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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2 본문

사권과 우슈장권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2

박지원( baghatur khan) 2013. 3. 16. 18:00

앞의 글에서는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중체서용론의 정신은

20세기 중반까지 대만과

국민당으로 이어진 것 같고

 

전반서화론은 중국과

공산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전반서화론은

중국 공산당과 그렇기 친하지 않은 이론이라고 하며

서로 비난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전반서화론은

서양의 변증법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맑스 이론과도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이론은 중국의 통치자 모택동에 의해서

20세기 중후반 다시 다듬어져 등장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모택동 시대에

주도된 문화혁명은 전반서화론의

또다른 얼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잠시 뉴스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이 보도 되었는데

그때는 모택동 사후 였으며

 

모택동 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그의 부인 강청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or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테레비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자료화면에는 강청이 재판받는(or 체포 후의) 모습이 아닌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현직 시절의

모습이고요.

 

테레비 화면으로 본 강청의 모습은

어린 제가 보기에

 

매우 단정하면서도 단호한

인상이었습니다.

 

마치 규율이 엄한 여자대학교의

총장 모습과도 비슷한 분위기 였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생각은 언듯 맞은 것 같습니다.

 

중국의 무용 명문 대학인 북경 무도학원은

강청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글을

몇 년적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문화 혁명기간 중

중국의 예술과 문화 부분은

 

모택동의 부인이자

전직 연극배우 였던 강청에 의해

계획되고 시행된 것 같습니다.

 

혹자들은 강청에 대해 평을 할 때

 

강청이 샹해(?)에서 무명배우였고

그의 예술활동이 두각을 크게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권력을 잡았을 때

그녀의 열등감에 따른 획일적 내지는

광기어린 정책이 나왔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전통 문화를

말살하고 서양의 발레와 오페라에만

집중 육성했다고 하고요.

 

당시 이러한 그녀의 정책은

중국무용 뿐만이 아닌 중국무술에도

그 영향을 상당히 미쳤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에

그녀의 성장과정은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그녀는 중국무술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상당한 안목을 겸비한

배우 출신의 권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본다면

강청은 지나칠 정도로

 

장점과 단점이 극명히

나뉘어진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음 말씀은 다음 주 토요일에 올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