석된다.
즉, 고려는 거란을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섬기기로 한 대신에 고려의 영토를 확고히 하여 실리를 얻었다고 추정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그러한 흔적 중 하나가 바로 윤관이 완안부여진을 공격할 때 고려 기록에 등장하는 고려동계 영토 안의 장춘역(長春驛) 아닌가 생각된다.
아래는 동북 9성에 대한 다음백과사전 내용이다.
동북 9성
1107년(예종 2) 고려가 동북면 지역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정벌하고 1108년에 그 지역에 쌓은 9개의 성. 고려는 국초부터 여진족과 관계를 맺었는데, 11세기 중반 이후 북만주
100.daum.net
동북9성은 윤관이 동여진 내지는 동번을 공격하고 점령지에 쌓은 9개의 성, 즉 9개의 도시이다.
이 9개의 성(9개의 도시)이 어느 지역인가 항상 의문이었는데 함경도일대라는 설과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설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함경도일대는 아니라고 보며 백두산에서 북쪽방향인 지금의 하얼빈시 아성구에 완안부여진의 근거지가 있었고, 지금의 러시아 파르티잔강 부근에는 야라가 있었으며 아성구에서 야라까지 가는 길 주변엔 지금의 수분하(소빈수)가 있으니
고려가 9성을 쌓은 지역은 완안부여진의 본거지인 하얼빈시 아성구와 지금의 러시아 파르티잔강 부근에 야라까지 선을 그은 후 그 선의 남쪽을 범위로 잡고,
그 범위 안에서 지금의 영안시 남쪽도 범위로 잡은 후 백두산에서 동북쪽 어느 지점에서 지금의 수분하 주변 그리고 남쪽으론 지금의 해란강 주변 안에 동북 9성이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거리가 한참 떨어진 함경도 함흥이나 길주에다 점령지라며 성(도시)을 세우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열전 윤관에 대한 내용이다.
고려시대 사료 DB
瓘·延寵, 至東界, 屯兵于長春驛, 凡十七萬, 號二十萬. 分遣兵馬判官崔弘正·黃君裳, 入定·長二州, 紿謂女眞酋長曰, “國家將放還許貞·羅弗等, 可來聽命.” 設伏以待. 酋長信之, 古羅等四百餘
db.history.go.kr
아래는 위의 고려사 내용 중 일부를 원문과 번역 그대로 올린 거다. 그대로 옮긴다.
瓘·延寵, 至東界, 屯兵于長春驛, 凡十七萬, 號二十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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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이 동계(東界)에 이르러
장춘역(長春驛)에 병사를 주둔시켰는데 무릇 17만으로 20만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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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을 보면 윤관이 고려 동계인 장춘역에 17만명의 고려 군사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이 고려사 내용을 보면 고려의 영토인 동계 안에 장춘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다시 위의 고려사 내용 중 일부를 원문과 번역 그대로 올린 내용이다.
瓘又分遣諸將, 畵定地界, 東至火串嶺, 北至弓漢伊嶺, 西至蒙羅骨嶺.
又遣日官崔資顥, 相地於蒙羅骨嶺下, 築城廊九百五十閒, 號英州, 火串嶺下, 築九百九十二閒, 號雄州, 吳林金村, 築七百七十四閒, 號福州, 弓漢伊村, 築六百七十閒, 號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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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이 또 여러 장수를 나누어 보내 지계(地界)를 획정(劃定)하였는데, 동쪽으로는 화곶령(火串嶺)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궁한이령(弓漢伊嶺)에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몽라골령(蒙羅骨嶺)에 이르렀다.
또 일관(日官) 최자호(崔資顥)을 보내어 몽라골령 아래의 땅을 살펴 성랑(城廊) 950칸을 짓고 영주(英州)라고 불렀으며, 화곶령(火串嶺) 아래에 992칸을 짓고 웅주(雄州)라 불렀으며, 오림금촌(吳林金村)에 774칸을 짓고 복주(福州)라고 불렀으며, 궁한이촌(弓漢伊村)에 670칸을 짓고 길주(吉州)라고 불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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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고려사 내용을 보면,
고려 윤관은 완안부 여진을 정벌한 후 그 부근에 고려의 지역인 주(州)를 설치하는데, 그 중 길주(吉州)라는 지명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여기의 길주가 지금 함경북도의 길주(吉州)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학자들 중엔 그렇고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래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지도이다. 옛 완안부 여진의 근거지인 하얼빈시 아성구 지도이다.
아청 구 ·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www.google.co.kr
하얼빈시 동남쪽에 빨간색 점선으로 둘러진 곳이 옛 완안부여진의 근거지 아성구이다.
그리고 아성구에서 서남쪽에 지금의 장춘시가 있고 남쪽엔 지금의 길림시가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지금의 장춘시가 고려사에 기재된 고려동계에 속한 장춘역은 아니다. 다만 고려의 장춘역은 한반도보다는 북쪽이라고 본다.
또한 고려 윤관이 완안부여진을 정벌한 후 고려의 새로운 도시로 만들었다는 고려의 길주 역시 지금의 함경북도 길주는 아니고 한반도보다는 북쪽에 있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의 장춘시와 길림시는 당시 완안부여진의 근거지인 하얼빈시 아성구와 멀지 않은 지역이고 백두산 북쪽 어느 지점의 고려경계와 하얼빈시 아성구 사이에 위치한다.
