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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오저개(烏底改), 올적개(兀的改), 올적합(兀狄哈) 그리고 와집(窩集) 본문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야인여진'에 대한 설명이다.
위의 위키백과에서 표기한 '야인여진'이라는 명칭은
명나라 후기에 명나라에서 사용하던 명칭이다.
'누르하치' 세력은 이들을 '야인여진'이라고 칭하지 않았고
'동해' 내지는 '동해나라사람' 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이훈 저, 만주족이야기 페이지 97, 너머북스)
또한 '누르하치'가 홀온강(지금의 호란하)에서 기원하고
송화강 주변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홀라온(명나라에선 해서여진으로 칭한다)의 4개 세력과
이들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 일부를 정복한 이후
청나라 기록인 '구만주당'에선
"주션(여진)말을 쓰는 사람들을 정복했다"고 기록했지
"주션(여진)인을 정복했다"라고 선포하고 기록하진 않았다.
(이훈 저, 만주족이야기 페이지 106, 너머북스)
즉, '청나라'는 이들을 가리켜 '여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칭했지
이 세력들을 '여진족'이라고 표기하고 기록하진 않았다.
예를 든다면 브라질이나 자메이카 정도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은
예전에 스페인에게 점령당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현재도 이들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스페인 사람은 아닌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들 '동해나라'는 크게 3개의 세력으로 나뉜다.
'워지', '후르카', '와르카' 이다.
이들 중에 '후르카'는 조선에선 '화아아'라고 칭했는데
조선 초기엔 '후르카(화아아)'와 '올량합(오랑캐)'을 서로 구별해서 표기하다가
후엔 서로 구별하지 않고 두 세력 다 올량합(오랑캐)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같은 계통이기 때문에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나라 기록에서는 이 '후르카'와 '와르카'도 초기엔 구별하다가
홍타이지 때부터 후르카와 와르카의 호칭 구별을 없앴다고 한다.
(이훈 저, 만주족이야기 페이지 396, 너머북스)
내 개인적인 견해론 후르카와 와르카 역시 후르카와 오랑캐 처럼
같은 계통이라고 보아 구별의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따라서 '동해나라사람' 가운데 후르카와 와르카를 같은 계통으로 본다면
나머지 '워지(와집)'는 별개의 세력이다.
아래는 중국유기백과에 기재된 '오덕개인'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오덕개인에 대한 중국 유기백과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옮긴다.
烏德蓋人長期以漁獵為生。古稱烏惹或兀惹,窩集,意為「林中人」。 金代稱之為「兀的改」或「烏底改」(屬胡里改路管轄)。元代稱之為「斡拙」,兀者野人, 明代稱「野人女真與兀良哈」,兀狄哈,清代則稱「窩集」(森林人)。 他們在森林中活動捕殺毛皮動物,因此又叫捕貂鼠人。 |
즉, 이들은 바로 '우디거(우데게)'인이며 각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호칭에 변화가 있지만
누르하치 시대엔 바로 '워지(와집)' 즉, 동해나라사람에 해당되는 부족인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불렸는데
옛 명칭으론 烏惹(오야) 혹은 兀惹(올야)로 불렸으며
금나라 땐 올적개, 오저개, 원나라 땐 올자야인,
명나라에선 올적합(이 백과사전에선 올량합[兀良哈]도 표기 되어 있지만
내 사견으론 올량합[兀良哈 오랑캐]은 투르크 계열로서 올적합[兀狄哈 우데개]과는
서로 다른 계열이다), 청나라에선 와집으로 불린 세력이다.
이들 중 올적개(兀的改), 오저개(烏底改), 올적합(兀狄哈)은
중국어로 발음하면 대략 우데게, 우디거로 발음된다.
즉, 조선에서 표기하는 兀狄哈(올적합 우데개)은
바로 이 세력에서 기원한 명칭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 거주지는
무단강 중상류와 우수리강 주변이라고 한다.
이 유기백과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이들은 금나라가 세워지기 이전 烏惹(오야)
혹은 兀惹(올야)로 불리던 세력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兀惹(올야)에 대한 유기백과 내용이다.
이들 '올야'는 '발해'의 유민들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설명하는 '오사국'이다.
아래는 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오사국'을 설명하는 내용 본문이다. 그대로 올린다.
이 나라의 왕을 ‘오사성 부유부 발해염부왕(烏舍城浮渝府渤海琰府王)’ 또는 줄여서 ‘발해염부왕’·‘발해왕’ 등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아 발해인들이 지배 계층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은 오소도(烏昭度)·오소경(烏昭慶)이 996년 이전부터 1004년까지 이 곳의 지배자였던 데에서도 확인된다. 오씨(烏氏)는 발해 귀족 성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은 올야부(兀惹部)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여진족의 일파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오사국'의 주민 구성원은
위의 중국 유기백과에서 설명하는 '올야(兀惹)'인
즉, '오야(烏惹)'인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선
이들이 여진족의 일파라고 기재하고 있는데
나는 이들을 발해 유민으로 보며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아니라고 본다.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오사국 이후
금나라 시기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인을 칭하는
올적개(兀的改), 오저개(烏底改),
명나라 시기엔 올적합(兀狄哈)이라는 명칭이 나왔으며
이들은 한자 표기로는 차이가 있지만
한자의 중국어 발음은 '우디거' 내지는 '우데게'로 발음된다.
