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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보살과 선인 그리고 도교의 등장 본문
앞에서는 보살과 전륜성왕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석가모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아시타 선인에 의해 예언을 받는다.
성장해서 출가하면 깨달은 부처가 되고,
성장해서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성왕이 된다는 예언이다.
(전륜성왕은 왕 중의 왕으로 대왕이나 황제의 개념이다.)
결국, 석가모니에겐 둘 중에 하나의 길이 놓여 있었고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석가모니가 전륜성왕이 되길 바랐지만, 석가모니는 성장하면서 출가를 선택한다.
인도에서 전해지는 전륜성왕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전륜성왕은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출가한다고 전해진다.
즉, 부처가 되려면 결국 왕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궁예 편에 보면,
나라의 국호를 태봉으로 바꾼 내용을 기술한 후 선종스님이 자칭 미륵불로 칭했다는 내용도 기술한다.
선종은 법명이어서 왕이 되기 이전 승려일 때 미륵불을 칭한 것처럼 해석되지만,
글의 순서를 보면 왕이 된 후 미륵불을 칭한 사건이 기술되어 있어서 사건의 순서가 무엇이 먼저인지는 삼국사기 본문만 가지고는 정확히 알긴 힘들다.
대략 904년부터 왕으로 칭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 다음에 기술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선종 스님과 왕이라는 표기가 혼재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904년 이전에 해당되는 선종 스님이 왕으로 칭하기 이전의 일은 삼국사기에선 선종 스님으로 기재했고,
904년 이후에 해당되는 선종 스님이 왕이 된 이후의 일은 궁예를 '왕'으로 기재했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대왕 궁예가 왕이 되기 이전인 선종스님 때부터 자신을 미륵불로 칭했다 본다.
아무 기반도 없는 선종스님이 미륵불을 칭하지 않고 짧은 시간이 사람들을 결집시켜 세를 불리고 나라의 형태인 관직을 만들어 대왕으로 불리는 것은 쉽지 않다.
(삼국사기엔 904년부터 궁예는 왕이라고 칭했다고 기재되어 있지만 고려세조 용건이 896년 궁예를 만났을 때 고려세조 용건은 궁예에게 대왕이라고 칭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마도 고려세조 용건은 궁예를 대왕이라고 칭하면서 예우를 해 준 거라고 본다. 그리고 904년도에 궁예는 왕이나 황제가 아닌 대왕이라는 명칭으로 등극했다고 본다.)
따라서 선종 스님은 스스로 미륵부처가 되었음에도 이후엔 왕이라는 직분까지 생긴 것이다.
(891년 명주[강릉]를 정복한 이후 나라의 모양을 갖춘 내외 관직을 설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904년 이전까지 왕은 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부처의 법에 어긋날까?
확실한 기준이 될 명문 규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석가모니 출가 전의 아시타 선인 이야기를 보면 근본 취지는 부처와 왕을 겸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세상의 인과관계에 따른 업을 남기지 않는 부처의 성격을 보면,
전륜성왕과 부처는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된다.
즉, 불교적으로 궁예는 큰 시빗거리를 남긴 것이다.
만일 삼국사기에 기재된 글의 순서대로,
궁예가 선종스님 때 미륵부처를 칭하지 않고 궁예가 왕이 된 상태에서 미륵부처까지 칭했다면 이는 석가모니 일대기의 전륜성왕 이야기와 어긋난다.
석가모니 일대기에 보면 전륜성왕과 부처는 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예 대왕이 스스로 미륵불을 칭하면서 새로운 경전 20여권을 만들었다는 삼국사기 내용과
석총 스님은 그 경전을 보고는
'사설과 괴담'이라고 평했다가 궁예에게 죽임을 당한 내용,
삼국사기에선 '내용이 모두 경이 아닌 것들'이라고 평한 내용을 보면
궁예 대왕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행동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전륜성왕의 개념, 출가와 의미 등 자신의 행동이 불교의 근본이념과는 어긋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기존의 불교와는 다른 새로운 내용의 새로운 경전들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즉, 궁예 대왕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거라고 본다.
