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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突厥), 철륵(鐵勒), 튀르크(Türk) 본문

철륵, 돌궐 그리고 튀르크

돌궐(突厥), 철륵(鐵勒), 튀르크(Türk)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3. 17. 20:36

랑캐(烏梁海, 兀良哈)에 대해서 말씀드리려면 철륵(鐵勒)과 돌궐(突厥)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은 돌궐(突厥)과 철륵(鐵勒)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돌궐1제국(The Göktürks)에 대한 다음백과 내용이다.

 

돌궐

돌궐족은 6~8세기경 몽골 고원과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튀르크계 민족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소그드 문자를 썼고 후에 돌궐 문자를 만들었다. 족장 토문 때 세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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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는 위의 다음백과 설명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돌궐족은 6~8세기경 몽골 고원과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튀르크계 민족이다.
지배 씨족인 아사나씨(阿史那氏)는 처음에 알타이 산맥 서남쪽으로 가서 유연(柔然)에게 복속되어 있었지만, 족장 토문(土門) 때 그 세력이 강대해졌다. ..............................
돌궐의 세력은 급속히 강대해졌지만, 카간의 지위를 둘러싸고 동족간의 싸움이 그치지 않아 통일의 기반이 취약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隋)나라는 교묘한 돌궐 이간책을 써서 이시바르 카간(沙鉢略可汗)때인 583년 튀르키스탄의 서면 카간을 독립시켰다.
이때부터 돌궐은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누어졌다.
...................................................
돌리 카간은 계민 카간(啓民可汗)으로 개칭하고 오원(五原) 지방에서 유목지를 얻어 북몽골 지역에 거주하던 철륵(鐵勒 : 당·송대(唐宋代)에 돌궐제국의 피지배층들이었던 튀르크족을 부르던 단어) 각 부(部)를 통제하게 되었다.
돌궐의 혼란기에 철륵 각 부가 세력을 신장시켰지만 동·서 돌궐이 다시 강대해지면서 다시 이들에 예속되었다
....................................
동돌궐은 630년에, 서돌궐은 657년에 각각 당에 멸망되었고, 당은 이곳의 각 지역에 도독부(都督府)·도호부(都護府)·주(州) 등을 설치했다.

위의 다음백과 내용을 보면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의 영역은 지금의 몽골 고원 지역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 걸친 것을 볼 수 있다.

후에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은 동돌궐(東突厥)과 서돌궐(西突厥)로 분리되는 데 서돌궐(西突厥)지역은 지금의 흑해 부근까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돌궐1제국(The Göktürks)동돌궐, 서돌궐의 지도자 및 지배층의 성씨는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이다.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는 초기에 알타이산(金山)에 거주하면서 유연(柔然, 중국인들은 '유연'을 비하하는 의미로 '여여[茹茹]'로도 칭한다)에 복속되어 철공(대장장이)일을 했었지만 이후 세력을 키운 후

부민(돌궐 스스로는 '부민'이라고 비문에 표기했지만, 중국의 기록엔 '토문[土門]'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을 세우고 확장시킨다.

(이전에 내가 올려드린 글에서 우리나라의 토문강[土門江]은 바로 이 투르크어 tümen의 한문음차 표기인 土門[Tǔmén 토문]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을 말씀드렸었다)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은 중국의 5호16국 시대에 북쪽 중국의 분열을 이용하여 거대 제국으로 성장했지만,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수나라의 이간 정책에 의해 오히려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은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된다.

또한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은 동서로 분할 되기 전에도 돌궐제국 안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분류되는 데,

지도자인 카간(可汗)의 성씨나 지배층은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라고 하며 이들은 Gök türk(괵 튀르크 or 괵 튀륵)족으로 불린다.

그리고 위의 설명을 보면,

'돌리 카간은 계민 카간(啓民可汗)으로 개칭하고 오원(五原) 지방에서 유목지를 얻어 북몽골 지역에 거주하던 철륵(鐵勒 : 당·송대(唐宋代)에 돌궐제국의 피지배층들이었던 튀르크족을 부르던 단어) 각 부(部)를 통제하게 되었다.'라는 백과사전 설명을 볼 수 있는데,

이 설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은 지배층인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인 Gök türk(괵 튀르크 or 괵 튀륵)과 나머지 피지배층인 철륵(鐵勒 Töläch or Töliš)부족들이 있음을 볼수 있다.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은,

Gök türk(괵튀르크 or 괵 튀륵)의 한문음차표기突厥(돌궐)이며 Türk(튀르크 or 튀륵)'의 한문음차표기가 鐵勒(철륵, 당시 중국어 발음으론 tʰet lək)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다른 학자들은,

투르크어 Töläch이나 Töliš의 한문음차표기가 鐵勒(철륵, 당시 중국어 발음으론 tʰet lək)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Türk(튀르크 or 튀륵)의 한문 음차표기가 突厥(돌궐)이라고 주장한다.

