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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오랑캐, 여진, 올적합의 구별 본문
아래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조선 태조 이성계 때의 일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내용이다.
위의 조선왕조실록 내용엔 여진어 사용부족 지도자들이 조선태조 이성계에 인사를 온 내용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출신과 명단을 도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여진(女眞)이라고 표기했지만 여진으로 보긴 힘든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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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 두만(斡朶里豆漫) 협온 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
화아아 두만(火兒阿豆漫) 고론 아합출(古論阿哈出)· 탁온 두만(托溫豆漫) 고복아알(高卜兒閼)· 합란도다루가치(哈闌都達魯花赤) 해탄가랑합(奚灘訶郞哈)· |
여진으로 표기했고
옛 금나라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세력 |
삼산 맹안(參散猛安)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闌帖木兒)·
이란 두만 맹안(移闌豆漫猛安) 보역막올아주(甫亦莫兀兒住)· 해양 맹안(海洋猛安) 괄아아화실첩목아(括兒牙火失帖木兒)· 아도가 맹안(阿都哥猛安) 오둔완자(奧屯完者)· 실안춘 맹안(實眼春猛安) 해탄탑사(奚灘塔斯)· 갑주 맹안(甲州猛安) 운강괄(雲剛括)· 홍긍 맹안(洪肯猛安) 괄아아올난(括兒牙兀難)· 해통 맹안(海通猛安) 주호귀동(朱胡貴洞)· 독로올 맹안(禿魯兀猛安) 협온불화(夾溫不花)· 간합 맹안(幹合猛安) 해탄설렬(奚灘薛列)· 올아홀리 맹안(兀兒忽里猛安) 협온적올리(夾溫赤兀里)· 아사 맹안(阿沙猛安) 주호인답홀(朱胡引答忽)· 인출활실 맹안(紉出闊失猛安) 주호완자(朱胡完者), 오롱소 맹안(吾籠所猛安) 난독고로(暖禿古魯)· 해탄발아(奚灘孛牙), 토문 맹안(土門猛安) 고론발리(古論孛里)· 아목라(阿木刺) 당괄해탄고옥노(唐括奚灘古玉奴) |
올량합(오랑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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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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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적합(우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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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진 올적합(嫌眞兀狄哈)은 고주(古州)의 괄아아걸목나(括兒牙乞木那)·
답비나(答比那)·가아답가(可兒答哥) 남돌 올적합(南突兀狄哈)은 속평강(速平江)·남돌아라합백안(南突阿刺哈伯顔) 활아간 올적합(闊兒看兀狄哈)은 안춘(眼春)·괄아아독성개(括兒牙禿成改) |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여진이라고 표기한 세력들 중 옛 오국성(일란 할라[Ilan haia], 의란[依蘭]) 출신 부족인 알타리(斡朶里),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 그리고 옛 오국성 부근 출신인 탁온(托溫 타온, 원나라에선 桃溫으로 표기한다)을
몽골어(투르크어에 영향을 받은 몽골어)의 한자 음차표기인 두만(豆漫)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본문을 보면 이 세 세력 중에 알타리(斡朶里)와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는 옛 오국성(일란 할라[Ilan haia], 중국에선 依蘭[의란]으로 한문표기하고 조선에선 移闌[이란]으로 한문표기한다) 출신이기에 조선에선 이란두만(移闌豆漫)이라고도 칭한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탁온(托溫)은 이란(移闌, 의란[依蘭]) 출신은 아니고 그 부근인 지금의 가목사시(佳木斯市) 탕원현(汤原县)출신이다.
이란두만(移闌豆漫)의 이란(移闌)은 여진어 일란(ilan)을 조선에서 한자로 음차한 표기이고, 중국에서 표기하는 방식인 의란(依蘭)은 역시 여진어 일란(ilan)을 중국인들이 한자로 음차한 표기이다.
여진어 일란(ilan)은 숫자 '3'을 나타내는 단어이다(ilan[依蘭, 移闌] 지역명은 세개의 성씨가 거주하던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두만(豆漫)은 사실 몽골어가 아니라 투르크어 Tümen에서 기원한 단어인데, 숫자 10,000을 뜻하며 여기서는 만호(萬戶, 10,000호, 10,000개의 가구[집]을 감독하는 관리이다)라는 뜻이다.
