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만주'와 '여진'의 구별(홍타이지와 만주) 본문

고려 태조 왕건과 청 태조 누르하치

'만주'와 '여진'의 구별(홍타이지와 만주)

박지원( baghatur khan) 2022. 12. 25. 21:20

내에서 사용하는 만주의 의미와 청나라에서 밝힌 만주의 의미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만주라는 의미는 지역 명칭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고구려의 근거지는 만주 지역 요동이었다!" 등등.

 

하지만 만주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는 만주라는 명칭을 어떤 지역의 명칭이라고 정하지 않았다.

 

즉, 1635년 청태종 홍타이지가 내린 조서를 보면,

만주는 홍타이지 자신의 세력인 만주(명나라에선 누르하치 세력을 건주 내지는 건주여진이라고 칭했지만 누르하치는 자신들 세력을 스스로 칭할 때 만주라고 칭했다. 다만 대외 관계에선 건주라고도 칭했다)와 홀라온 4대 부족을 통괄하는 전체 집단의 명칭으로 정의를 내렸다.

 

또한 몽골 부족인 호르친 부 인접 지역에서 거주하던 시버족(석백족)은 여진족의 조상인 초오 머르건을 배출한 부족이라고 밝히면서 이 여진족은 만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으로 칭한다)나 홀라온 4대 부족과는 처음부터 다른 계통이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청나라 홍타이지가 1635년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의를 내리기 전,

이미 홍타이지의 아버지 청태조 누르하치 때도 만주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었다.

 

만주어로 작성된 기록이나 구만주당 기록에 보면,

1613년과 1616년 '만주구룬(만주국)'이나 '만주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천제셴은 자신의 저서인 '누르하치'에서 밝히고 있다. ('누르하치' 천제셴 저, 돌베개 출판, 페이지 21 참조)

 

그럼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아가서 청태종 홍타이지가 정의한 만주에 대한 내용부터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청태종 홍타이지에 대한 위키백과 내용이다.

 

숭덕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숭덕제(崇德帝, 1592년 11월 28일(음력 10월 25일) ~ 1643년 9월 21일(음력 8월 9일))는 후금의 제2대 한이자, 청나라의 창업 군주이다. 휘는 아이신 교로 홍 타이지(만주

ko.wikipedia.org

아래는 위의 위키백과에 기재된 설명내용이다. 위키백과 내용 그대로 올린다.


릭단 칸은 1634년 감숙 지역에서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에 홍 타이지는 1635년 9월 13일
도르곤, 요토, 사하랸, 호오거 등으로 하여금 차하르를 정벌하여
릭단 칸의 아들 어르커 어저이 콩고르와 수타이 태후의 항복을 받아내고,

수타이 태후의 처소에 있던 쿠빌라이 카안 이래 몽골 제국 카안의 권위를 상징하는
'제고지보(制誥之寶)'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
'대원전국(大元傳國)'이라는 이름의 금으로 만든 도장을 획득했다.


1635년 12월 30일, 홍 타이지는 '주션'이라는 이름을 폐기하고
'만주'를 여진 종족들의 공식적이고 유일한 이름으로 선포했다.

의 위키백과 내용은 홍타이지가 1635년 12월 30일 주션(여진)이라는 명칭을 금지시키고 만주를 자신들을 지칭하는 유일한 공식 명칭으로 선포하는 내용이다.

 

또한 그 전 문장을 보면 홍타이지가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인 몽골 차하르 부족을 정벌하여 차하르 부족의 릭단 칸(임단 한) 아들과 수타이 태후에게 항복을 받아낸 후 옛 칭기즈칸 제국의 종주인 대원(원나라) 옥새를 획득한 내용이 보인다.

 

즉, 홍타이지가 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만주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옛 대원제국의 옥새를 획득한 이후의 일이다.

 

몽골 차하르 부족의 릭단 칸에 대해서 짧게 설명드리면, 홍타이지 아버지 누르하치 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동북3성 지역에선 누르하치가 건주를 통일하고 이후 홀라온의 4개 부족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이들을 병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시기 몽골 지역 역시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인 차하르 부족의 릭단 칸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다른 몽골 부족들을 병합하려 충돌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릭단 칸에 대항하는 부족들 역시 칭기즈칸 집안의 후손이 지도자로 있던 부족들이었다.

