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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팔선(八仙)과 제왕운기 그리고 고려사 본문
아래는 국가급 문화유산총람(황매희 출판)에 기재된 팔선전설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국가급 문화유산총람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도교사원에서는 팔선을 모시는 장소 또는 팔선궁(八仙宮)이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연화(年画), 자수(刺繡), 자기(瓷器), 화등(花燈) 및 희극(戲剧) 등에 등장하고 있다.
또한 팔선이 서왕모(西王母)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팔선축수(八仙祝壽)라는 용어가 장수를 기원하는 소재로 전해 왔으며, 취팔선(醉八仙) 또는 팔선축수 등이 상연되고 있다.
팔선은 항상 같이 지내며 팔선이 동해를 건너며 용왕과 충돌하는 고사 팔선과해(八仙過海)라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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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팔선에 대한 설명을 보면,
'도교사원에서는 팔선을 모시는 장소 또는 팔선궁(八仙宮)이 있으며'라는 문장이 보인다.
또한 팔선에 대한 전설은 계속 추가되어 고대의 신화속 인물인 서왕모와 연결된 팔선의 전설도 등장한 것도 보인다.
그리고 팔선이 동해를 건너며 용왕과 충돌하는 이야기도 새롭게 창작되어 팔선의 전설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도교와 관련된 이 세가지의 내용은,
고려 때의 기록인 이승휴의 제왕운기나 고려사에서도 고려사의 내용에 구성되어 기재되어 있다.
아래는 서왕모에 대한 다음백과 내용이다.
위의 팔선전설에서 보면 팔선이 서왕모의 생일에 축하하러 간 내용이 보인다. 아래는 위의 백과사전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서왕모의 생일날에는 8명의 신선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이때 서왕모는 이들을 위해 대연회를 베풀고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는데, 곰 발바닥, 원숭이 입술, 용의 간 등을 대접했고, 맨 마지막으로 반도를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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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에 대한 다음백과사전에서도 서왕모의 생일을 맞아서 팔선이 찾아와 축하해준 내용과
서왕모가 복숭아를 접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데 팔선이 서왕모를 방문한 전설은 고려사에도 기재되어 있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고려사의 당악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고려사의 당악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樂官奏會八仙引子, 奉竹竿子二人先舞蹈而入, 左右分立. 樂止, 口號致語曰, “邈在龜臺, 來朝鳳闕, 奉千年之美實, 呈萬福之休祥, 敢冒宸顔, 謹進口號.”
訖, 左右對立. 樂官又奏會八仙引子, 奉威儀十八人如前舞蹈而進, 左右分立.
王母三人·奉盖三人舞蹈而進, 立定. 樂止, 樂官一人奉仙桃盤, 授妓一人(擇年少者), 妓傳奉進王母. 王母奉盤, 唱獻仙桃元宵嘉會詞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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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관(樂官)이 「회팔선(會八仙)」의 인자(引子)를 연주하면, 죽간자(奉竹竿子)를 든 2인이 먼저 춤을 추면서 들어와 좌우로 나누어 선다.
음악이 멎으면 치어(致語)를 외친다.
“머나먼 귀대(龜臺)에 있다가 봉궐(鳳闕)에 내조(來朝)하여, 천년(千年)만에 열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받들고 만복(萬福)의 좋은 상서(祥瑞)를 바치고자, 감히 신안(宸顔)을 뵈옵고 삼가 구호(口號)를 올리나이다.”
〈구호를〉 마치면 좌우로 마주보고 선다.
악관이 또 「회팔선」의 인자를 연주하면, 봉위의(奉威儀) 18인이 앞에서 한 것과 같이, 춤을 추면서 나아가 좌우로 나누어 선다.
서왕모〈와 협(挾)〉 3인과 봉개(奉蓋) 3인이 춤을 추면서 나가서 자리를 잡고 선다.
음악이 멎으면, 악관 1인이 선도(仙桃)를 담은 쟁반을 받들어 기녀 1인【연소자를 택한다.】에게 주고, 기녀는 그것을 왕모에게 받들어 전한다.
왕모는 쟁반을 받들고 헌선도조(獻仙桃調)의 「원소가회사(元宵嘉會詞)」를 창(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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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소개된 팔선과 서왕모의 내용을 보면 팔선이 서왕모를 찾아가고 서왕모가 복숭아를 팔선에게 접대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예식에서 사용되던 음악과 무용을 고려사에서 소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팔선의 전설을 보면 팔선이 동해바다를 건넌 내용이 등장한다.
아래는 중국유기백과에 기재된 팔선에 대한 설명내용이다.
중국유기백과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팔선(八仙)이 배를 타고 동해를 건너는 그림이 보인다. 그림을 보면 용왕으로 추정되는 바다의 용(龍)도 보인다.
팔선(八仙)이 제나라 말기에 등장한 산동성의 민속신앙인 팔신(八神)에서 유래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팔선이 만일 산동성에서 동해를 건너면 바로 도착하는 곳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백령도, 대청도, 강화도, 교동도 등의 섬이고
고려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보면 고려의 수도인 송악(지금의 개성이다)과 개풍(고려 때 명칭은 정주이다), 연안, 배천이다.
