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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영화 쇼생크 탈출 본문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 책의 한 구절은
바벨론(현재의 이라크)에서
포로생활을 하던유대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어
다시 유대로 돌아온 상황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즉, 페르시아(현재의 이란)가
바벨론을 무너트린 후
바벨론에 의해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해방된 이후의 상황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유대인 상황은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포로에서 벗어났음에도
계속적으로 포로생활에
익숙해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자리잡아
사업적으로 이미 바벨론화 되어서
유대로 돌아가기 싫었던
그리고 돌아가지 않았던 사람부터
유대로 돌아오고도
포로생활동안 이미 익숙해진
바벨론 종교와 관습
그리고 이방인들과의 결혼으로 인한
하나님으로 부터의 멀어짐이
만연하던 시기였습니다.
예전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서 후반부에 보면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낸 나이 든 죄수가
막상 교도소에서 석방될 날이 다가오자
사회에 나오기를 싫어하고
그 생활에 만족해하며
나와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하던
모건 프리드먼은
항상 조기 석방될 기회에
탈락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독관과의 면접에서
자신은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며
새롭게 살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장황하게 설득하며 이야기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감독관(?)은
그런 모건 프리드먼에게
석방대상에서 탈락이라는 결과를 주고요.
영화 후반부 나이들은 모건 프리드먼이
세상에 대한 희망이 없어졌음을 확인했을 때
감독관들은 그를 석방시킵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희망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욕망과 관련이 되기에
감옥에 있던 세상에 있던
죄수 자신이 인생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 죄수의 범행동기도
즉, 모든 위험요소도 사라졌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끝까지 자유와
그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리고 자신이 무죄임을 잊지 않았던
주인공의 탈옥과 승리로 끝납니다.
이전에 석가모니의 마라에 대한
시험을 잠깐 말씀드리고
에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차이점도 말씀드렸고요.
석가모니는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가르침임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낸
당신의 임무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즉, 사탄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예수님 자신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도록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세상이 도래했음을
그리고 진심으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성취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임무를
망각하지 않음으로서
사탄의 질문을 물리칩니다.
위의 영화에
희망을 버림으로서
자유를 얻은
그러나 계속
교도소 생활의 연장으로 살아가는
모건 프리드먼과
(영화에서 보면 모건 프리드먼은
화장실 갈 때도 상급자에게
허락을 받으려 합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며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결국 희망을 실현시킨
주인공이 비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