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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하스모니아 왕조 10 본문
하스모니아 가문의 시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유대 내에서
기반이 약해진 상황에서도
그동안 그들의 독불장군식의
고집스러운 일관성과 권력지향성은
그들의 추종자 들에겐
결집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오히려 헬라화된 그리고
온건한 보수적 성격의 집단들은
유대 내에서 그 수는 많았지만
여러갈래 여러계통으로 갈라져 있어서
군사적으로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
집단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셀류코스 왕국
즉, 시리아의 사정을 보면
안티오쿠스 5세는 사촌인
데메트리오스 1세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시라아의 왕권으르 노리는
알렉산더 발라스의 도전을 받고 있었고요.
데메트리오스 1세와 알렉산더 발라스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유대 내의 하스모니아 가문 요나단에게
경쟁적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손을 내밉니다.
요나단은 처음엔 데메트리오스 1세에
기우든 듯 했으나
알렉산더 발라스쪽으로 기울었고
알렉산더 발라스는 그 대가로
요나단을 대제사장에 임명합니다.
여기서 서로 경쟁적으로 요나단의
지지를 구했다는 것은
하스모니아 가문이 그동안
유대 내에서 주변인으로 있었슴에도
하스모니아 세력만이 확실한 결집세력으로서
군사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드리고
다음 말씀은 다음 주 수요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도서: 신약 성서 배경 (저자: 헬무트 쾨스터
출판사: 은성)
고대 이스라엘 (저자 : 리 아이 르바인
출판사: 한국신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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