조선의 도승지(현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된다) 이수광은 자신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건주의 누르하치는 고려 왕건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홀온(홀라온, 명나라식 명칭으론 해서여진이다. 이수광이 가리킨 홀온은 홀라온 세력 중 울라를 지칭한다)의 하질귀(부잔타이)는 고려 때 여진을 정벌하러 간 고려 군인의 후손이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하질귀(부잔타이)의 근거지가 바로 이 길림시(당시의 울라) 일대이다.
즉, 이러한 내용을 보면 고려가 완안부여진과 군사적 충돌을 한 곳은 함경도 지역은 아니라고 본다.
고려는 완안부여진이 있는 지금의 하얼빈시 아성구와 지금의 러시아 지역인 야라(耶懒)를 견제하면서 동여진(東女眞) 내지 동번(東蕃) 세력과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두만강 바깥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보며 완안부여진과 야라(耶懒) 두 곳도 견재하면서 동여진(東女眞) 내지 동번(東蕃)을 정벌을 했다고 본다. 따라서 고려는 공격과 방어를 해야할 지역적 범위가 매우 넓었다고 본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 3월 20일의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
○癸酉/視事。 上謂諸臣曰: "高麗 尹瓘將十七萬兵, 掃蕩女眞, 拓置州鎭, 女眞至于今, 皆稱我國之威靈, 其功誠不少矣。 瓘之置州也, 有吉州, 今之吉州, 與古之吉州同歟? 高皇帝覽朝鮮地圖, 詔曰:
sillok.history.go.kr
아래는 위의 세종 15년에 조선 세종이 신하들에게 이른 내용이다. 원문 번역 그대로 올린다.
上謂諸臣曰: "高麗 尹瓘將十七萬兵, 掃蕩女眞, 拓置州鎭, 女眞至于今, 皆稱我國之威靈, 其功誠不少矣。 瓘之置州也, 有吉州, 今之吉州, 與古之吉州同歟? 高皇帝覽朝鮮地圖, 詔曰: ‘公險鎭以南, 朝鮮之境。’ 卿等參考以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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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고려의 윤관(尹瓘)은 17만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女眞)을 소탕하여 주진(州鎭)을 개척해 두었으므로, 여진이 지금까지 모두 우리 나라의 위엄을 칭찬하니, 그 공이 진실로 적지 아니하다.
관이 주(州)를 설치할 적에 길주(吉州)가 있었는데, 지금 길주가 예전 길주와 같은가.
고황제(高皇帝)가 조선 지도(地圖)를 보고 조서(詔書)하기를, ‘공험진(公險鎭) 이남은 조선의 경계라. ’고 하였으니, 경들이 참고하여 아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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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은 신하들에게 "옛 고려 윤관이 완안부 여진을 정벌한 후 주(州)를 설치했고
그 주에 길주(吉州)가 있는 데 그 길주가 지금의 함경도(함길도) 길주(吉州)이냐?" 며 묻는 내용이다.
즉, 조선 세종도 함경도 길주가 그 당시 고려의 길주인지 확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지금의 역사 교재에서 당시 고려가 세운 길주가 지금의 함경도 길주인 것처럼 기술하는 것은
조선 세종 집권기 이후에나 등장한 견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아래는 중국 유기백과에 기재된 요나라의 행정구역인 장춘주에 대한 내용이다.
長春州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zh.wikipedia.org
아래는 유기백과에서 설명하는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遼聖宗重熙八年(1039年),設置長春州,建韶陽軍。簡稱春州,
治所在長春縣(今吉林省乾安縣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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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주는 요나라 성종 8년인 1039년에 설치한 요나라 행정구역이며, 장춘주를 통치하는 중심부는 장춘현이고 그 위치는 지금의 길림성 건안현 북쪽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마무리 된지 약 20년 후에 거란에서 설치한 새로운 행정구역이다.
아래는 거란에서 설치한 장춘주의 중심지 장춘현이 있었던 길림성 건안현을 표시한 구글지도이다.
첸안 현 · 중국 지린 성 쑹위안 시
중국 지린 성 쑹위안 시
www.google.co.kr
지금의 중국 장춘시와는 위치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장춘시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간 송원시 일대이다.
아래의 내용은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아마도 고려와 거란은 전쟁을 치룬 후 고려는 거란을 황제의 나라로 인정하고 섬기는 대신 지금의 길림성 건안현 남쪽의 어느 지역과 흑룡강성 수분하 주변의 어느 지역을 경계로 해서 지금의 건안현과 수분하 부근의 어느 지역은 거란의 영역으로 확정했고 그 보다 남쪽은 고려의 영토로 확정했다고 본다.
그 결과 전쟁 후 20년 이 지나서 송원시 일대인 장춘현을 거란이 장춘주를 관할하는 치소로 세웠다고 본다.
일단 거란 입장에서는 고려와 전쟁 후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고려와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고려의 상국이 되었고 고려는 속국이 되었다.
그 대신 고려는 지금의 길림성 일부와 흑룡강성 일부를 고려의 영토로 확정지었다.
그리고 그 지역 안에 고려 동계에 속한 장춘역이 있었다고 본다.
거란 입장에서 보면, 당장은 송나라가 소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다시 상황에 따라선 고려와 송나라가 힘을 합쳐 거란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거란은 명분을 얻는 선에서 고려는 실리를 얻는 선에서 서로 합의를 봤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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