이란두만(移闌豆漫)은 '의란의 만호' 해석하면 '3 만호'라는 뜻이다.
豆漫(두만, dòumàn)이란 용어는 옛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 아버지 이름인 두만선우(頭曼單于)에서도 볼 수 있는데 두만선우(頭曼單于)의 두만(頭曼)이나 이란두만(移闌豆漫)의 두만(豆漫)은 투르크어 Tümen의 한문 음차표기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제1 돌궐제국'의 시조이며 중국 기록에 土門(Tǔmén)'이라고 기록한 명칭과 올량합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의 영역인 토문(土門, Tǔmén)도 역시 투르크어 Tümen의 한문 음차표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모두 투르크어이며 여기서 파생된 우리나라의 하천 명칭이 바로 두만강(豆滿江), 토문강(土門江)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위의 견해에 동의하며,
우리나라에서 두만강(豆滿江)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은 투르크어권의 민족이 거주하고 활동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조선왕조실록에선 알타리(斡朶里), 화아아(火兒阿), 탁온(托溫)을 옛 금나라에 속했던 부족이니 조선초기 기록엔 여진이라고 표기했지만 실제 이들은 여진족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哈尔滨市 依兰县)과 흑룡강성 가목사시 탕원현(佳木斯市 汤原县) 출신의 부족들인데 이곳은 이미 '요나라'나 '금나라' 때에도 여진족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세력들의 거주지였다.
이 독자적인 세력 중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哈尔滨市 依兰县)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세력을 각 시대에 따라 철륵(鐵勒), 철리(鐵利), 철려(鐵驪), 오국성(五國城) 등으로 표기했으며 지금의 가목사시(佳木斯市) 탕원현(汤原县)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세력은 오국부(五國部)의 일원인 분노리(盆奴裏)로 표기했었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적으로 여진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즉, 이들은 여진족과는 처음부터 다른 세력이었다.
따라서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을 보면 이 지역 출신의 지도자들을 원나라 때의 관직명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이 옛 오국성(五國城)과 분노리(盆奴裏) 출신인 알타리(斡朶里),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 탁온(托溫 타온, 원나라에선 桃溫으로 표기한다)의 지도자 명칭이 옛 금나라 관직명이 아닌 원나라 관직명이며 투르크어에서 기원한 명칭인 두만(豆漫, Tümen)인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합란(哈闌)의 지도자 관직명도 원나라 때 관직명인 다루가치(달로화적, 達魯花赤)인 것을 볼 수 있다.
즉, 이들은 조선왕조실록엔 여진에 포함되는 세력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관직명에서 볼 수 있듯 여진인이 아닌 원나라 때 원나라 관리 출신인 것을 볼 수 있다.
"여진인이지만 원나라 때 두만(豆漫, 만호[萬戶]에 해당되는 직분이다)이나 다루가치(달로화적, 達魯花赤)의 관직을 얻었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신분제도가 엄격한 원나라 때의 관직이기 때문에 원나라 당시 여진인들이라면 만호(두만[豆漫], Tümen)나 다루가치(달로화적, 達魯花赤)에 올라가긴 힘들다고 본다.
이들을 제외하면 여진이라고 기록된 명단의 인물들 이름에 금나라 때 행정조직 기구인 맹안(猛安)이 등장한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의형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두란(이지란)은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闌帖木兒)라는 이름으로 여진의 금나라 행정조직인 맹안(猛安)에 포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맹안(猛安)은 천호(千戶)라는 뜻이고 '1,000개의 가구를 관할하는 관직'이라는 뜻이다.
즉, 이들은 원나라 때 관리 집안이 아닌 원나라에 병합된 옛 금나라 관련 세력들이거나 아니면 대대로 두만강 주변에 거주하면서 이성계 집안과 가까웠던 토착 여진족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 입장에서 알타리(斡朶里), 화아아(火兒阿), 탁온(托溫), 합란(哈闌)을 원나라 관직명으로 표기하면서 이들이 여진족의 옛 금나라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인지는 했지만(다만, 조선 초기에 기록한 '고려사'에서 보듯 '알타리' 정도만 옛 여진족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인지했다고 본다)
이 부족들의 출신 지역이 원나라 이전 여진의 금나라에게 합병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부족들을 가리킬 때 여진이라는 단어를 혼재해서 사용한 거라고 본다.(옛 금나라에게 병합된 지역이었다가 후에 원나라 지역이 된 두만강 이북 지역은 조선 초기 당시엔 언어는 여진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문자는 몽골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도표에 보면 여진 외에 올량합(兀郞哈, 兀良哈 오랑캐)와 올적합(兀狄哈)이 등장한다.