즉, 아직 한문 鐵勒(철륵, 당시 중국어 발음으론 tʰet lək)이 당시 투르크어 'Türk(튀르크 or 튀륵)'의 한문음차표기인지 아니면 투르크어 Töläch(퇼렉)이나 Töliš(퇼릿)의 한문음차표기인지 정확히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돌궐1제국(The Göktürks)과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밀접한 외교관계를 맺었었고 고구려 역시 돌궐1제국(The Göktürks)과 활발한 외교관계를 맺었었다.

이 당시엔 중국왕조가 오히려 돌궐1제국(The Göktürks)에 밀려 돌궐1제국(The Göktürks)에서 수나라(隋) 황제에게 투르크의 지도자 호칭인 Qaghan (可汗)의 직위를 수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당나라 때 당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이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의 피지배층인 鐵勒(철륵) 부족들과 손을 잡고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의 지배층인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와 동돌궐을 무너뜨리면서,

당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은 鐵勒(철륵) 부족들에 의해 '칸 중의 칸' 내지는 '하늘의 최고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인

Tengri Khagan(텡그리 카간 天可汗)으로 추대되었다.

당나라 황제가 투르크(Türk) 내지 철륵(鐵勒 Töläch or Töliš))최고 Qaghan (카간 可汗) 직위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후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元 世祖 忽必烈可汗)도 원나라 황제이자 몽골의 대칸(Sečen Qa'an, 薛禪 可汗)이었고,

청나라 홍타이지(淸 太宗 皇太極)역시 청나라 황제이자 몽골의 복드칸(Boγda[Bogda] Qa'an, 대칸의 의미)이었는데,

바로 당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이 황제와 최고의 칸(Tengri Khagan[텡그리 카간] 天可汗)을 겸직하게 되는 최초의 인물이 된 것이며 최초의 사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견해론,

우리나라에서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국가나 국민들을 옛 돌궐제국(The Göktürks, Second Turkic Khaganate)이나 돌궐(突厥)의 후예라고 칭하는 것은 사실 정확한 명칭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들 국가를 구성하는 주류 국민의 선조나 이들 국가 영토의 원주민들 선조가 옛 돌궐제국(The Göktürks, Second Turkic Khaganate)의 구성원이었던 경우가 있겠지만,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의 구성원들은 옛 돌궐제국(The Göktürks, Second Turkic Khaganate)의 지배층인 아사나(阿史那 āshǐnà )씨들로 구성된,

즉, Gök türk(괵 튀르크 or 괵 튀륵)들로 구성된 나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견해론,

突厥(돌궐, Gök türk or Türk)이나 鐵勒(철륵, Töläch or Töliš or Türk) 모두 Türk(튀르크 or 튀륵)의 한문음차표기로 해석하는 견해가 공통적으로 있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선 괵튀르크는 튀르크 부족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철륵[鐵勒]을 Töläch 내지는 Töliš의 음차표기가 아닌 Türk의 음차표기로 해석한 후, 돌궐[突厥]은 Gök türk의 음차표기로 보면서 넓게 보면 Gök türk[돌궐]은 Türk[철륵]에 포함되는 세력 내지 부족으로 이해한다.)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뿐만 아니라 동부의 위구르, 오랑캐계열인 투바, 야쿠트, 알타이, 브리야트까지 이들에 대해선 '돌궐(突厥)의 후예'나 '철륵(鐵勒)의 후예'가 아닌 '투르크(Türk)계 언어와 관련된 민족'이라고 칭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표현이라고 본다.

(이들 국가 중엔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투르크의 후예라는 자의식은 희박하고 이 지역이 옛 몽골제국인 주치울루스의 좌익에 속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국가와 국민은 몽골제국의 후예라는 자의식이 있다고 한다. - '몽골제국의 후예들[이주엽 지음, 책과 함께 출판사] 페이지 192, 193 -)

아래는 돌궐1제국(The Göktürks)의 지배층인 괵투르크족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이다.

 

괵튀르크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래는 위의 위키백과 설명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괵튀르크족의 기원문제와 관련해서 튀르크족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족이 쓴 사서 가운데 주서, 북사, 수서에는 사료가 존재한다.
주서에는 괵튀르크족의 기원과 관련해서 두 가지의 사료가 존재하는데 주서에서는 괵튀르크족은 흉노의 일파이고 그들의 성은 아사나씨(阿史那氏)라고 기술되어 있다.
북사가 전하는 사료의 거의 대부분은 주서에 전하는 주서의 사료의 내용을 거의 옮겨 놓은 것이다.
수서에도 주서와 북사의 내용을 옮겼으나 괵튀르크족의 기원에 대해 사료가 존재하는데
괵튀르크족의 선조는 평양(平涼)에 거주한 잡호이며 성은 아사나씨인데 아사나의 500가(家)가 여여(茹茹)로 이동하여 금산(金山)에 기거하면서 철작(제철)에 종사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