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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칸, 전륜성왕, 보살의 화신 본문

고려 태조 왕건과 청 태조 누르하치

쿠빌라이칸, 전륜성왕, 보살의 화신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1. 18. 20:27

아래는 한겨레 기사이다.

 

‘전륜성왕’ 아소카 본격 탐구서

인도학박사 이거룡 교수 문헌연구 등으로 조명

www.hani.co.kr

아래는 위의 기사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올린 내용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의 도인인 아시타 선인은 아이의 운명을 왕에게 예언한다.
세간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붓다가 된다는 것이었다.
전륜성왕이란 세상의 제패자다.
출가한 싯다르타 대신 인도에서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이가 바로 붓다의 입멸 후 200여년 뒤에 왕위에 올라 36년간 다스린 아소카다.
아소카는 고대 인도의 지역종교였던 불교를 아시아 전역으로 퍼뜨린 이다.

궁예는 출가를 한 상태에서 부처라고 스스로 칭했다.

출가자가 부처가 되는 것은 원래 부처가 되기 위해 출가한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궁예는 부처가 되고 후고구려, 마한, 태봉의 대왕이 된다.

(삼국사기에선 미륵불을 칭한 시기를 명확히 기술하지 않고 있는데, 아무 기반도 없는 선종 스님이 미륵불을 칭하지 않고 단기간에 사람들을 결집시켜 관직을 만든 후 대왕으로 불리기는 힘들다고 본다).

이는 석가모니 일대기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불교의 석가모니 일대기를 보면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아시타 선인이 아기 석가모니를 본 후 석가모니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한다.

그런데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보면 부처가 될 성향의 인물은 이미 출가 전에 정해진 것이고,

그러한 성향의 인물이 출가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따라,

출가자는 부처가 되고 출가하지 않는 자는 속세에서 전륜성왕(세상을 통일한 왕이며, 대왕이나 황제에 해당한다)이 된다.

즉, 부처와 전륜성왕은 겸해서 함께 그 지위에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인도의 전륜성왕 사상에서도 전륜성왕은 제위를 물러난 후 출가를 한다고 전해진다.

그에 반해 부처가 아닌 보살은 다르다. 보살은 출가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는 수행자다.

개성에서 발견된 태조왕건 동상이 불상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것은 그 아들인 광종이 태조왕건을 전륜성왕(전륜성왕은 부처와 같은 신체적 특징을 지녔다고 한다)으로 묘사한 거라고 본다.

그리고 태조왕건은 전륜성왕이지만 그의 삶은 고려인들에게 익숙한 미륵보살의 모습으로 표현한 거라고 본다.

따라서 전륜성왕이자 보살(부처가 아니다)인 고려태조 왕건은 스스로 부처이면서 대왕(전륜성왕을 의식한 호칭이라고 본다)인 태봉의 궁예 대왕과는 차이가 난다.

아래는 '투르크인문백과사전'에 기재된 쿠빌라이칸에 대한 설명이다.

빌라이는 남송을 정복한 후 중국대륙을 직접 지배한 인물이다.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고려 충렬왕에겐 장인이 되고 고려왕이자 심왕(심양왕)인 충선왕에겐 외할아버지가 된다.

 

칭기즈칸은 생전에 남쪽 중국인 송나라를 정복하진 못했지만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이 송나라를 정복하면서 쿠빌라이는 중국의 지도자인 황제가 된다.

 

즉, 쿠빌라이는 중국에선 황제가 되는 것이고 몽골 등 유목세계에선 대칸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신분을 겸직했던 왕조는 이세민 이후의 당나라와 쿠빌라이의 원나라 그리고는 17세기에 등장하게 되는 청나라만 해당된다.

 

당태종 이세민은 당나라에선 황제이며 철륵인(투르크인)에겐 탱그리카간(천가한)이다.

 

원세조 쿠빌라이는 원나라에선 황제이며 몽골제국 내에선 대칸이다.

 

그리고 청태종 홍타이지는 그의 아들인 순치제 때 중국을 지배하게 되지만 그 이전에 청나라에서 황제가 되며 몽골에선 복드칸(대칸)이 된다.

 

 

아래는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에 기재된 파스파(팍바)에 대한 설명이다.

벹 불교와 정치권력의 결합은 티벹 불교에서 자신들의 국왕인 송첸캄포를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인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몽골제국 시대 땐 티벹 불교의 승려인 파스파(팍바)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을 부처의 법을 수호하는 전륜성왕으로 인정했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팍바에게 티벹 통치를 위임했다.(전륜성왕으로 명확히 인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전륜성왕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상징물이 보인다고 한다)

 

몽골제국의 대칸이자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와 파스파(팍바)가 티벹 불교와 국왕 송첸캄포의 선례를 이어간 것이다.

 

쿠빌라이칸은 티벹불교 승려인 팍바(파스파)를 원나라의 국사로 인정했고 팍바는 쿠빌라이칸의 지시로 원나라의 새로운 문자를 창제했으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수도인 대도(대략 지금의 북경과 위치가 겹친다)

건설할 때 대도의 시설물에 불교적인 상징을 만들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아래는 '세계의 문자사전'에 기재된 파스파 문자에 대한 설명이다.

나라 세조 쿠빌라이 대칸의 지시에 의해 원나라 국사인 티벹 승려 팍바가 창제한 문자이다.

 

이 팍바(파스파)가 만든 문자가 창제되기 전엔 원나라는 위구르 문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위구르는 철륵(투르크)의 15개 부족 중 하나인데 몽골제국 시대 때 '몽골인의 두뇌'라고 불릴 정도로

몽골제국의 참모역할을 했다고 한다.(위구르는 철륵 15개 부족 중 최고 지배 부족이라고 한다.)

 

팍바 문자는 상당히 과학적인 원리로 만든 문자임에도 쓰기 힘든 모양으로 인해 거의 사용되진 못했다.

 

다만, 후에 조선 세종의 한글 창제에 상당한 영향을 준 문자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아래는 '실크로드 사전'에 기재된 원나라 수도 대도에 대한 설명이다.

골이 세운 원나라의 수도 대도에 대한 설명이다. 현재 중국 북경과 그 위 지역이라고 한다. 이 수도를 세운 인물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칸이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는 이 수도를 세울 때 원나라 국사인 티베트 승려 팍바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원나라 때의 건축물이나 비문을 보면 티베트 승려 팍바는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을

전륜성왕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원나라 수도 대도에는 불교의 보살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즉, 원나라 수도 대도의 건축물을 보면 원나라 국사인 팍바가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를 '보살의 화신'이자 '전륜성왕'으로 인정한 상징물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티벹 국왕인 송첸캄포가 관음보살의 화신이자 전륜성왕으로 인정받는 것이나 고려태조 왕건을 미륵보살의 모습을 띤 전륜성왕으로 고려에서 인식하고 동상을 제작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