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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하스모니아 왕조3 본문
시리아에 기반을 둔 셀류코스 왕조와
이집트에 기반을 둔 프톨레미 왕조가
서로 대치되는 지역이
유대지역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알렉산더 사후 프톨레미 왕조의
관할하에 놓여있던 유대지역은
전략적 요충지가 되면서
외부세력의 군사들이
주둔하는 지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치 않았던 유대는
외부세력에 개방된 지역으로 바뀌게 되고요.
셀류코스 왕조나 프톨레미 왕조 모두
알렉산더 제국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유대지역은 알렉산더 제국이 주도하던
헬레니즘에 급속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유대는 프콜레미 왕조와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대내부에선 친 셀류코스 세력과
친 프톨레미 세력이 혼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헬레니즘에 개방적인 세력과
헬레니즘에 배타적인 세력도
혼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에 배타적인 세력도
후에 셀류코스 왕조와 독립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하스모니아 왕조에서 볼 수 있듯
헬레니즘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하스모니아 왕조는
유대의 전통을 지키려는유대 내의
보수적인 세력을대표하는데
하스모니아 왕조 때
여러문화와 명칭 들에선
그리스나 헬레니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56년에서
기원전 323년까지 황제로 다스렸고
기원전 332년에 유대를 정복했는데
셀류코스의 지도자 안티오쿠스 3세는
기원전 200년 경 유대의 예루살렘 지역을
정복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정복 후에도
셀류코스의 지도자 안티오쿠스 3세는
예루살렘 내 유대 고유의 종교와
종교조직 그리고 종교문화에 대해
그 지위와 문화를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도
셀류코스의 새로운 지도자
안티오쿠스 4세의 등장과
세계정세의 변화
그리고 예루살렘 내부의 사정에 의해
변화를 맞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드리고
다음 말씀은 다음 주 수요일에
드리겠습니다. ^^
참고도서: 고대 이스라엘 (출판사: 한국신학 연구소,
저자: 리 아이. 르바인,
역자: 김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