아래는 산동성 북부인 연태시(烟台市), 위해시(威海市)와 고려의 수도인 송악(지금의 개성[開城市]이다)의 구글지도이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매우 인접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제왕운기의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제왕운기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惟我皇家系, 於此尤奇異. 唐肅潛龍時, 遊賞東山水. 禮彼八眞仙, 寄宿松山趾.(唐書曰, “肅宗少封忠王.” 本朝學士洪瓘, 所撰世紀曰, “唐忠王, 遊松岳山, 禮八眞仙, 宿養子洞居士寶育家.” 則肅宗來遊明矣. 又按本紀, “龍王謂景康曰, ‘欲西去大唐, 見天子之父乎?’” 則英驗已著. 或以唐書無明文爲難者, 過矣. 且唐之史臣, 豈以副君潛遊外國之事, 筆之於矯書之文耶? 無明文, 理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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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천명(天命)을 받아 군왕(君王)이 되니, 〈그〉 누가 비범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 황가(皇家)의 계보도 이에 더욱 기이하다 할 것이다. 당(唐) 숙종(肅宗)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동방의 산수를 유람하며 놀았다. 저 팔진선(八眞仙)에 예를 올리고 송악산(松岳山) 기슭에 이르러 기숙(寄宿) 하였네.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숙종은 어렸을 때 충왕(忠王)에 책봉되었다.”라고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학사 홍관(洪瓘)이 지은 『세기(世紀)』에 이르기를,“당의 충왕이 송악산에서 놀다가 팔진선에게 예를 올렸고, 양자동(養子洞)의 거사(居士) 보육(寶育)의 집에서 유숙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즉 숙종이 〈송악에〉 와서 놀았던 것은 확실하다.
또한 『본기(本紀)』를 살펴보니, “용왕(龍王)이 경강(景康)에게 이르기를, ‘서쪽 대당(大唐)에 가서, 천자(天子)인 아버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냐?’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한 즉 영험함이 드러난 것이다. 혹 『당서』에 명확한 문헌이 없어서 〈알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당의 사신(史臣)이 어찌 태자[副君]가 몰래 외국을 유람한 일을 교서(矯書)의 글에 적었겠는가? 〈그러니〉 명확한 문헌이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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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제왕운기의 내용을 보면,
팔진선(八眞仙)이 동해를 건너 한반도(개성 송악산 부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에 거주하고 있고 당나라 숙종이 팔진선(八眞仙)에 예을 올린 후 송악산 기슭에서 기숙했다고 기재된 것을 볼 수 있다.
즉, 팔진선이 중국에서 전해지던 전설처럼 동해를 건너서 지금의 개성 부근에 있는 것이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고려사의 고려세계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고려사의 고려세계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唐肅宗皇帝潛邸時, 欲遍遊山川, 以明皇天寶十二載癸巳春, 涉海到浿江西浦. 方潮退, 江渚泥淖, 從官取舟中錢, 布之, 乃登岸. 後名其浦爲錢浦.............................................
遂至松嶽郡, 登鵠嶺南望曰, ‘此地必成都邑.’ 從者曰, ‘此八眞仙住處也.’ 抵摩訶岬養子洞, 寄宿寶育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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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숙종(肅宗) 황제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산천을 두루 유람하고자 하여 명황(明皇, 당 현종) 천보(天寶) 12년 계사년(753) 봄에 바다를 건너 패강(浿江)의 서쪽 나루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썰물이 되어 강가 개펄에 따라온 신하들이 배 안에서 돈을 꺼내어 뿌리고 이에 언덕으로 올라갔다. 뒤에 그 나루터의 이름을 전포(錢浦)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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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송악군(松嶽郡)에 이르러 곡령(鵠嶺)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고, ‘이 땅은 반드시 도읍이 될 것이다.’라고 하자, 따르던 자가 말하기를, ‘이곳이 팔진선(八眞仙)이 사는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마하갑(摩訶岬)의 양자동(養子洞)에 이르러 보육(寶育)의 집에 묵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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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이승휴가 기록한 제왕운기에 이어 조선 초에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에서도
팔진선(八眞仙)이 중국의 전설처럼 중국 기준으로 동해바다(우리나라에선 서해 내지는 황해로 칭한다)를 건너 지금의 개성(송악군松嶽郡)에 거주한 내용이 보인다.
또한 팔진선이 거주하는 곡령(지금의 개성에 있는 송악산이다)을 마하(摩訶 사유하기 힘들고 측량하기 힘들만큼 크다는 뜻이다)갑이라고 불교 용어로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고려태조 왕건의 조상에 대한 전설엔 불교적인 색체와 도교적인 색체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팔선전설의 세가지 이야기 중,
팔선이 동해바다를 건넌 이야기와 팔선이 서왕모를 만난 이야기가 고려사에 기재되어 있다는 내용을 말씀드렸고,
나머지는 팔선궁에 대한 내용만 남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올릴 글에서 말씀드리겠다.
사실 도교의 팔선에 대한 내용은 국내에서 생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1980년 국내에서 크게 히트한 성룡의 영화를 보면 이미 국내에서도 팔선은 대중들에게 소개되어 있었다.
성룡의 영화 '취권1'은 바로 술취한 팔선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이다.
술취한 여덟명의 팔선이 각각의 취권을 창시했다는 설정을 해서 취팔선 투로를 만들고 성룡이 이 취팔선권을 수련해서 적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아래는 성룡 주연의 홍콩영화 취권에서 성룡이 취팔선권을 시연하는 모습이다.
아래는 성룡(황비홍 역)과 황정리(염철심 역)의 대결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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