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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북원(명대 몽골)시기 여진어 사용 부족들 본문
몽골이 세운 대원(大元)이 주원장의 명나라 세력에게 중국 일부를 잃고 예전에 거주했던 몽골지역으로 돌아간 후 그 대원(大元)을 명나라에선 이미 죽어서 없어진 원나라라는 뜻에서 故(고)자를 써서 고원(故元)이라고 칭했다.
그에 반해 당시 고려는 대원(大元)이나 명나라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다는 의미로 '북원(北元)'이라고 칭했다.
현재는 중국에서도 고려가 사용하던 명칭인 북원(北元)으로 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국내에 학자들은 쿠빌라이 칸의 후손이 몽골로 돌아간 후,
그 곳 북원에서 아릭부케(쿠빌라이의 동생이며 쿠빌라이에 패해 대칸이 되지 못했다) 후손인 예수데르에 의해 쿠빌라이 칸 후손인 북원의 대칸 투구스 테무르가 죽임 당한 것을 북원(北元)의 멸망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쿠빌라이 칸의 후손들이 명목상의 대칸을 거쳐 다얀 칸(大元 汗의 몽골어 발음으로 해석된다)이 등장할 땐 다시 명나라 때 몽골(북원,北元)의 실제 권력을 장악하기 때문에
북원(北元)은 릭단 칸(林丹汗, 다얀 칸의 후손이다.)의 차하르부가 후금의 홍타이지에게 몽골 대칸의 직위를 인정할 때까지는 존속한 국가로 보는 것이 현재 동서양 학자들의 주된 견해로 보인다.
나는 바로 이 기간인 1368년에서 1635년도까지를 북원(北元)의 역사 내지는 명나라 때 몽골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명나라의 기록을 보면,
이 당시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의 여러 세력과 부족들 중 여진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은 그들의 출신에 상관없이 모두 여진족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명나라 후기에는 이 지역의 부족들을 활동 영역에 따라 명나라는 이들을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엄격히 이야기 해서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이 당시의 세력들이 모두 여진족은 아니다.
다만 금나라 때 여진족이 이 지역의 국가와 부족들을 병합했기 때문에 북원시대(명대 몽골시대) 당시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모든 부족들의 공통 언어는 여진어였다.
그리고 이 부족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북원시대 초기엔 여진문자도 사용했지만,
북원시대 중기부터는 이곳의 부족민들이 이전에 원나라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인해 대부분의 이 지역 세력들은 몽골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당시 이지역에 거주하는 세력들은 언어는 여진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문자는 몽골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조선 기록에 의하면 여진어를 구사하는 부족 및 세력들을 3개의 세력으로 나눠서 표기한다.
오랑캐, 올적합, 여진 이렇게 3등분 한다.(더 세분하면 3개 세력 이상이지만, 나는 알타리, 후르카, 와르카를 오랑캐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나는 홀라온은 올적합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은 홀라온을 홀라온올적합으로 표기해서 홀라온과 올적합을 구분하지 않고 홀라온을 올적합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명나라에서는 이들을 출신별로 구별하지 않고 명나라가 만든 행정구역에 따라 '~~위' 등으로 나눠서 구별한다.
즉, 예를 들어 건주위, 건주좌위, 건주우위, 모련위 등등으로 명나라 행정구역으로 포함시켜서 구별하고 칭한다.
그러다가 명나라 말기가 되면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 이렇게 3개의 세력으로 구별해서 칭했다.
만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의 주 구성원은 후에 청나라를 건국하는 청나라 황족 세력들과 오도리(알타리), 후르카(호리개, 조선에선 화아아로 표기한다)출신들이며,
홀라온(명나라에선 해서여진이라고 칭한다)의 주 구성원은 홀라온(홀온)과 몽골('투메드'씨 부족) 그리고 올적합(니마차올적합) 출신들로 구성된 4개 부족(울라, 하다, 여허, 호이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이라고 칭한다)의 구성원은 와르카, 후르카(호리개, 조선에선 화아아로 표기한다), 올적합(와집, 조선에선 혐진올적합으로 표기한다) 이렇게 3개의 부족 세력이었다.
조선의 기록을 보면 올적합(兀狄哈) 역시 출신 부족별로 여러개로 나누어서 홀라온올적합, 남눌올적합, 니마차올적합, 혐진올적합 등으로 표기했는데 내가 그동안 공부해 보니 이 역시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조선에서 올적합(兀狄哈)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단어는 금나라 때 여진어 발음 우디거, 우데개를 한자로 음차표기한 건데
금나라 때 여진족들이 옛 발해 유민들 출신인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인들을 비하해 야인 내지는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던 여진어 단어가 오저개(烏底改) 내지는 올적개(兀的改)였다고 한다.
이 烏底改와 兀的改는 여진어 '우데개'의 한문 음차표기이다.
즉, 완안부 여진족들이 금나라를 세우기 이전 자신들의 근거지인 현재 하얼빈시 아청구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근거지를 두었던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인들을
완안부 여진족들이 금나라를 세운 이후 이들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인들을 비하해서 부르던 명칭이 오저개(烏底改) 내지는 올적개(兀的改)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여진어 우데개의 한문음차표기인 烏底改(오저개)와 兀的改(올적개)는 명나라 때엔 같은 발음의 한문음차표기인 兀狄哈(올적합)으로 바뀌게 된다.
조선 때 이들 우데개(兀狄哈 올적합)는 무단강 중상류와 우수리강 주변에 거주했다.
