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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4 본문

태조왕건과 삼한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 만주원류고의 삼한 4

박지원( baghatur khan) 2022. 12. 12. 13:56

아래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 만주원류고(남주성 번역, 글모아 출판)의 광고이다. 이 광고를 보면 하단에 흠정 만주원류고의 목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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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목차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賀 辭
역자 서문
解 題
일러두기

제요(提要)

권수(卷首)
유지(諭旨) · 27 주접(奏摺) · 34 범례(凡例) · 37

권1(卷一)
부족1(部族 一)
만주(滿洲) · 47 숙신(肅) · 53 부여(夫餘) · 59

..................................................................

 

주원류고의 목차에 보면 권1(卷一) 부족1(部族 一)에 만주, 부여, 숙신이 등장한다.

 

만주는 우리나라에선 지금 중국의 동북 3성 전체 내지는 요동지역과 제1 송화강 이남의 지역 명칭으로 부르고 있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실 청나라에서 밝힌 만주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이 내용이 아니다.

 

청나라 '만주실록'에서 기록한 만주의 의미는 철륵, 철리(철리말갈), 오국성으로 불렸던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에서등장한 부족(부족국가) 명칭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청나라의 공식 견해가 아닌 실제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전설에 의하면 만주라는 명칭은 부쿠리용손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족 내지 세력의 명칭이었다.

 

즉, 청나라의 공식 문서와 기록에선 만주는 부쿠리 용손의 후손과 부쿠리 용손을 지도자로 추대한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에 거주하던 세력들로 구성된 나라 이름을 만주라고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청나라가 공식적으로 이렇게 정의를 내리기 이전에 실제 구전으로 전해지던 부쿠리 용손의 전설을 보면, 부쿠리 용손이라는 인물은 흑룡강성 의란현으로 이주했거나 흑룡강성 의란현으로 이주해서 그 곳에 거주한 적은 없었고

 

지금의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에서 가까운 중국의 부쿠리 산에서 거주하던 인물이었으며 부쿠리 용손의 후손이 그 지역에 살 때 그 일족 들을 만주라고 칭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부쿠리 용손의 후손이 후에 남하해서 흑룡강성 의란현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 후손 들이 바로 이 의란현에서 알타리(오도리) 부족과 함께 거주하던 후르카 부족이라고 한다.

 

이 의란현 세력 중 알타리 부족의 추장이 후에 청나라 황실에서 자신들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맹가첩목아이며

 

이들 알타리와 후르카는 고려 말에 흑룡강성 의란현 지역에서 이주하여 각각 조선 초기 함경북도 회령과 백두산 서쪽(중국에선 백두산 서쪽이 아닌 지금의 흑룡강성 동녕현으로 본다) 그리고 압록강 위에 거주하며

명나라 행정구역에 편제되어 건주좌위, 건주우위, 건주위에 속하면서 활동하다가,

 

약 200년 후에 누르하치가 건주세력을 형성한 후 누르하치와 그 후손들이 이들 건주세력과 함께 후금과 청나라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맹가첩목아는 실제 청나라 황실의 조상이 아니며,

 

실제 청나라 황실은 옛 철륵(철리, 철리말갈) 출신인 고려 왕건의 후손들이며 이들이 조선 초기 왕씨 학살을 피해서 함경북도와 동북3성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역시 옛 철륵(철리, 철리말갈)의 후예인 알타리, 후르카와 함께 건주세력을 이룬 후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에 의해 후금과 청나라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이 만주원류고 본문에 등장하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주장을 보면, 만주는 위의 나라 이름 외에 문수보살이라는 뜻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불교의 문수보살이 원래 범어(인도어)론 만주실리이기 때문이다.

 

즉, 만주엔 두 가지 의미의 어원이 있다는 것인데 이 것은 후에 다시 상세히 말씀드리고,

일단 이 만주원류고에서 만주는 청나라 황실과 그들의 세력이었던 건주(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를 뜻하는 용어이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통용 되는 동북3성이나 요동과 제1송화강 이남 지역의 명칭은 아니다.

 

또한 이 건주가 명나라에서 정한 행정구역 명칭이고 이 행정구역에서 활동하던 세력들을 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하면서 이들 건주세력을 여진족으로 명나라에서 분류하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도 이 건주의 주 구성원과 후에 후금, 청나라를 세운 세력은 오랑캐 계열인 알타리와 후르카이지 여진족이 아니다.

