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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 외국인 부대 흑수(黑水) 본문
아래는 두산백과에 기재된 흑룡강(아무르강)에 대한 설명 내용이다.
고려사에선 이 강을 흑수로 표기했다.
강물이 검은색에 가깝게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 흑룡강 주변에서 활동하던 세력을 흑수라고 표기했다.
고려사의 일리천 전투에 참전한 고려군 소속 외국인 부대
달고, 철륵, 흑수는 이 지도를 봐야 그들의 근거지를 알 수 있다.
달고는 고려 초기엔 납림하 부근에서
이후엔 송눈평원 부근에서 활동하던 세력이다.
철륵은 동쪽으로 흐르는 쑹화강과 무단장이 만나는 지점인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 부근에서 활동하던 세력이다.
그리고 흑수는 바로 이 지도에서 보는 아무르강(헤이룽강, 흑룡강) 주변에서
활동하던 세력이며 주로 아무르강이 쑹화강과 만나는 지점과 그 북부
그리고 러시아 하바롭스크 일대에서 활동하던 세력으로 추정 된다.
아래는 쑹화강(송화강)에 대한 두산백과 설명 내용이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기재된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백두산(白頭山)의 천지(天池)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지린성 북서단의 싼차허[三岔河]에서 남류하는 넌장[嫩江]을 합친 뒤 북동쪽으로 유로를 바꾼다. 하얼빈[哈爾濱]을 거쳐 이란[依蘭]에서 무단강[牧丹江]을 합치고, 다시 자무쓰[佳木斯]를 지나 헤이룽장성 북동단에서 본류(헤이룽강)에 합류한다. |
이 송화강을 보면 백두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이 지도에서 보이는 지린(길림)을 거쳐 눈강(넌장)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급격히 오른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하얼빈을 지나 오른 쪽으로 더 흘러 의란현에선 무단강과 합류하게 되고
계속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흑룡강(아무르강, 헤이룽강)과 만나게 된다.
백두산에서 길림을 거쳐 눈강까지 북쪽으로 흐르는 송화강을
중국에선 제2송화강이라고 칭하며,
눈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시계바늘 2시 방향으로 흘러 흑룡강(아무르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를 중국에선 제1송화강이라고 칭한다.
아래는 무단강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위키백과에 기재된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지린성의 무단링(牡丹嶺)에서 발원해 헤이룽장성을 북쪽으로 흘러 무단장시를 거쳐 하얼빈시의 이란현 부근에서 쑹화강에 합류한다. |
위의 위키백과 설명에서 볼 수 있듯 제1송화강과 무단강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옛 철륵, 철리부 그리고 오국성이 있었던 지금의 하얼번시 의란현이다.
여기서 이란현이라고 표기한 것은 한문 의란(依蘭)의 중국어 발음이다.
아래는 '<왕초일기> 윤태옥의 인문기행'이라는 블로그이다.
글을 올리신 분은 왕초(윤태옥?) 님이신데, 하얼빈시 의란현에 위치한
옛 오국성의 유적지를 방문하신 것으로 보인다.
글과 함께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셨는데 송화강 주변을 차로 이동하시면서
송화강을 촬영하신 동영상이 보이고 송화강과 무단강이 만나는 지점의 사진도 올리셨다.
즉, 이곳이 하얼빈시 의란현이며 사진을 보면 동쪽으로 흐르는 송화강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송화강과 만나는 무단강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고려사에 기재된 철륵 내지 철리국이 있었던 곳이며 이 사진에서 보이는
송화강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바로 고려사에 기재된 흑수(흑룡강)가 등장한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태조 4년 2월 기록이다.
아래에 위의 태조 4년 2월 기록을 원문과 번역 그대로 올려드린다.
(辛巳)四年 春二月 甲子 黑水酋長高子羅, 率百七十人來投. 〈신사〉 4년(921) 봄 2월 갑자 흑수(黑水)의 추장(酋長) 고자라(高子羅)가 170인을 거느리고 내투(來投)하였다. |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태조 4년 4월 기록이다.
아래에 위의 태조 4년 4월 기록을 원문과 번역 그대로 올려드린다.
夏四月 乙酉 黑水阿於閒率二百人來投. 여름 4월 을유 흑수(黑水)의 아어간(阿於閒)이 200인을 거느리고 내투(來投)하였다. |
위의 두 기록을 보면 태조왕건이 고려의 황제로 즉위한지 3년 후인
921년도에 흑수(흑수말갈)의 추장과 역시 지도자급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170인과 200인을 거느리고 고려로 이주한 것을 볼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왕건의 집안은 철륵(철리말갈) 출신으로
720년 이후로 철리말갈(철륵)과 흑수말갈(흑수)이 함께
발해에 대항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태조왕건은 이미 그 이전 선대 때부터 철륵과 흑수에 계속적인 유대 및
연결 내지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들 철륵과 흑수가 당사국이 아님에도
고려와 후백제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 달고와 함께 고려군 소속으로
일리천 전투에 참전을 했다고 보며
이후 고려와 철리국, 흑수 간에 공물 관계에서 보듯
또한 고려와 거란의 전쟁 이후 철리국이 다시 고려에 귀부 의사를 밝혔듯
고려와 철륵, 흑수 간에는 서로 교류를 유지했었다고 본다.
아래는 고려사절요에 기재된 고려문종 윤3월 기록이다.
아래는 고려사에 기재된 고려문종 윤3월 기록이다.
위의 내용은 고려 때 흑수 출신 인물인 고열에 대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재된 내용이다.
고려에서 이방인인 흑수 출신임에도
군인으로서 거듭 군공을 세운 명장이었고 그의 관직은 수사공 상서우복야였으며
그가 죽자 나라에서 3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백관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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