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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금씨족 '아이신기오로(황금겨레, 황금씨족)' 본문

고려 태조 왕건과 청 태조 누르하치

청나라 황금씨족 '아이신기오로(황금겨레, 황금씨족)'

박지원( baghatur khan) 2021. 10. 19. 12:41

 

아래는 황금가족(황금씨족)에 대한 중국유기백과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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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알기로는 칭기즈칸의 형제와 그 후손을 황금씨족(황금가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중국유기백과에선 황금가족(황금씨족)을 넓은 의미와 협의로 나눈 후,

협의의 개념으론 칭기즈칸의 아들인 툴루이(拖雷)와 쿠빌라이(忽必烈)를 포함한 툴루이(拖雷)의 자식들을 황금씨족(黃金氏族) 내지는 황금가족(黃金家族)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몽골에선 Altan urug이라고 칭하고 중국에선 주로 황금가족(黃金家族) 우리나라에선 주로 황금씨족(黃金氏族)으로 칭한다.

 

칭기즈칸 동생의 직계후손 출신인 '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바타르'박사는 황금씨족(黃金氏族)이라는 명칭을 자신의 저서에서 '김씨(金氏)'라고 축약해서 기재한다. (팍스몽골리카와 고려[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바타르 저 ,출판사: 혜안] 페이지 29)

 

그리고 같은 책에서 충선왕 이후 고려왕들은 원나라 황금씨족(黃金氏族)의 피를 받는 과정으로 기재하고 있다.

즉, 김씨(金氏)의 수혈을 받는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팍스몽골리카와 고려[출판사: 혜안] 페이지 29, 229)

 

몽골간섭기 당시 고려왕 뿐만 아니라 충선왕의 심왕 왕위를 계승한 충선왕의 조카 '심양왕' 왕고 역시 '고려 왕씨'지만 부인은 '양왕 중샨(쿠빌라이의 증손자이다. 즉 황금씨족이다)'의 딸 '눌룬공주'와 결혼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 주장은 몽골왕족, 즉 황금씨족(黃金氏族, Altan urug)과 결혼한 고려왕씨는 고려왕실만이 아니라 고려왕씨 중 고려내 유력집안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집안은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고려 현종 이전까진 고려왕씨면서 고려황실과는 사돈 집안이었고 고려 내에선 매우 유력한 집안이었다.

즉, 고려가 초기에 족내혼이었기에 가능했던 지위였다.

 

하지만 고려 현종 이후 고려의 외척이 신라계가 되면서 그 과정에서 고려왕씨 원래 기풍이 없어지고 고려와 고려 왕실이 신라화가 되어 가면서 우리집안과 고려왕실은 서로 공조와 견제를 오고 가는 관계로 바뀌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사료와 증거는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이후 우리집안도 몽골왕족과 통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손이 우리집안과 청나라 황실로 본다.

 

즉, 우리집안과 청나라 황실은 고려 왕건의 후손이지만 태조 왕건의 5황후의 후손인 현종의 후손이나 태조 왕건의 9부인의 후손인 유금필 장군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개성왕씨와는 고려 왕건의 후손이라는 공통점 외엔 계통이 다른 집안이다.

 

청나라 황실의 성씨는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àixīnjuéluó)'이다.

 

만주어로 '아이신(àixīn)'은 한자로 愛新으로 표기한다.

愛新(àixīn, 아이신)은 뜻을 풀이한 것이 아니라 'àixīn(아이신)'을 중국인들이 들리는데로 한자로 표기한 음차표기이다.

 

만주어 'àixīn(아이신)'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황금(黃金)내지 금(金)으로 번역된다.

만주어로 juéluó(기오로, 교로)는 한자로 覺羅(각라 juéluó), 覺落(각락 juéluò)으로 표기한다.

 

이 覺羅(각라 juéluó)나 覺落(각락 juéluò)은 뜻을 풀이한 것이 아니라 만주어 juéluó(기오로, 교로)를 중국인들이 들리는 데로 한자로 표기한 음차표기이다.

 

만주어 juéluó(기오로, 교로)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겨레, 씨족(氏族), 가족(家族)으로 번역된다.

 

즉, 청나라 황족의 성씨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의 우리나라 번역은 황금겨레 내지는 황금씨족(黃金氏族)이라고 번역된다.

 

이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씨는 누르하치 시대인 1612년 보인다고 하지만,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원나라 '쿠빌라이 칸(세첸 칸)'의 직계 후손 부족인 몽골 차하르 부족을 병합하고

 

만주와 몽골, 중국을 아우르는 국가로

즉, 옛 칭기즈칸 제국인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를 승계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후금'에서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면서 청나라 문서에서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씨가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몽골 차하르 부족은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에게 병합되는 과정에서 홍타이지를 몽골의 '대칸(복드칸)'으로 인정하고 누르하치 집안과 자신의 집안은 같은 집안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 역사학 교수인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의 저서 '만주족의 역사[출판사 돌베게]'의 페이지 173에 보면 이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차하르 부족 출신의 역사학자 사강 세첸 홍타이지 역시 후에 자신의 저서 '몽골원류'에서 청나라 홍타이지의 아버지 누르하치를 칭기즈칸의 정치적 계승자로 기재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의 저서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출판사: 사계절]'의 페이지 195에 기재되어 있다.)

