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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일리천 전투의 고려 외국인 부대 철륵(鐵勒) 5 본문
아래는 중국백도백과에 기재된 오국부에 대한 설명이다.
아래는 백도백과에 기재된 오국부에 대한 설명내용이다. 설명내용 그대로 올려드린다.
五國部是遼代契丹人對剖阿里、盆奴裏、奧裏米、越裏篤、越裏吉等五國(即五部)的統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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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면 오국부는 요나라 때 5개 세력으로 구성된 연맹체를 뜻하며 구성원은 부아리, 분노리, 오리미, 월리독, 월리길 총 5개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오국부를 구성하는 5개 세력 중에 월리길은 앞서 말씀드린 철리(철륵)에 해당되며 나머지 4개 세력은 지역적으로 볼 때 흑수말갈에 해당되던 세력으로 보인다.
요나라 당시 월리길(철리, 철륵)을 포함한 5개 세력은 서로 회맹을 맺어 하나의 연맹 세력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들을 오국부(五國部)라고 한다.
하지만 요나라 역사를 다룬 요서에 보면,
이들 5개 세력은 각각 따로 요나라에 조공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5개 세력들은 결속력이 강한 단일 세력이 아닌 느슨한 연맹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백도백과에 기재된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來源於黑水靺鞨,屬遼代廣義的生女真。
分佈在約今黑龍江省依蘭縣附近的松花江下游至黑龍江下游南北兩岸地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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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말갈에서 기원한 세력이며, 요나라 때 넒은 의미로 생여진에 속한 세력이었다.
대략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에서 송화강 하류와 흑룡강 하류 남북에 걸쳐진 지역에 분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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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을 보면,
고려사 일리천 전투에 참전한 달고, 철륵, 흑수 중에 철륵(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 부근의 세력)과 흑수(흑룡강 주변의 세력)의 영역은 이 오국부의 영역과 대략 겹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백도백과에선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생여진에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중국에선 이들 오국부나 오국성(월리길, 철리)을 여진족이긴 하지만 생여진과는 분리된 또 다른 세력으로 보는 견해도 등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들 오국부나 오국성은 여진족이 아니며 투르크계인 오국성(월리길, 철륵, 철리)과 흑수말갈계로 보이는 4개 세력이 회맹을 맺어 느슨한 연맹체국가가 된 것이 오국부(五國部)라고 본다.
즉, 도식을 만들면 다음과 같다.
철리말갈(월리길, 철륵, 오국성) + 흑수말갈계로 보이는 4개 세력 = 오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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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말갈(월리길, 오국성, 철륵) + 흑수말갈계로 보이는 4개 세력 {부아리, 분노리, 오리미, 월리독 } = 오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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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길(오국성, 철륵, 철리말갈) + 부아리 + 분노리 + 오리미 + 월리독 = 오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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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으론 당나라가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설치했던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의 구성원과 비슷하다.
당나라가 설치한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엔 철리말갈(철리)과 흑수부(흑룡강 하류에 거주하는 흑수말갈)가 함께 속했있었다.
즉, 당나라 때 설치한 흑수도독부(黑水都督府)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철리말갈(철륵) + 흑수부(흑룡강 하류에 거주하는 흑수말갈) = 흑수도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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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역시 백도백과 설명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遼聖宗時歸附契丹後,為遼鎮守東北境,兵事屬黃龍府都部署司領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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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 성종 때 거란국에 귀속된 후, 요나라의 동북국경에 진을 치며 지켰다. 이들 오국부의 병사들은 요나라 황룡부도부서사의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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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다시 백도백과 설명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金初,被阿骨打統一,編人女真猛安謀克,成為金代女真的組成部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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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초기, 금나라 태조 완안 아골타에 의해 통일(백도백과에선 통일이라고 표기했으나 병합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되었다. 금나라의 행정조직인 맹안모극에 편입되었고, 금나라에서 여진의 구성원으로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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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 유기백과에서 설명하는 오국부의 구성원 중 하나인 월리길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중국 유기백과에서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今日黑龍江省依蘭縣附近
為遼金時代五國部之一,其城為五國部之盟城,故為五國部頭城,又稱五國城
後該地成為女真斡朵里部、胡里改部的發源地,
並在元代形成斡朵里軍民萬戶府及胡里改軍民萬戶府。
元末明初,兩萬戶開始帥眾南遷附明,逐漸形成建州女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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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 부근에 있었다.