하지만 금나라 이전 오야(烏惹) 내지는 올야(兀惹)로 불릴 때 이들이 어느 지역에 거주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완안부 여진의 근거지인 하얼빈시 아청구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유기백과에는 이들이 현재 흑룡강성 빈현에 거주했던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즉, 이들이 조선 때는 무단강 중상류와 우수리강 주변에 거주했지만,
이들의 선조가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로 불리던 때부터 무단강 중상류와 우수리강 주변에 거주한 것은 아니다.
아래는 조선 때 혐진올적합(청나라 명칭으론 와집)이 거주하던 영고탑(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에 대한 위키실록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위키실록사전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원래 영고탑이 있던 지역은
조선시대 혐진올적합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이후 『만주실록』에는 동해여진(東海女眞)으로 기록되어 있다. 1610년에 누르하치가 영고탑 지역을 복속하였고, 이후 남은 동해여진과 흑룡강 유역을 복속시키기 위한 전진기지로 영고탑을 활용하였다. 결국, 1636년에 정식으로 후금(청)의 주둔기지인 주방(駐防)이 영고탑에 설치되었다. |
위의 위키실록 설명에 보면,
'이후 『만주실록』에는 동해여진(東海女眞)으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위키실록에 기재되어 있는데, 내가 확인한 만주실록엔 동해여진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않고 동해(dergi mederi)라고 표기되어 있다.
물론 내가 만주실록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주실록은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이후인 1779년에 완성된 청나라 문서이고 홍타이지 때인 1635년도부터 여진(女眞)이라는 표기는 청나라에서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만주실록에 여진이라는 문자는 옛 금나라를 세웠던 옛 여진족을 지칭하거나 청태조 누르하치가 다시 통일한 옛 여진족의 영역을 지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아래는 조선 때 혐진올적합(청나라 명칭으론 와집)이 거주하던 영고탑(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에 대한 구글지도이다. 빨간색 점선 안이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시이다.
길림의 동쪽, 무단장시의 아래에 위치한 것을 볼 수 있고 영안시 동쪽은 우수리강이다.
아래는 금나라를 세운 옛 완안부 여진의 근거지인 지금의 하얼빈시 아청구의 구글지도이다. 빨간색 점선이 지금의 하얼빈시 아청구이다.
아래는 오야(烏惹) 내지 올야(兀惹)인들이 금나라 이전 거주했다는 하얼빈시 빈현의 구글지도이다. 빨간색 점선이 지금의 하얼빈시 빈현이다.
이 하얼빈시 아청구에 거주하던 완안부 여진의 금나라 사람들이 지금의 하얼빈시 빈현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옛 올야(兀惹) 내지는 오야(烏惹) 출신들을 우데개(烏底改, 兀的改)로 칭하면서 야인 내지는 야만인으로 비하한 것이다.
조선 때는 우수리강과 무단강 중상류 주변 세력과는 상관 없는 옛 여진족들의 영역이었던 송화강과 홀룬강 주변의 세력들에다 위에서 언급한 우수리강 주변 세력까지 모두 통틀어서 올적합(우디거, 兀狄哈)이라는 용어로 칭하고 표기했다.
비슷한 예로 '오랑캐'는 몽골인이 투르크 출신 중에 몽골의 북부와 서부의 숲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때 칭하는 단어이거나 투르크 계인 '투바인'이나 '사하인'들이 자신들을 칭하는 단어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선 몽골인까지 실제 '오랑캐'와 더불어 모두 '오랑캐'라고 칭하는 것과 비슷한 예이다.
아래의 동영상 내용은 우디거(우디캐, 兀狄哈) 즉, 조선식 표기론 올적합의 전통무용이라고 한다.
다만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은 후에 청나라 기준으론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에 속하는 세력으로 분류 되는데
청나라에서 칭하는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는 좀 더 지역적 범위가 넓어서 이들 무단강, 우수리강 주변의 우디거 외에
옛 오국성 출신인 후르카와 두만강에서 흥개호(興凱湖) 사이에 거주하는 와르카까지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칭하는 세력들 명칭이다.
즉, 청나라에서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로 칭하는 세력은 후르카, 와르카, 와집(금나라에선 우데개로 칭했다)을 말하며
금나라 때 우데개(烏底改 兀的改)라고 칭하던 세력은 청나라 때 동해나라(명나라에선 야인여진으로 칭한다)라고 부르던 후르카, 와르카, 와집 중에 와집만을 뜻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도식으로 표기하면 아래와 같다.
청나라에서 동해나라로 칭하는 구성원 = {후르카, 와르카, 와집 },
금나라가 우데개라고 칭했던 세력 = {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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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데개(올적합)는 여진족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조선에선 홀라온올적합이라고 칭하고 명나라에선 해서여진이라고 칭하던 홀온의 4개 부족 역시 우데개(올적합)라고 보긴 곤란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면 이들 홀라온(홀온)은 우데개도 아니며 여진족도 아니라고 본다.
홀라온은 하다(합달), 울라(오랍), 여허(엽혁), 호이파(휘발) 4개 부족으로 나뉘는데
이 4개 부족 중에 우데개(올적합)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족은 호이파(휘발) 정도 밖엔 없다. (호이파[휘발]의 선조는 니마차올적합 출신이라고 한다. 니마차올적합 출신이 송화강 지역으로 이주해서 홀라온의 4개 세력 중 하나인 호이파[휘발]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내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면, 홀라온(홀온), 여진, 올량합(오랑캐), 올적합(우데개)은 서로 출신들도 다르고 지역적 거점도 다른 별개의 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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