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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6 본문

사권과 우슈장권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6

박지원( baghatur khan) 2013. 4. 13. 18:32

앞의 글에서는

산동과 하북 일대의

무술가들이 주동이 된

 

의화단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무술 집안들의

폐습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물자운반수단이 운하가 아닌

철도로 바뀜에 따라

 

많은 실업자들이 등장했다고

말씀드렸고요.

 

또한 중국은 보표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이들은 당시 비적이나 마적 때로 부터

물자를 안전하게 운반해주던

 

현재의 택배영업 및 경호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무술가들이었고요.

 

이들 역시 철도의 등장으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엔 변화된 사회에 맞추어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랃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운하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업자로 전락하거나 부랑자가

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의화단 사건에는

직업을 잃은 부랑자들도

가담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중국 무협영화에 보면

무슨무슨 문파가 등장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내용들을 영화화 했는데

 

실제 당시 중국 환경에서는

일어나기 매우 힘든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던 청나라 때 뿐만 아니라

청나라 이전의 중국 왕조인 명나라 때에도

 

일반인의 무술수련은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이민족이 세운 정부가 아닌

중국 자체내의 정부였지만

 

명나라를 세우 주원장은

백련교도(?) 출신으로

무장봉기에 의해 중국황제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역대 중국 황제 중

초나라를 제압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와 더불어

가장 출신성분이 미천했다고 하고요.

 

백련교는 민간신앙과 불교의 혼합종교로서

(어떤 내용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무장봉기 내지는 반란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종교집단입니다.

 

명나라 황제 자신이 그러한 출신으로

무장봉기에 의해 원나라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종교적 성격을 띤 무술집안이나

무술집단의 무술수련은 엄격히 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는

국가 기강이 균열되면서

그러한 단속이 느슨해졌고

 

이때부터 무술집안이나

무술집단 등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남아있는 무술 문파 들 중엔

이때 등장한 문파들이 많고요.

 

그러다가 청나라가 들어선 후

다시 무술집단이나 무술집안의

무술수련은 금지되었고

 

이 들의 황동은 위축되어

비밀리 수련하고 조직화된

비밀결사가 되었지만

 

약 3백 여년 후 청나라 말기에

청나라의 힘이 균열되면서

다시 활개를 쳤다고 합니다.

 

'중국무술, 중국을 보는 또하나의 창'이라는

책에 보면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다른 무술집단과 교류를 금하던

무술집안이나 무술집단들이

 

함께 무장봉기를 하면서

무술들이 서로 교류가 시작되었고

각 문파의 무술들이 혼합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미 그 이전에도

철도 등 교통의 발달로 인해

각 지역의 무술들이 조금씩

서로 교류되면서

 

여러기법이 혼합된 새로운 무술들이

등장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말씀은 여기까지드리고

다음 말씀은 다음 주 토요일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