 

물론 건주세력 내에 완안 부 등 일부 여진으로 보이는 세력이 있지만 이들은 건주세력의 주 구성원이 아니다.

 

다시 목차로 돌아와서 만주라는 청나라 황실과 의란현 세력 외에 이제 청나라 황실과 의란현 세력 들의 조상과 관련된 지역 들을 열거하는 데 지역 명칭으로 가장 먼저 부여와 숙신이 등장한다.

 

즉, 청나라 황실은 자신들의 조상과 관련된 나라 내지 세력을 부여와 숙신에서 찾고 있으며 이들을 가장 먼저 열거한다.

 

만주라는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을 근거로 하는 나라와 종족 명칭을 먼저 밝힌 후 시대를 다시 올라가서 부여와 숙신이라는 나라와 세력을 밝히는 문장 구조이다.

 

부쿠리 용손은 내 개인적인 견해론 대략 고려 후기 때 인물로 추정되고 청나라가 각색한 전설처럼 의란현에 나라를 세웠다면 고려 후기에 의란현에 세운 나라이니 기원 전에 등장했던 고대 국가인 부여나 숙신과는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청나라 황실 조상이 당나라 군대의 철륵인 부대 소속으로 고구려와 전쟁을 치루면서 몽골을 떠나 이 지역을 점령했었고

 

고구려 멸망 후엔 당나라에서 독립하여 이 지역으로 이주한 후 철륵, 철리말갈 등으로 불리며 옛 부여지역과 숙신지역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청나라 황실과 관련된 나라들을 다루는 만주원류고에선 서두에 가장 먼저 이 부여와 숙신이라는 나라 내지는 세력을 1차적으로 거론한 거라고 본다.

 

아래는 다시 만주원류고의 목차 일부이다.

권1(卷一)
부족1(部族 一)
만주(滿洲) · 47 숙신(肅) · 53 부여(夫餘) · 59

권2(卷二)

부족2(部族 二)
읍루(.婁) · 73 삼한(三韓) · 79 물길(勿吉) · 94

권3(卷三)
부족3(部族 三)
백제(百濟) · 101

권4(卷四)
부족4(部族 四)
신라(新羅) · 147

권5(卷五)
부족5(部族 五)
말갈(靺鞨) · 201

권6(卷六)
부족6(部族 六)
발해(渤海) · 225
..........................

 

신과 부여는 다시 숙신에서 읍루와 물길로 이어지고 말갈과 발해는 지역에 따라 숙신과 부여 모두 포함하고 있다.

 

위의 만주원류고에 기재된 나라 내지 세력을 보면,

우리 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는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는 고구려는 만주원류고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관은 바로 고려세조 용건이 항상 병탄(병합)하려던 삼한의 역사관이고,

만주원류고에 기재된 이들 나라는 바로 고려세조 용건이 주장했던 삼한에 구성된 나라들이며 그 후예들이다.

 

고려세조 용건은 궁예대왕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 변한, 숙신을 열거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위의 세 나라는 고려세조 용건이 정의 내린 '삼한'이다.

 

이들 나라들은 고려세조 용건이 자신의 설을 펼칠 때엔 존재하지 않던 나라들이었지만, 이들의 계승국들을 보면 아래와 같이 정의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전신인 서라벌은 조선의 유민인 진한6부 촌장과
박혁거세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기술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면 최치원은 변한이 백제라고 밝힌다.
따라서 최치원과 동시대 인물인 용건이 밝힌 변한은 바로 백제를 뜻한다고 본다.
고려 때 저술된 제왕운기에서도 최치원의 삼한을 따라
마한 고구려론, 변한 백제론을 배경으로 기술한다

숙신의 계승국들은 용건의 생존시엔 흑수, 철리말갈, 발해(속말말갈)이다.
(철리말갈은 사실 투르크계인 철륵이라고 보지만 말갈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고,
이들의 거주 지역도 말갈족이 분포된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당나라에선 흑수부와 함께 흑수말갈로 구성했었기에 숙신의 지역적 후예인 말갈로 분류했다.)
다만 고려세조 용건의 삼한엔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으며, 이 것을 볼 때 고려세조 용건은 옛 흑수말갈(흑수부와 철리말갈)와 관련된 인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즉, 고려세조 용건의 '삼한론' 도식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후예 = 신라
변한의 후예 = 백제
숙신의 지역적 후예 = 흑수말갈, 철리말갈(철륵), 발해(속말말갈)
국, 위의 내용들을 볼 때 고려세조 용건과 청나라의 만주원류고는 같은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