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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단군조선, 아사달, 평양성, 당장경 본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第一)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第一)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에 대한 원문과 번역이다.
古朝鮮 王倹朝鮮
魏書云, “乃徃二千載有壇君王倹立都阿斯逹. (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髙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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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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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위서(魏書)를 인용해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壇君王倹立都阿斯逹)라고 기재한다.
또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라고 주석한다.
삼국유사의 저자는 아사달(阿斯逹)은 고려의 백주(白州)이며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는 말도 전해진다고 주석한 것이다.
만일 개성(開城) 동쪽과 백주(白州)가 같은 곳이라면,
개성(開城) 동쪽에 백주(白州)가 있다는 뜻이며 백주(白州)에 단군조선(壇君朝鮮)의 도읍 중 하나인 아사달(阿斯逹)이 있다고 삼국유사 저자는 주석한 것이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권 56 지(志) 하음현(河陰縣)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권 56 지(志) 하음현(河陰縣)에 대한 본문과 번역이다.
河陰縣本高句麗冬音柰縣【一云芽音縣】, 在江華島內. 新羅景德王, 改名沍陰, 爲海口郡領縣. 高麗, 更今名, 仍屬. 後屬開城縣. 有主乙叱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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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음현(河陰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동음내현(冬音柰縣)【아음현(芽音縣)이라고도 한다.】으로, 강화도(江華島) 안에 있다.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호음(沍陰)으로 고치고, 해구군(海口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에 와서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그대로 〈강화현에〉 소속시켰다. 뒤에 개성현(開城縣)에 소속시켰다. 주을질도(主乙叱島)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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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을 보면 강화도(江華島) 안에 하음현(河陰縣)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 초기엔 강화도(江華島) 내에 그대로 소속시켰고(仍屬) 후엔 개성현(開城縣)에 소속시켰다(仍屬. 後屬開城縣)고 기록하고 있다.
이 고려사 지리지 내용을 보면,
고려 때 개성현(開城縣)은 지금의 강화도(江華島) 부근에 있는 지역임을 알 수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개성 동쪽에 아사달(阿斯逹)이 있다고 했으므로,
단군조선 때 도읍인 아사달(阿斯逹)은 강화도에서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래는 황해도 배천(白川)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이다.
아래는 황해도 배천(白川)에 대한 위키백과의 내용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지리
동쪽으로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개성시와 인접해 있으며 남쪽은 황해이다. 서쪽은 연안군, 북쪽은 봉천군에 면해 있다.
중부와 남부는 연백평야에 속하는 평야지대이며, 남부의 황해 바닷가에는 간석지가 발달해 있다. 간석지 개간으로 논이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역사
일제강점기에는 서쪽으로 이웃한 연안군과 합해 연백군에 속했지만 해방 후에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분리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배천온천이 개발되어 경성(서울)에 가까운 온천의 하나로서 번성하였다.
고구려 - 도납현이 놓여졌다.
신라 - 구택으로 불리며 해고현에 속했다.
고려 - 충익현, 부흥군, 백주(배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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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위키백과 설명을 보면 지금의 황해도 배천을 고려 때 백주(白州)라고 칭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저자는,
단군조선의 도읍인 아사달(阿斯逹)을 고려 때의 백주(白州) 바로 지금의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보는 것이다.
아래는 구글지도에 기재된 강화도 지도이다.
강화도에서 북쪽으로 11시 방향에 황해도 배천(白川)이 있다. 즉, 삼국유사 저자가 아사달(阿斯逹)이라고 주석한 백주(白州)이다.
구글지도를 보면 배천(白川)의 서쪽엔 연안(延安)이 있다. 이 연안(延安)이 고려 때 개성현(開城縣)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第一)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第一)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에 대한 원문과 번역이다.
古記云, “昔有桓𡆮 (謂帝釋也)庻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遣徃理之. 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 (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同穴而居, 常祈, 于神雄願化爲人. 時神遺霊艾一炷蒜二十枚曰, ‘爾軰食之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樹下呪願有孕. 雄乃假化而㛰之. 孕生子號曰壇君王倹. 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 (唐堯即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 (今西亰)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又名弓 (一作方)忽山又今旀逹.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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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 말한다)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즉 태백(太伯)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다)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檀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 (당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 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 의심스럽다)으로,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西京)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에 옮겼는데, 궁(弓) (혹은 방(方)이라고 한다)홀산(忽山)이라고도 하며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 후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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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은 고기(古記)를 인용해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라고 기재한다.