즉, 兀的改(올적개), 烏底改(오저개), 兀狄哈(올적합)은
모두 한자의 의미와 상관없는 여진어 우데개의
한문 음차표기라는 것이다.
아래는 금나라 왕족인 '완안 안'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위의 유기백과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보인다. 그대로 올린다.
'完顏晏為人明敏多謀略,通曉契丹字。天會元年(1123年),烏底改叛。 金太宗吳乞買駕幸北京...' |
이 내용을 보면 금나라 때에 '오저개(烏底改 우데개)'가
금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내용이 등장한다.
즉, 오야(烏惹, 후에 오저개로 불린다)인들이
주된 구성원이었던 오자국 이후
이들 오저개(烏底改)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병합된 종속민이지 금나라 주류인 여진족은 아니다.
'우데개(烏底改 오저개)'는 여진어로
'야인' 내지 '야만인'을 뜻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이 금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는 등
금나라에서 이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출신세력 명칭 자체가 비하하는 멸칭의 늬앙스로 바뀐 것 같다.
따라서 여진족과 올적합(兀狄哈 우데개)은
서로 같은 세력도 아니며 출신부터가 서로 다른 세력들이다.
종합하면, 이들 '올적합(兀狄哈 우데개)'을
학자들이 '여진족의 일파'로 보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본다.
아래는 중국 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 권1의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중국 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 권1의 내용 중 일부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으로 번역했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子景祖,諱烏古廼。遼太平元年辛酉歲生。自始祖至此,已六世矣。 ......................
是時,遼之邊民有逃而歸者。
及遼以兵徙鐵勒、烏惹之民,
鐵勒、烏惹多不肯徙,亦逃而來歸。
遼使曷魯林牙將兵來索逋逃之民。
景祖恐遼兵深入,盡得山川道路險易,或將圖之,乃以計止之曰:
「兵若深入,諸部必驚擾,變生不測,逋戶亦不可得,非計也。」
曷魯以為然,遂止其軍,與曷魯自行索之。
|
금경조, 휘는 오고내이다. 요태평 원년 신유해에 태어났다.
금나라 시조를 기준으로 6대 후손이다.
..................................
당시 요나라 주변 사람들이 도망쳐 귀부해왔다.
(이들이 요나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완안부 여진 영역으로
귀부해왔다는 뜻으로 보인다)
요나라 병사는 철륵(鐵勒)과 오야(烏惹) 사람들의
거주지역을 옮기려 하였으나
철륵(鐵勒)과 오야(烏惹)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고 도망갔다가 다시 귀부했다.
(철륵과 오야 사람들이 요나라 병사들로부터 탈출해
완안부 영역으로 귀부한 것으로 보인다)
요나라는 갈로 림아(요나라 관직명칭)가
도망한 사람들을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도록 시켰다.
경조(景祖, 이 책에선 경조라고 표기했지만
이 당시는 금나라가 세워지기 전이니 완안부족장 오고내이다)는
요나라 병사들이 깊숙이 들어와 산과 강과 도로의 험하고 평탄함을 숙지하고
후에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일을 도모할까봐 계책을 내어 그들을 막았다.
오고내는 갈로에게 말하길
"깊숙히 들어오면 여러 부족들이 동요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며,
도망자도 찾지 못할 것이니 좋은 계획이 아닙니다."
갈로도 당연하다고 여겨 군사들의 행동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갈로는 함께 수색을 했다.
(요나라 관리 갈로가 요나라 병사들을 물리고 오고내와 함께
완안부 여진 영역을 수색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위의 내용은 '금사'에 기재된
금나라 경조(景祖) 완안오고내(完颜乌古乃)에 대한 내용이다.
이 당시는 아직 금나라가 등장하기 전이며
완안오고내(完颜乌古乃)는 완안부 여진족의 지도자였다.
이 내용을 보면 요나라가 주변 변경인들을 강제이주 시켰고
강제이주에 반항하는 철륵(鐵勒)과 오야(烏惹) 사람들이
후에 금나라가 되는 완안부 여진족 영역으로 도망쳐서 귀부(歸)하게 되고
이에 요나라 군대가 완안부 여진족 영역으로 들어가 이들을 체포하려고 하자
요나라 군대가 철륵(鐵勒)과 오야(烏惹) 사람들의 체포를 명목으로
완안부 여진족 영역으로 들어와서 지형을 파악하고는
후에 완안부 여진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완안오고내(完颜乌古乃)가
자신이 완안부 여진족의 지도자라는 신분에 입각해서
요나라 관리 갈로를 제지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에서 보듯 금나라를 세우는 완안부 여진족과
철륵(鐵勒) 그리고 오야(烏惹)는 서로 다른 세력으로서
금사에선 서로 구별해서 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철륵(鐵勒)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바로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이며 이 출신들을
후에 오랑캐(兀良哈 올량합)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오야(烏惹)는 후에 우데개(兀狄哈 올적합)라고 불리게 된다.
이 금사의 내용을 보아도 여진족과 올량합(兀良哈 오랑캐)
그리고 올적합(兀狄哈 우데개)은 서로 다른 세력인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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