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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본문
누가복음을 읽다보면
예수님께 유달리 편애(?)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분들입니다.
복음서들의 공통적인 내용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로와
사랑이 자주 등장하지만
다른 복음서에 비해 누가복음에선
경제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유달리 더 강조합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차별된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누가복음의 저자나 누가복음의 독자층은
경제적으로 어느 계층에 속하는 분들이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케 됩니다.
예를 든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설교 중에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조금 다르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이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복음에서는 평지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두 복음서에서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마태복음의 독자층이 누가복음과는 달리
유대인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차이로 마태복음에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두 복음서를 비교해보면
마태복음에서는 가난이 물질적인 가난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가난을 뜻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영적인’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며
‘너희’라는 단어가 대신 들어갑니다.
즉, 실제 물질적인 가난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너희’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지칭하실 정도로
매우 현실적이고 직접적입니다.
역시 마태복음에서는
‘의에 주리고’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지금 주린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상도 차이가 있어서 ‘그들’이 아닌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목요일에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