그리고 삼국유사 일연스님은,
태백(太伯)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다(太伯今妙香山)라고 주석한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태백산(太伯山)을 고려의 묘향산(妙香山)으로 본 것이다.
아래는 평안도 묘향산의 구글지도이다.
이 묘향산(妙香山)이 신단수(神壇樹;神檀樹)와 신시(神市)가 있었다는 태백산(太伯山)이다.
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은 고기(古記)를 인용해,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서 조선이라고 칭했다(都平壤城 始稱朝鮮)라고 기술하고 주석했다.
또한 삼국유사의 저자는,
단군조선의 도읍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都平壤城 [今西亰])라고 주석했다.
제왕운기에선,
마한(馬韓)의 왕검성(王儉城)(지금의 서경(西京)이다....)(開國馬韓王儉城,[今西京也....])라고 기술했다.
또한 고려사에 기술된 내용을 보면,
고려서경(西京)엔 황성(皇城)이 있으며 압록강(鴨綠江)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첫 도읍인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중국 환인만주족자치현으로 해석된다.
아래는 환인만주족자치현의 구글지도이다.
이곳이 단군조선의 평양성(平壤城)이며 마한의 왕검성(馬韓王儉城)이고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 홀본[忽本])이며 고려 때의 서경(西京)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은 고기(古記)를 인용해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에 옮겼는데(都平壤城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라고 기재한다.
또한 삼국유사 저자 일연스님은 위서(魏書)에 기재된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壇君王倹立都阿斯逹)라는 내용을 주석할 때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라고 기재함으로서
아사달(阿斯逹)을 고려 때의 백주(白州)
즉, 지금의 황해도 배천(白川)이라고 주석했다.
아래는 황해도 배천의 구글지도이다. 서쪽에 연안이 있고 아래엔 강화도가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이곳을 아사달(阿斯達山)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제왕운기 저자 이승휴는 황해도 구월산을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본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고기(古記)를 인용해,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라고 기재한다.
삼국유사에선 단군조선의 도읍과 별개로 단군이 거주한 지역도 등장하는 데 장당경(藏唐亰)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阿斯逹)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저자는,
장당경(藏唐亰)의 위치를 주석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이 기록한 고려사 지리지에선 지금의 황해도 삼천군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 저자의 주석과 고려사 지리지 내용을 합하면,
단군은 기자조선이 등장하자 장당경(藏唐亰)이 있는 황해도 삼천군으로 거주를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 지역인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와서 산신이 되었다고 해석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권58 지(志) 卷第十二 地理 三의 내용이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권58 지(志) 卷第十二 地理 三의 본문과 번역이다.
儒州本高句麗闕口. 高麗初, 改今名. 顯宗九年, 來屬. 睿宗元年, 置監務. 高宗四十六年, 以衛社功臣成均大司成柳璥內鄕, 陞爲文化縣令官. 別號始寧【成廟所定】. 有九月山【世傳, 阿斯達山】·庄庄坪【世傳, 檀君所都, 卽唐莊京之訛】·三聖祠【有檀因·檀雄·檀君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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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儒州)는 본래 고구려의 궐구(闕口)였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9년(1018)에 〈풍주에〉 내속(來屬)시켰다. 예종 원년(1106)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종 46년(1259)에 위사공신(衛社功臣)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유경(柳璥)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문화현령관(文化縣令官)으로 승격시켰다. 별호(別號)는 시령(始寧)이다【성종[成廟] 때 정하였다.】. 구월산(九月山)【세상에 전하기를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 한다.】·장장평(庄庄坪)【세상에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하는데, 곧 당장경(唐莊京)이 와전되었다.】·삼성사(三聖祠)【단인(檀因)·단웅(檀雄)·단군사(檀君祠)가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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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선 문화현령관(文化縣令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곳엔 구월산(九月山)과 장장평(庄庄坪)이 있다고 기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장장평(庄庄坪)을 소개하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도읍한 곳이라 하는데, 곧 당장경(唐莊京)이 와전되었다(世傳, 檀君所都, 卽唐莊京之訛)】라고 고려사 지리지의 저자는 주석하고 있다.
즉, 삼국유사에 기재된 당장경(唐莊京)은 장장평(庄庄坪)이며 바로 고려 때 문화현령관(文化縣令官) 지역이라고 고려사 지리지를 쓴 조선의 학자들이 해석한 것이다.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소개하는 옛 황해도 문화군에 대한 설명이다.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소개하는 옛 황해도 문화군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문화군(文化郡)은 황해도 삼천군 대부분과 신천군 일부, 대한민국 이북 5도기준 신천군 초리면, 문무면, 궁흥면, 산천면, 용진면, 문화면지역에 있던 한국의 옛 행정구역이다.
