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만주(滿洲)가 형성되는 과정 1 본문

고려 태조 왕건과 청 태조 누르하치

만주(滿洲)가 형성되는 과정 1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1. 4. 14:12

1777년 청나라 건륭제의 지시에 의해 편찬된 만주원류고를 보면 '권1'의 '부족1'에 만주, 숙신, 부여를 기술하고 있다.

이 중에 숙신과 부여는 기원전에 형성된 세력과 나라이며 실제로 주변국들과 교섭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에 비해,

만주(누르하치의 만주구룬이 아닌 부쿠리용숀이 부쿠리산에 세운 만주나라[Manju nation]를 뜻한다)는 위의 숙신, 부여와 달리 그 성격이 특이하다.

구전으로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 부근 중국 부쿠리산에서 활동하던 부쿠리용숀의 후손들을 만주나라(Manju nation) 사람이라고 칭했다 한다. (만주족 이야기, 이훈 저, 너머북스 출판, 페이지 194)

그리고 역시 구전으로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에서 거주했던 후르카부족들은 부쿠리산에서 의란현으로 이주한 '부쿠리용숀'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만주족 이야기, 이훈 저, 너머북스 출판, 페이지 194)

아래는 후르카족에게 구전으로 전해지던 부쿠리용숀 전설을 기록한 구만주당(舊滿洲檔, 満文原檔) 천총 9년(1635년) 5월 6일조의 기록이다.

이훈 교수의 저서인 '만주족이야기(너머북스 출판)'에서 발췌한 내용 그대로 올린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대로 부쿠리산 아래 불후리 호수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지방에는 글과 문서가 없고 옛날에 살았던 것을 차례대로 말하여 전해온 것에 의하면
그 불후리 호수에 하늘의 세 처녀 엉굴런, 정굴런, 퍼쿨런이 목욕하러 왔는데, 까치가 준
붉은 과일을 막내 처녀 퍼쿨런이 얻어 입에 머금자 목구멍으로 들어가서 임신하여
부쿠리 용숀을 낳았습니다.
그 일족이 만주 나라 사람입니다.
그 불후리 호수의 둘레는 100리, 사햘리얀 울라(흑룡강)로부터 120~130리입니다.
 
나에게 두 아들이 태어난 후, 그 불후리 호수로부터 이주하여 가서 사할리얀 울라의
나르훈이라는 곳에서 살았었습니다."
(후르카족 노인 묵시커의 증언을 기재한 만주족이야기(이훈 저, 너머북스) 페이지 194의 내용)

위에서 올린 실제 부쿠리용숀의 전설은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 동화를 연상시키는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는 누르하치 사후 그의 아들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1635년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의 후르카 부족을 정벌한 후 그 지역에서 포로로 잡아온 후르카 부족 노인인 묵시커가 전해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후르카 부족 노인이 전해준 내용을 청나라가 구만주당(舊滿洲檔, 満文原檔)에 기재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로 구전되던 부쿠리용숀과 그의 후손인 만주나라(Manju nation) 사람 전설은,

후에 청나라의 공식 사서에선 새로운 내용을 삽입해서 새로운 내용들로 추가된 스토리로 등장하게 된다.

본래 전설에는 없던 부쿠리용숀의 성씨가 아이신기오로씨라는 구절이 삽입되었으며,

부쿠리산에서 거주하던 부쿠리용숀이 그 지역을 떠나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으로 이주했다는 내용도 첨가해서 삽입했다.

또한 의란현으로 이주한 부쿠리용숀의 후손이 하얼빈시 의란현 출신인 알타리만호부(斡朵里萬戶府)의 만호(萬戶, Tumen)인 맹가첩목아라며 역시 실제 전설에도 없는 새로운 내용을 첨가해서 삽입한다.

그리고 청나라 공식 사서에선 이 알타리만호부(斡朵里萬戶府)의 만호(萬戶, Tumen)인 맹가첩목아가 바로 청나라 태조인 누르하치의 선조라고 주장한다.

