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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청태조 누르하치는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일까? 본문
아래는 2016년도 12월 6일 매일경제 기사이다.
위의 기사를 보고 중2때 들었던 우리 집안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그러한 이유로 그동안 누르하치와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해 연구한 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론부터 밝히면 나는 고려태조 왕건의 후손이다.
우리 집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고려가 문을 닫은 후 조선에서 왕씨들을 학살했을 때 우리집안 조상님은 지금의 함경북도로 피신하셨고
기록된 우리 집안의 행적에 의하면 피신하셨던 조상님의 후손들이 다시 조선으로 오신 후엔 함경북도 명천과 경기도 개성에 각각 기거하셨다.
그런데 청나라 황실에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 몽케테무르, 먼터무)는 조선초기 함경북도 회령에서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론 맹가첩목아는 청나라 황실의 조상은 아니라고 본다).
당시 함경북도는 조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고 오랑캐와 여진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당시 조선 내에서 학살된 왕씨들은 고려 내에서 최고위층 왕씨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집안을 비롯해서 청나라 황실인 누르하치 집안은 당시 고려 최고위층 왕씨 집안이었고 몽골 왕족들과도 혼인한 세력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집안의 중시조 이름은 투르크나 몽골, 만주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연구한 내용들은 내 페이스북에 2017년 4월부터 기록했었고 그때부터 계속 공개했기 때문에 이미 읽으신 분들도 계신다.
청나라 황실에선 자신들의 조상을 조선 초기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활동하던 오랑캐 계열인 오도리 부족 출신의 건주좌위 지도자인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 몽케테무르, 먼터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 일본, 대만의 적지 않은 학자들은 청나라 황실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청나라 황실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청나라 황실이 자신들의 조상이자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 몽케테무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시보오치피양구(석보제편고, 錫寶齊篇古)와 푸만(복만, 福滿)이라는 인물이 실제 그 시기의 명나라 기록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생존시에 자신의 조상이 맹가첩목아라고 주장한 적도 없었다.
즉, 맹가첩목아가 청태조 누르하치의 조상이라거나 청나라 황제와 황족인 아이신기오로씨의 조상이라는 것은 누르하치 생존시가 아니라 누르하치 사후 그의 후손들인 청나라 황제와 청나라 기록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또한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는 그 이름부터가 북원(명나라 때의 몽골을 칭하는 명칭이다)에서
칭기즈칸의 후손을 뜻하는 명칭이다.
고려 충선왕 이후 고려왕들과 심양왕은 몽골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혈통들과 결혼하게 되는데(충선왕의 아버지 충렬왕은 '원세조'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했고 충선왕의 조카 왕고는 '원세조'의 증손자인 양왕의 딸 눌룬공주와 결혼했다.)
당시 고려의 최고위층 고려 왕씨인 누르하치 집안과 우리집안의 조상(내 개인적으론 누르하치와 우리집안은 조상이 같다고 본다) 역시 몽골 왕족과 결혼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집안의 조상이자 누르하치 집안의 조상도 당시 원나라 왕족이자 칭기즈칸의 후손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청태종 홍타이지는 명칭부터가 쿠빌라이칸의 후손을 뜻하는 의미인 '홍타이지'이고
청태종 홍타이지는 쿠빌라이칸의 직계 후손인 몽골 차하르 부족을 정복한 후 칭기즈칸의 혈통들로부터 대칸(복드칸)으로 인정받았으므로 청태조 누르하치는 고려시대 때 칭기즈칸 집안과 혼인한 고려 왕씨 집안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몽골에선 칭기즈칸 혈통이 아니면 몽골의 대칸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에게 원나라 옥새를 바치고 대칸(복드칸)으로 인정한 것은 누르하치 집안이 칭기즈칸 후손과 결혼한 고려 왕씨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칭기즈칸이나 그 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직계후손이라야 대칸의 자격이 있는데(이 당시면 쿠빌라이칸을 부계로 하는 후손 중 차하르 부족만이 대칸을 배출할 수 있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면 누르하치와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칭기즈칸 집안의 직계가 아닌 후손이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대칸으로 인정받은 데에는 당시 티벹불교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고려 충선왕 이후 고려 왕들은 계속 쿠빌라이칸 집안의 공주와 결혼해서 혈통적으로 칭기즈칸의 혈통을 유지한 것처럼
고려 왕씨인 누르하치 집안도 고려 때부터 같은 시도를 했다고 보며 실제로 청나라 황실은 칭기즈칸의 동생인 주치 카사르 집안과 청나라 존속기간동안 총 597차례 혼인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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