여기서 올량합(兀郞哈, 兀良哈 오랑캐)이라는 명칭은 1410년 이후론 조선에선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와 명칭을 통합해서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와 올량합(兀郞哈, 兀良哈 오랑캐) 모두 올량합(兀郞哈, 兀良哈 오랑캐)으로 표기한다.
즉, 화아아(火兒阿 후르카, 원나라에선 胡里改로 표기한다)와 올량합(兀郞哈, 兀良哈 오랑캐)은 같은 계통이라 구별의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태조 때보다 후인 조선 세종 시기의 기록에 등장하는 홀라온(忽喇溫, 홀온[忽溫], 명나라에선 해서여진[海西女眞]으로 칭한다)을 조선 기록에서 홀라온올적합(忽喇溫兀狄哈)으로도 표기한 것은 조선 역시 이들이 여진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본다.
물론 이전에 올려드린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들 홀라온(忽喇溫)을 무단강(牡丹江)과 오소리강(烏蘇里江 Ussuri River) 주변에 거주하는 올적합(兀狄哈 우디거)과 같은 명칭을 사용해서, 원래 명칭인 홀라온(忽喇溫)뒤에 추가로 넣어 홀라온올적합(忽喇溫兀狄哈)이라고 표기하는 것도 적합하지는 않다고 본다.
홀라온(忽喇溫)은 올적합(兀狄哈 우디거)처럼 무단강(牡丹江)과 오소리강(烏蘇里江 Ussuri River) 주변에 거주하는 세력이 아닌 홀온강(忽喇溫江, 지금의 호란하[呼兰河]이다) 주변에서 기원한 후 북류송화강(중국에선 제2송화강으로 칭한다) 주변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부족들이기 때문이다.
조선기록에 이들 홀온(忽溫, 홀라온[忽喇溫])을 여진이라고 칭하지 않고 홀라온올적합(忽喇溫兀狄哈)이라고 칭한 것이나, 청나라 때 조사한 이들의 출신기록과 청태종 홍타이지의 1635년 조서 내용, 그리고 조선의 도승지 '이수광'의 지봉유설들을 볼 때 이들 홀라온(忽喇溫, 홀온[忽溫])은 여진족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국내나 중국에서 이들 홀라온(忽喇溫, 명나라에선 해서여진[海西女眞]으로 칭한다)을 옛 금나라의 후예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참고로 아래는 홀라온(忽喇溫)의 근거지인 현재의 하얼빈시 호란구에 있는 호란하(呼兰河)의 구글지도이다.
옛 명칭은 홀라온강(忽喇溫江)이었고 이들의 초기 거주지가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홀라온(忽喇溫)이라고 칭했다.
옛 완안부여진의 근거지인 하얼빈시 아청구에서 멀지 않아 이들을 명나라에선 해서여진(海西女眞)이라고 칭했지만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는 이들이 여진족이 아니라고 했으며 내가 연구한 내용을 봐도 이들은 여진족이 아니다.
아래는 올접합(兀狄哈)들의 거주지를 알 수 있는 구글지도이다.
올적합(兀狄哈)은 여러 계열로 나뉘는 데 전체적으로 보면 두만강 주변에서 무단장시(牡丹江市) 아래 사이에 그리고 오소리강(烏蘇里江 Ussuri River) 주변에 여러 계열의 올적합(兀狄哈)인들이 거주한다.
지도를 보면 홀라온(忽喇溫) 세력이 등장한 지금의 호란하(呼兰河)와 올적합(兀狄哈)들의 활동영역인 무단장시(牡丹江市) 아래와 오소리강(烏蘇里江 Ussuri River)주변은 서로 거리가 멀며 역사적 배경 역시 서로 다른 지역인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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