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드리고 지금부터는 도교에 대한 말씀을 드린다.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아시타 선인이 석가모니가 아직 아기 때 석가모니의 일생을 예언했다고 말씀드렸다.
아래는 아시타선인(아사타선인 阿私陀仙人)에 대한 문화원형백과 사전 내용이다.
아시타선인은 아사타선인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선인 외에 현인으로도 번역해서 표기한다.
주로 아시타를 선인(仙人)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를 더 자주 본다.
히말라야산에서 수행을 하니 선인(仙人)으로 번역한 거로 보이는데,
사실 이 선인(仙人)이라는 한자표기는 도교의 개념이라고 한다.
'人(사람인)'자 옆에 '山(뫼산)'자가 있으니 산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인데,
아시타라가 히말라야산에서 수행하던 인물이어서 국내에서 선인(仙人)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선인(仙人)이라는 개념은 중국의 토착신앙 내지는 그에 바탕을 둔 도교의 단어이며,
이 선인(仙人)이라는 단어와 관념이 생긴 유래는 중국의 토착신앙인 신선(神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두산백과에 기재된 신선사상에 대한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두산백과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생긴 불로장수(不老長壽)에 관한사상.
고대 제(齊)나라의 북동 해안에는 명산(名山)을 대상으로 한 팔신(八神)의 제사가 있어, 이 해안의 산들을 제사지내는 무당들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라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의 존재를 믿었다.
《사기(史記)》의 <봉선서(封禪書)>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삼신산에는 선인(仙人)이 살고 불사(不死)의 약이 있다고 하며,........
이런 현상이 제나라 땅에서 비롯된 추연(鄒衍)의 오행설(五行說)이나 구주설(九州說)과 같은 사상과 융합됨으로써 신선사상이 형성되어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編)>에는 대여(岱輿)·원교(員嶠)·방허(方虛)·영주(瀛州)·봉래(蓬萊)의 다섯 산에 사는 사람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선성(仙聖)으로, 공중을 난다고 되어 있으며, 또한 《초사(楚辭)》의 <천문편(天問編)>에는 쿤룬산[昆崙山]을 신선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장자(莊子)》의 <태종사편(太宗師編)>의 서왕모(西王母)를 득도(得道)한 진인(眞人)의 한 사람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입각한 것이며, 신선사상의 맥락이 멀리 서쪽까지 뻗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선(仙:僊)이란 불로불사의 신격(神格)을 가진 것을 말한다.
불로불사하기 위해서는 단사(丹砂)나 황금을 얻기 위해 연금(鍊金)을 함으로 화덕을 모시며 천자(天子)는 봉선(封禪:천자가 지내는 천지의 제사로, 흙을 쌓아올려 天을 모시는 것이 封, 산천을 모시는 것이 禪이다)의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서, 선(仙)에 주술적(呪術的)·종교적 요소가 가미되어 신선이라고 병칭(倂稱)하게 되었다.
또한 불로불사의 능력을 얻으려면 산에 들어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신선과 명산(名山)의 관계가 생겼다.
《장자(莊子)》에 원시적 요소가 있는 <소요유편(消遙遊編)>에, 묘고사산(藐姑射山)에 있는 신인(神人)은 오곡(五穀)을 입에 대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피부는 처녀의 것처럼 곱고 공중을 난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인격은 장자철학의 이른바 도(道)를 체득한 것을 말하며 《장자》에서는 지인(至人:齋物論編)·진인(眞人:太宗師編)이라 부르고, 지인의 본질을 신(神)이라 규정하였다.
또한 《열자(列子)》의 <황제편(黃帝編)>에는 《장자》의 <소요유편>을 따라 신인(神人)이라 하였고, 역시 <탕문편>에서는 선성이라 하였다...........