요나라와 금나라 때 오국부의 구성원 중 하나였다. 그 성(월리길)은 오국부의 중심이었다. 오국부두성으로도 칭했었고 중국에선 오국성으로 칭한다.
후에 이 지역은 여진알타리부, 후르카부의 발원지에 해당된다.
아울러서 후에 원나라 때엔 알타리군민만호부와 후르카군민마호부가 세워졌다(월리길[오국성]이 있던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에 원나라의 행정기관인 알타리만호부와 후르카만호부가 세워졌다는 뜻이다.).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알타리만호부와 후르카만호부의 지도자들은 남쪽(지금의 흑룡강성 동녕현과 함경북도 회령을 뜻한다)으로 이주했고 명나라에 귀속되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이들은 건주여진(建州女真, 명나라에선 이들이 당시 여진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건주여진으로 칭했지만 실제 이들은 알타리와 후르카 출신들이고 이들은 금나라 때 여진에 병합된 철리말갈 즉, 철륵 출신이다)으로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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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국부 중 월리길은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 부근에 위치한다는 내용이다.
위치상으로 볼 때 월리길이 바로 철리(철륵)인 것을 볼 수 있다.
오국부의 중심도시는 오국부두성(五國部頭城)이며 중국에선 오국성(五城國)으로 칭하고 바로 월리길이 위치한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이라고 한다.
이 월리길 즉, 오국성은 몽골의 원나라 지배를 받던 당시 알타리(斡朵里)부와 후르카(胡里改)부가 형성되었다고 하며 이들이 후에 청나라를 세우는 건주(建州)세력이 되었다.
이 청나라를 세우는 알타리(斡朵里)와 후르카(胡里改) 출신 세력들을 명나라에선 건주여진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들이 당시 여진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명나라에서 건주여진으로 칭했을 뿐 실제 이들은 알타리(斡朵里)와 후르카(胡里改) 출신이고 이 두 세력은 금나라 때 여진에 병합된 철리말갈(鐵利靺鞨, 철륵[鐵勒]) 출신이지 이들은 여진족이 아니다.
또한 내 개인적인 견해론,
청나라를 세우는 건주세력(명나라에선 건주여진으로 칭한다)의 구성원은 알타리(斡朵里)와 후르카(胡里改) 부족들이지만 청나라 황실은 고려왕건의 후손들이다.
다만 고려왕건이 알타리(斡朵里)와 후르카(胡里改)의 전신인 철륵(鐵勒, 철리말갈[鐵利靺鞨]) 출신이기 때문에 지역적 혈통적으론 조상 때부터 왕건의 후손과 알타리(斡朵里), 후르카(胡里改)는 서로 인연이 있었다.
아래는 중국 백도백과에서 설명하는 오국성이다.
아래는 백도백과 설명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位於黑龍江省哈爾濱市依蘭縣城西北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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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 성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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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국성(五國城)의 위치가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 서북부라고 한다.
옛 철리말갈(鐵利靺鞨, 철륵[鐵勒]) 지역이며 발해의 철리부(鐵利府)에 해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오국성(五國城)은 조선 단종 때 이징옥의 난과 관련된다. 이징옥의 난을 설명드릴 때 다시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실크로드 사전에 기재된 비슈발리크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실크로드 사전에서 설명하는 비슈발리크에 대한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지금은 창길(昌吉) 회족(回族)자치주의 짐사르(吉木薩爾)현(縣)에 속한다.
투르크어로 ‘5성(城)’이란 뜻의 이 고성은 한대에는 차사후국(車師後國)에 속해 있다가
당대에는 북정(北庭)도호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몽골제국 시대에 별실팔리(別失八里)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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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슈발리크는 지금의 신장위구르 지역에 있는 지역이며 투르크어로 좀 더 정확히는 위구르어로 5개의 도시인 5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투르크어 비슈발리크를 몽골의 원나라 때엔 한문으로 음차표기 해서 별실팔리(別失八里)로 칭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원나라 때 제작한 지도를 보면 지금의 흑룡강성 의란현도 이전의 명칭인 오국성(五國城)을 '5개의 성(城)'이라는 뜻을 살려서 투르크어 비슈발리크의 음차표기인 별실팔리(別失八里)로 표기했다 한다(이훈 교수의 '만주족 이야기(너머북스 출판)' 40페이지).