 

즉,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2대에 걸쳐 동북3성 지역에서 여진어 사용 세력들을 통합한 후,

홍타이지는 당시 몽골 세력들을 통합하려던 릭단 칸까지 누르고 몽골의 대표적인 세력인 차하르 부족까지 병합한 것이다.

 

차하르 부족은 옛 대원 제국의 황제이자 대칸인 쿠빌라이 칸(고려 충선왕의 외할아버지이다)의 직계 후손 세력으로서 당시 몽골 지역에서 유일하게 대칸을 배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던 부족이었다.

 

원래 칭기즈칸의 후손이 아니면 대칸이 될 수 없는 것은 칭기즈칸 제국이 분열과 멸망 후에도 계속 각각의 계승국들 사이에서 이어지던 확고한 원칙이었다.

 

또한 이 당시가 되면 칭기즈칸의 후손이나 칭기즈칸 동생들의 후손

즉, 황금씨족들이 각각의 몽골 부족에서 칸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대칸은 차하르 부족에서 배출하던 상황이었다.

 

그런 원칙이 있던 상황에서 차하르 부족이 홍타이지에게 옛 원나라 옥새를 바치고 후에 차하르 부족 출신의 역사학자인 사간 세첸 홍타이지가 "옛 칭기즈칸의 정권은 홍타이지의 아버지 누르하치로 계승되었다"고 밝힌 것은('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저, 사계절 출판 페이지 195 참조)

 

차하르 부족 역시 홍타이지가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고려 왕씨 출신의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본다.

 

여기에 대해선 후에 다시 자세히 설명드리겠다.

 

아래는 다시 위키백과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따로 해설한 내용이다.


만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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ᠵᡠᡧᡝᠨ ᠰᡝᡵᡝᠩᡤᡝ ᠰᡳᠪᡝᡳ ᠴᠣᠣ ᠮᡝᡵᡤᡝᠨ ᡳ ᡥᡡᠨᠴᡳᡥᡳᠨ ᡴᠠᡳ᠈ ᡨᡝᡵᡝ ᠮᡠᠰᡝ ᡩᡝ ᠠᡳ ᡩᠠᠯᠵᡳ᠈ ᡝᡵᡝᠴᡳ ᠵᡠᠯᡝᠰᡳ ᠶᠠᠶᠠ ᠨᡳᠶᠠᠯᠮᠠ ᠮᡠᠰᡝ ᡤᡠᡵᡠᠨ ᡳ
ᡩᠠ ᠮᠠᠨᠵᡠ ᠰᡝᡵᡝ ᡤᡝᠪᡠ ᠪᡝ ᡥᡡᠯᠠ᠈ ᠵᡠᡧᡝᠨ ᠰᡝᠮᡝ ᡥᡡᠯᠠᡥᠠ ᡩᡝ ᠸᡝᡳᠯᡝ᠈



tere inenggi. han hendume. musei gurun-i gebu daci manju.
hada. ula. yehe. hoifa kai. tere-be ulhirakū niyalma jušen sembi.
jušen serengge sibei coo mergen-i hūncihin kai. tere muse-de ai dalji.
ereci julesi yaya niyalma muse gurun-i da manju sere gebu-be hūla.
jušen seme hūlaha-de weile.

— 만문원당(滿文原檔)

해석
이 날에 한()이 말하길,
"우리의 나라의 이름은 본래 만주, 하다, 우라예허, 호이파이니라.
그것에 무지한 사람들이 주션(여진)이라 한다.


주션(여진)이라는 것은 시버의 초오 머르건의 후예이니라.
그들(여진)이 우리(만주, 하다, 우라, 예허, 호이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로부터 앞으로 모든 이들은 우리 나라(만주국)의 본래 이름인 만주라고 부르라.
주션(여진)이라고 부르면 죄이다."