불로불사의 선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정체성(停滯性)이 깊은 중국의 봉건사회에서는 민중에게 극히
매력적인 목표였으리라고 생각되거니와, 특히 봉건군주 정도 되면 그 욕구는 더욱 강했을 것이다.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서복(徐福) 등 방사(方士)를 삼신산(三神山)에 파견하여 불사(不死)의 약을 구하게 하였고,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봉선(封禪)의 제사를 지내어 방사를 후히 대우하고 이에 관계되는 《한무내전(漢武內傳)》을 엮었다.
또한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도 신선을 믿고 방사를 중용(重用)했기 때문에 신선가(神仙家)가 모여 《회남중서(淮南中書)》를 썼으며, 이것이 훗날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전해져, 마침내 도교(道敎)가 형성되면서 그 속에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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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는 철학적으론 고대의 춘추시대 때부터 알려진 노자와 장자의 사상,
전국시대 말기에 산동성에서 등장한 팔신(八神)과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토속신앙
그리고 인도와 아프카니스탄을 거쳐 중국에 유입된 대승불교가 결합되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교라고 한다.
종교로서 체계화 된 것은 북위 때의 인물인 구겸지라고 한다.
따라서 도교는 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리고 교리적으로 각각의 근원을 찾아서 연구하고 파악해야지 하나의 근본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도교의 신앙적인 연원은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에서 등장한 팔신(八神)과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신앙이라고 한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보면 삼신산(三神山)과 선인(仙人)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한다.
전국시대 말기이면 대략 기원전 300년에서 221년 사이로 추정되고 제나라에서도 북부 산지의 해안 지역에서 이러한 신앙이 있었다고 하니,
지금의 연태시(烟台市), 위해시(威海市) 등이 위치한 산동성 북부 지역들의 민속신앙으로 추정된다.
이 신선사상은 전국시대 말기를 거쳐 통일국가인 진나라나 한나라 때엔 중국의 지배층이 아닌 민간에서의 민속신앙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불로불사'를 꿈꾼다는 측면으로 인해 진나라 시황제나 한나라 문제도 관심을 가졌고 전한의 왕족인 회남왕 유안 역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아래는 제(齊)나라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내용이다.
고대의 제나라를 보면 지금의 산동성이다.
두산백과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와 가까운 지역이며 고려의 수도인 개경,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와 가깝다.
아래는 선인에 대한 두산백과사전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두산백과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신선(神仙)이라고도 한다.
인간세계를 떠나 산속에 숨어 사는데, 불로불사(不老不死)가 그 특징이다...
도교에 의하면, 상천(上天)에는 피안(彼岸)의 세계가 있고 거기에는 초월자(超越者), 즉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제왕이 있다.
제왕은 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동태를 자세히 살핀다.
사명(司命)이라는 신이 그 곁에 있어서 현세인간의 수명이나 행동 등을 전부 기록한다.
인간의 운명은 이 피안의 세계에 있는 신들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믿은 일종의 숙명론으로 제왕에게 선택된 자만이 선인이 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자만이 승천(昇天)하여 신들 속에 끼일 수 있다.
이 도교를 조직화하여 종교로 만든 것은 북위(北魏)의 구겸지(寇謙之)였다.
그는 고래의 숙명론적인 토속신앙에 불교의 교리와 의식·조직 등을 가미하여 교단(敎團)을 성립시켰다.
한편, 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도교를 신봉하여 도사 120명을 양성, 도교를 위한 제단과 사당(祠堂)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들 선인이 공통적으로 갖는 속성은 불로연년(不老延年)이었다.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며 장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각 흐름의 여러 가지 수업을 쌓고 또 좋은 단약을 먹으면 저절로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게 되고 천상에 올라가서 제왕이 있는 상천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선인이 되기 위한 각종 술(術)을 선술(仙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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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특징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이다.
도교의 교리에 보면 맨 위의 하늘엔 제왕이 있고 그 제왕의 옆엔 사명이라는 신이 있어서 인간들의 세계를 주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인간들 중에 선택된 자가 선인이며 그 선인들 중에서도 뛰어난 자만이 승천하여 신들 속에 끼일 수 있다고 한다.
위의 글을 보면 선인은 아직은 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승천해서 신들에 끼지는 못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마치 선인은 대승불교에서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보살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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