이런식의 스토리라면,

전설상의 인물인 부쿠리용숀은 맹가첩목아의 선조이고 알타리(斡朵里)부족 만호(萬戶, Tumen)인 맹가첩목아는 청태조 누르하치의 선조가 되어,

결국 부쿠리용숀의 후손은 청태조 누르하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본래 구전되던 전설에다 청나라가 등장한 후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로 삽입해서

변형된 전설을 청나라 공식 사서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청나라 공식 문서라고 해도 사실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누르하치의 후손인 청나라 황제들과 청나라 기록에선,

누르하치가 알타리만호부(斡朵里萬戶府)의 만호(萬戶, Tumen)인 맹가첩목아 후손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누르하치 본인은 생전에 자신의 조상이 맹가첩목아라고 발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실제 부쿠리용숀 전설에선 맹가첩목아가 부쿠리용숀의 후손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부쿠리용숀은 하얼빈시 의란현으로 이주했다는 내용도 없다.

(다만 의란현에 거주하는 후르카 부족이 부쿠리용숀을 자신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부쿠리용숀 사후 그의 후손이 어느 시점에 고향을 떠나 의란현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자들은 다른 내용 들도 언급하면서 청나라 사서의 기록을 부정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누르하치가 부쿠리용숀이나 맹가첩목아의 후손이 아닌 가장 확실한 증거는,

누르하치의 아들 청태종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부쿠리용숀과 맹가첩목아의 후손이라는 혈통으로는 몽골의 대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 누르하치 역시 자신의 아들을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로 지을 수도 없다. 콩타이지(Qong Tayiji 渾台吉)는 몽골에서 칭기즈칸의 후손을 뜻하는 칭호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르하치가 몽골 할하([喀爾喀], kalka) 바요트([巴約特], bayot)부족의 엉거더르타이지(恩格德爾台吉 Enggeder Tayiji, 엉거더르타이지는 칭기즈칸집안인 황금씨족 출신이다)로부터 1606년 쿤둘런 한(Kundulen Han, Kündelen Qa'an)이라는 '한(Han, 칸[Qa'an])'으로 높임을 받았던 사실과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쿠빌라이칸(忽必烈 可汗)의 후손인 몽골 차하르(Čahar 察哈尔)부족으로부터 옛 원나라의 옥새를 받고 칭기즈칸의 후손만이 가능한 몽골의 대칸이 되었다는 사실(차하르[Čahar 察哈尔]부족은 당시 몽골에서 유일하게 대칸을 배출할 수 있는 세력이다),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손인 사간세첸콩타이지(萨冈彻辰洪台吉)가 자신의 저서 몽골원류(蒙古源流)에 기재한 '누르하치는 칭기즈칸의 정치적 계승자'로 기재한 내용 역시 설명할 수가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차하르(Čahar 察哈尔)부족 출신인 사간세첸콩타이지(萨冈彻辰洪台吉)가 몽골 대칸이 된 청나라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를 언급하지 않고 청나라 홍타이지의 아버지인 누르하치를 칭기즈칸의 정치적 계승자로 인정한 것은 ,

누르하치가 고려 왕건 혈통의 칭기즈칸 후손이라는 사실의 반영과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누르하치의 실제 의사인 공동통치를 따르지 않고 정권을 행사한 것에 대한 몽골 차하르(Čahar 察哈尔)부의 태도 모두를 반영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 내가 열거한 사실들은,

모두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와 태종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칭기즈칸의 혈통 및 후손일 때 이해가 되고 해석이 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같은 논리로 누르하치의 조상이 옛 완안 아골타의 금나라 황족일 수도 없다.

덧붙여서, 청나라 홍타이지(Hong Taiji 皇太極)가 1635년 12월에 선포한 조서나 건륭제가 만주원류고에서 직접 언급한 발언에서도 청나라 누르하치 집안은 여진족이나 옛 금나라 황족인 완안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