 

의 내용을 우리나라에선,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들인 청태종 홍타이지가 옛 칭기즈칸의 몽골까지 병합하자 새로운 민족 명칭인 만주족이라는 명칭을 만들었다!"라고 해석한다.

 

실제 역사적 순서로 보면,

아버지 누르하치는 건주 내의 각 부족(명나라식 용어로 건주여진 내의 6개 부족)을 병합한 후 홀라온(명나라식 용어로 해서여진)과 동해나라(명나라식 용어로 야인여진)의 일부까지 병합한다.

 

누르하치는 이들 나라들을 병합한 후엔 "여진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을 정복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누르하치는 "여진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을 정복했다!"고 했지 "여진족을 정복했다!"거나 "여진 부족들을 정복했다!"고 하진 않았다.


"한인 나라에서 동쪽으로 해 뜨는 쪽의 동해에 이르기까지, 조선 나라에서 북쪽으로,

몽골 나라에서 남쪽으로, 주션(여진) 언어를 말하는 나라가 금년에 완전히 평정되었다."

                              ('만주족 이야기, 이훈 지음, 너머북스 출판' 페이지 150과 446에서 [만문노당: 천명 4년 10월 조] 인용)

 

누르하치는 이들이 여진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며 그 아들인 홍타이지 역시 위의 조서에서 보면 이들은 여진족이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에 누르하치 때부터 자신들 세력인 건주를 만주구룬(만주국)이라고 칭했지만 좀 더 만주라는 명칭을 확장시켜 홀라온 4개 부족까지 만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만주가 무슨 뜻인지 밝히진 않았다.

 

홍타이지가 언급한 '우리나라의 본래 이름이 만주'라는 것은 이미 1613년 아버지 때부터 사용했던 자신들의 세력인 만주국(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 칭한다)을 언급하는 내용이라고 해석 된다.

 

그리고 하다, 우라, 예허, 호이파는 홀라온(홀온, 명나라에선 해서여진이라 칭한다)을 구성하는 4개의 대표적인 부족 내지 세력을 뜻한다.

홍타이지는 이 세력들도 원래 여진족이 아니라고 선포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이들이 옛 완안 아골타의 금나라 후예라고 알고 있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당시 홍타이지가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고륵산 전투 때 이들 홀라온 4개 부족과 함께 힘을 합쳐 자신의 아버지 누르하치를 공격했던 시버족(석백족)은 홀라온의 4개 부족(우라, 하다, 예허, 호이파)과는 본래부터 다른 계통이며, 이 시버족(석백족) 출신 인물인 초오 머르건의 후예가 여진족이라고 선포한다.

 

이와 같은 홍타이지 발언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식과는 다르지만 사료를 보면 홍타이지의 발언은 맞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선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겠다.

 

즉,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홍타이지는 현재 우리나라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을 선포한다.

 

우리나라에선 홍타이지가 기존의 여진족들을 만주족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고 기존의 여진족이 만주족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홍타이지가 선포한 조서 내용을 보면 현재 남아있는 시버족의 예를 보듯이 여진족은 원래 따로 있고

 

자신들 만주는 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하지만 원래 여진족이 아니며 또한 명나라에서 해서여진이라고 칭하는 홀라온(홀온)의 4대세력들 하다, 울라, 여허, 호이파 역시 여진족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결국, 홍타이지 발언은 기존의 여진족을 새로운 명칭인 만주족으로 바꾼 것이 아니다.

 

홍타이지의 조서를 해석해 보면 "만주족으로 바꾼 여진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도출 된다.

 

홍타이지 세력인 만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와 홍타이지의 명령에 의해 만주로 명칭이 바뀐 홀라온 4개 부족(울라, 하다, 여허, 호이파)은 본래부터 여진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옛 여진의 금나라 지역에 거주하고 있고 현재 여진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명나라로 부터 건주여진, 해서여진으로 불리며 여진족 취급을 받고 있는 만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와 홀라온의 4개 부족(울라, 하다, 여허, 호이파)은 본래 여진족이 아니니,

 

정확히 구별해서 앞으로 이들 만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와 홀라온 4개 부족(울라, 하다, 여허, 호이파)은 여진족으로 부르지 말라고 홍타이지가 조서를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