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7 본문

사권과 우슈장권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그리고 쿵후와 우슈 7

박지원( baghatur khan) 2013. 4. 20. 19:14

오늘은 말씀 전에

잠깐 다른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친구신청하신 분이 계신데

불교쪽에 가까운 분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원래 친구를 사귈 때

종교에 구분을 두진 않지만

 

만일 제가 친구수락을 해서

그 것이 공개된다면

 

기독교인들이 보시기에 저는

종교적으로 다원주위인 사람으로 보이며

 

저의 글들이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염려됩니다.

 

신약성경의 바울 선생님 말씀대로

사실 구애받음이 없이

자신은 자유이나

 

나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해

타인의 신앙이나

종교적 가치관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자제하라고 하셨으니

 

미안하지만 친구수락은

곤란합니다.

 

많은 이해부탁드립니다.

 

또한 저의 신앙관은

불교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후에 누가복음을 말씀드릴 때

그러한 모습이 보일 겁니다.

 

친구수락을 하지못해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의화단 사건의 결과와 진행은

세계사 시간에 공부하셔서

모두 아실 겁니다.

 

의화단원들은 서구화가 진행된

대도시를 공격하여

 

외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상업적인 거래를 하는 중국인들이나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들을 공격하거나

살해합니다.

 

의화단원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과신했으며

종교적인 확신에 따라 자신들은

총알도 피해갈 거라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사실 만주족이 지배하던

청나라 정부에서는

 

의화단 같은 종교와 무술로 무장한

사조직이 법질서를 무시하고

무력행사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봐야했지만

의화단의 내건 구호가

'청나라를 도와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

였기 때문에

 

오히려 묵인하면서

측면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양과 일본의 열강들이

청나라 조정을 압박하고

의화단을 토벌하자

 

청나라 정부는 바로

태도를 바꾸어 의화단을

진압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1900년도에

산동과 하북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이로부터 몇년 후

곽원갑 선생이 상해에

정무체육회라는

 

현대식 무술교육 기관을 설립했으니

 

아마도 중국무술의 구습에 대한

반성과 변화의 출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하북출신의 곽원갑 선생이

자신의 고향인 하북이나

근처 산동이 아닌

 

동양의 프랑스(or 파리)라는 상해에

현대식 무술 교육기관을 세운 것은

 

하북, 산동의 구습에서 자유로운

그리고 서구화된 도시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선택하셨고

가능했다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곽원갑 선생은 의화단 사건 때

기독교 인들이 자신들 목숨을

살려달라고 요청해 오자

 

의화단원들을 제압하고

그들을 구해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드리고

다음 말씀은 다음 주 토요일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