연혁
.........................1259년(고려 고종 46년) 위사공신(衛社功臣)이었던 유경의 내향이라 하여 문화현령관(文化縣令官)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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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령관은 지금의 황해도 삼천 대부분과 황해도 신천의 일부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황해도 삼천을 나타낸 구글지도이다.
고려사 지리지를 쓴 조선 때 학자들은 삼국유사에 기재된 당장경(唐莊京)이 바로 지금의 황해도 삼천지역인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권 하(卷 下)의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권 하(卷 下)의 본문과 번역이다.
初誰開國啓風雲, 釋帝之孫名檀君.(本紀曰, ‘上帝桓因, 有庶子, 曰雄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 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云云.’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據朝鮮之域, 爲王. 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 爲神, 不死故也) 竝與帝高興戊辰, 經虞歷夏居中宸. 於殷虎丁八乙未, 入阿斯達山爲神.(今九月山也, 一名弓忽, 又名三危, 祠堂猶在) 享國一千二十八, 無奈變化傳桓因. 却後一百六十四, 仁人聊復開君臣(一作, 爾後一百六十四, 雖有父子, 無君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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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본기(本紀)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는데 환웅(桓雄)이라 하였다. 〈환인이 환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땅으로〉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弘益人間]?” 라고 하였으므로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분을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손녀(孫女)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하여 남자 아이를 낳게 하니, 이름하여 단군이라 하였다. 조선의 영역에 자리잡고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沃沮), 동북 부여(夫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었다.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阿斯達) 산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으니, 〈이는 단군이〉 죽지 않은 까닭이다) 요(堯)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舜) 임금 때를 지나 하(夏)나라 때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지금의 구월산(九月山)으로 일명 궁홀(弓忽) 또는 삼위(三危)라고 부르는데, 사당(祠堂)이 아직도 있다). 나라를 다스린 지가 1,028년으로, 어찌 변화시켜 환인께 전할 것이 없었겠는가? 그 뒤 164년 만에 어진 사람이 다시 군신(君臣)관계를 다시 열었도다.(다른 곳에서는 이후 164년 동안 비록 부자관계는 있었으나 군신관계는 없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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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이승휴가 저술한 제왕운기에선,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於殷虎丁八乙未, 入阿斯達山爲神)라고 기재한다.
그리고 이승휴는 이 문장을 해설하면서,
지금의 구월산(九月山)으로 일명 궁홀(弓忽) 또는 삼위(三危)라고 부르는데, 사당(祠堂)이 아직도 있다(今九月山也, 一名弓忽, 又名三危, 祠堂猶在)라고 기재한다.
즉, 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는,
아사달(阿斯達)을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 기재한 후 아사달산(阿斯達山)은 황해도 신천군의 구월산(九月山)으로 본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의 저자는 아사달(阿斯達)을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본다.
다만 제왕운기에선,
단군조선의 첫 도읍인 평양성(平壤城)이나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거주한 지역인 장당경(藏唐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고기(古記)를 인용해,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라고 기재했고
또한 삼국유사에선,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라고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은 주석한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선 제왕운기와 달리 단군(壇君)이 신선이 된 아사달(阿斯逹)을 고려 때의 백주(白州),
즉, 지금의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보는 것이다.
아래는 구글지도에 기재된 구월산이다. 황해도 신천에 구월산(九月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려사 지리지에서 당장경(唐莊京)으로 본 황해도 삼천과 구월산(九月山)이 있는 황해도 신천이 인접한 곳임을 볼 수 있다.
위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그리고 고려사 지리지 내용을 보면,
단군조선의 배경은 평양성(平壤城)을 제외하곤 한반도인 것을 볼 수 있다.
제왕운기와 고려사를 검토해 볼 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단군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밖이 배경인 곳은 평양성(平壤城)이다.
단군조선의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북한 평양(平壤)이 아닌 중국 환인만주족자치현이라고 본다.
근래에 서적이나 유튜브에서 일부사람들이나 학자가 주장하는 단군조선의 무대가 중앙아시아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내륙이나 산동 내지는 요서지방도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지리지에 기재된 단군조선의 내용을 보면,
평양성(平壤城) 외 다른 지역들은 당시 한반도의 어느 지역에 해당된다고 저자들이 직접 주석하거나 기재내지는 해설하고 있다.
또한 단군이야기는 고려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단군이야기 배경은 평양성(平壤城)을 제외하곤 한반도 밖이 되어선 곤란하다. 여기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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