그 지도에서 다른 지역도 이렇게 투르크어로 음차표기를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이 지역은 이전에도 투르크어 음차표기인 철륵으로 표기되었었고 원나라 때도 투르크어(정확히는 위구르어이다) 비슈발리크의 음차표기인 別失八里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려말과 조선초에도 이 지역은 兀良哈(올량합, Wuliangha)이라는 몽골에서 투르크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표기된다.
또한 이들 세력이 활동하던 조선의 두만강 내지 토문강도 흉노어, 투르크어인 tümen(頭曼 두만), Tǔmén(土門 토문)의 음차표기라는 견해도 있다.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우량카이(오랑캐)에 대한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우량카이(오랑캐)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우량카이(몽골어: ᠤᠷᠢᠶᠠᠩᠬᠠᠶ, 한국 한자: 兀良哈 올량합, 페르시아어: اوريانكقت Ūriyānkqat)는
중세 몽골에서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이 알타이 우량카이, 투바인, 야쿠트인 등의
"삼림민"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10세기부터 중국 문헌에 언급이 나타나는데,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확장되어 단순히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일컫는 말처럼 사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몽골인들은 자신들보다 북쪽에 사는 수렵민족을 우량카이라고 불렀고,
명나라와 조선에서는 여진도 우량카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건주여진이 야인여진을 우량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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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위키백과 설명을 보면 투르크(철륵)계열 중 도파(투바)계열이 오랑캐로 칭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에선 옛 철리국 그리고 후엔 오국성으로 불리던 흑룡강성 의란현 출신 부족인 후르카(호리개, 화아아)와 오랑캐를 처음엔 서로 구분해서 표기하다가 1410년 이후로는 서로 구분하지 않고 후르카도 오랑캐라고 표기했다.
아래는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고려사에 기재된 철륵과 철리국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에 참전한 철륵인 부대와 관련이 있고 고구려 멸망 이후 이들은 당나라에서 독립해 옛 부여국 지역으로 이주한 후 최종적으로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시 의란현에 거주하던 세력이었으며,
이들을 상대하는 나라와 각 시대에 따라 이들은 철륵, 철리말갈, 철려, 철리, 오국성, 비슈발리크(별실팔리),
알타리, 후르카, 오랑캐로 불렸었다.
이들 세력의 일부는 고려 말에 흑룡강성 의란현에서 남하해서 알타리는 지금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에, 후르카(조선에선 후에 오랑캐라고 칭한다)는 백두산 서쪽에(백두산 서쪽이 아닌 지금의 흑룡강성 동녕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확한 남하 시점은 모르지만 오랑캐는 함경북도와 두만강 주변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명나라 영락제 시기 명나라 행정구역인 건주위, 건주좌위, 건주우위, 모련위에 편입되었고,
이후 건주위, 건주좌위, 건주우위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활동하던 시기 명나라로 부터 건주여진이라고 불리게 된다.
결국, 청나라를 세운 세력은 바로 이들 철륵(철리국) 내지 오국성의 후예이며 조선에선 이들을 오랑캐로도 칭했다.
청나라 황실은 누르하치 사후 자신들이 알타리(오도리)의 만호 출신인 맹가첩목아의 후예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 내용을 부정한다.
다른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었다. 또한 후에 다시 추가로 설명드리겠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청나라를 세운 청나라 황실은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 중에 칭기즈칸 집안과 통혼한 집안이고
이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이자 칭기즈칸의 후손인 누르하치 집안과 우리집안이 바로 오랑캐라고 불리던 옛 철륵(철리)의 후예들과 청나라의 기반을 세운 거라고 본다.
이들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과 알타리(오도리), 후르카, 오랑캐는 옛 철륵(철리국)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고려태조 왕건 집안이자 누르하치 집안은 내 개인적인 견해론,
순수한 철륵인 즉, 투르크인이 아닌 선비족, 철륵 그리고 칭기즈칸 집안인 황금씨족(알탄우륵)의 혼혈이라고 본다.
결국, 이들 철륵인은 투르크 계이지 여진족이 아니다.
청태종 홍타이지 역시 1635년에 내린 조서에서 자신들과 홀라온(명나라에선 해서여진이라고 칭한다)은 여진족이 아니고
여진족은 시버족(석백족) '초 머르건(이름을 풀이하면 '최고의 명궁'이라고 해석된다)'의 후예이며,
자신들과 여진족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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