 

이 몽골 차하르 부족 출신인 '사강 세첸 홍타이지'도 청나라 태종과 같은 '홍타이지'인 것을 보면 '청나라' 홍타이지는 칭기즈칸의 혈통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청태종 '홍타이지'라는 이름 역시 몽골에선 '칭기즈칸'의 후손들 중 최고의 실력자에게 칭하는 용어이다.

 

또한 홍타이지의 아버지 누르하치는 누르하치와 동시대 인물인 조선의 도승지(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이수광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고려 왕건의 후손이라는 말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볼 때 청나라 황실의 성인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씨는 '칭기즈칸' 집안을 나타내는 Altan urug(알탄우륵) 즉 황금씨족(黃金氏族)이라는 뜻이다.

 

다만 몽골 간섭기의 고려왕이나 심양왕,고려왕씨 집안 중 우리집안이나 청나라 황실은 황금씨족(黃金氏族)의 직계 후손이 아니고 외가를 황금씨족(黃金氏族)으로 하는 후손이기 때문에 칭기즈칸(成吉思汗) 황금씨족(黃金氏族)은 아닌 후손이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청나라 황족은 자신들의 성씨를 칭기즈칸의 아들 툴루이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뜻하는 Altan urug(알탄우륵)과 같은 뉘앙스이자 만주어 발음인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로 표기했으며,

 

이를 번역하면 황금겨레, 황금씨족(黃金氏族)이 되고 이 황금씨족(黃金氏族)을 축약하면 김씨(金氏)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가 문을 닫으면서 청나라 황족이나 왕족들이 중국내에서 탄압을 받을 때 이들이 각각 여러가지 다른 성씨들로 바꿨지만 그러한 청나라 황족 중 유력한 집안들은 김씨(金氏)로 바꾸었다고 본다.

 

즉, 청나라 황실의 성이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이고 이들 중 유력 집안이 신해혁명 후 김씨(金氏)로 바꾼 것은 이들이 신라 김씨여서도 아니고 옛 완안 아골타의 금나라 황족 출신이어서도 아니다.

 

옛 금나라 황족의 성씨는 김씨가 아니라 완안 씨 즉, 왕씨이다. 또한 옛 금나라를 기리는 뜻도 아니다.

 

누르하치가 후금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자신들이 다른 주변 부족들을 정복하면서 이 지역의 주된 정서인 옛 완안부 금나라의 전통성을 누르하치가 계승한다는 상징성을 표방한 전략이었고 방편이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신라왕자 출신인 궁예 대왕이 옛 고구려 땅을 점령한 후 그 지역 고구려 유민의 정서를 반영해서 국호를 '고려'로 한 것이나,

경상도 상주 출신의 견훤 대왕이 옛 백제 지역을 장악한 후 그 지역 백제 유민의 정서를 반영해서 국호를 '백제'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사실 여진족도 아니고 옛 완안부의 금나라의 후예도 아니기 때문에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는 몽골까지 병합한 이후엔 자신들 만주는 여진족이 아니라고 공표했으며 여진이라는 단어 역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라는 단어는 1612년 만주어 기록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즉, 1635년 몽골의 칭기즈칸의 직계인 차하르 부족을 병합한 후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다만 1635년 이후 본격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누르하치 집안이 고려왕건의 후손인 칭기즈칸의 후손이기 때문에 칭기즈칸 직계 후손인 차하르 부족을 병합한 이후인 1635년 이후에 칭기즈칸 Altan urug(알탄우륵, 黃金氏族, 황금씨족)과 병합된 여러 몽골 부족들을 의식해서 주로 사용하긴 했지만,

 

꼭 칭기즈칸의 집안과의 일체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씨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사실, 누르하치 집안은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후손은 되지만 황금씨족(黃金氏族)에 해당되진 않는다.

 

따라서 황금씨족(黃金氏族) 내지는 황금겨레라는 의미의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라는 성씨를 사용해 칭기즈칸 집안과의 인연을 의식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본다면 청나라 황제나 누르하치 집안에겐 굴욕이 된다.

 

우리집안의 예나 고려사의 편년통록에서 보듯 고려 왕건의 후손인 누르하치 역시 스스로를 당나라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의 후손이라는 자의식이 있었다고 본다.

 

또한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이 존경한 인물이 당나라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따라서 누르하치 내심엔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의 원나라 황실 내지는 황금씨족(黃金氏族 Altan urug)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의식에서

 

당나라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을 친가로 하고 외가 쪽은 칭기즈칸의 Altan urug(황금씨족 黃金氏族)으로 하는 칭기즈칸의 황금씨족(黃金氏族 Altan urug)과는 또 다른 황금씨족(黃金氏族)인 àixīnjuéluó(아이신기오로, 황금겨레, 黃金氏族)씨를 만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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