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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홍타이지, 훙타이지(콩타이지), 지농 3 본문
쿠빌라이칸(忽必烈 可汗)의 원나라(元) 때 최초의 지농(Жонон, Жинон)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元世祖忽必烈) 손자인 감말라(甘麻剌)였다.
아래는 감말라(甘麻剌)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유기백과에 기재된 감말라(甘麻剌)에 대한 내용의 원문과 번역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孛兒只斤氏,元世祖忽必烈之孫、元朝太子真金的長子
패아지근(보르지진)씨이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손자이다, 원나라 태자 진김의 맏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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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원나라 때 최초의 지농(Жонон, Жинон)은 칭기즈칸의 손자인 광의의 황금씨족(황금가족)에서 배출되었다는 뜻이다.
칭기즈칸, 툴루이(칭기즈칸의 아들), 쿠빌라이(툴루이의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를 학자들은 협의의 황금씨족으로 분류한다.
이에 비해 광의의 황금씨족은 범위가 좀 더 확장된다. 광의의 황금씨족도 학자들에 따라 정의가 다른데 칭기즈칸과 칭기즈칸의 친형제들의 후손들을 광의의 황금씨족으로 칭한다.
진김(真金)의 아들 감말라(甘麻剌)는 툴루이(拖雷)의 아들이 아니니 협의의 황금씨족은 아니지만 광의의 황금씨족에 속한다.
아래는 다얀 칸(바투뭉케)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다얀 칸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의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정복 전쟁[편집]
1495년 다얀 카안은 우량카이 3위(兀良哈三衛)를 정복했다.
그는 좌익 차하르, 할하, 우량카이, 우익의 오르도스, 투메드, 욘시에브부에 각각 아들들을 보내 현지 족장의 딸과 결혼시키고 해당 부를 장악한다.
이로써 동부 몽골을 통일하였다.
우량카이에 대해서는 보류를 취했는데, 우량카이는 그의 어머니의 일족이기 때문이었다.
다얀 칸은 칭상, 타이시 등의 칭호를 폐지시켰다.
............................................................
6만호 체제[편집]
다얀 칸은 6대 부락을 아들들에게 분봉하였다.
이 6대 부락은 에센타이시 사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나, 다얀 칸의 분봉으로 인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 6만호 체제라 한다.
다얀 칸은 6만호 지배를 실현함으로써 쿠빌라이 계의 몽골 지배를 실현했다.
일반적으로 6만호는 차하르, 할하, 우량하이, 오르도스, 융셰부, 투메드를 지칭하는데, 이 6만호는 좌·우익 3만호로 대별되었다.
좌익 3만호는 칸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었고, 우익 3만호는 칸이 자기 자식들 가운데에서 뽑은 지농의 휘하에 두어졌다.
이때 나타난 부족 집단의 틀이 현재까지 몽골족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원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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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국이 중국 영토를 명나라에게 잃고 몽골로 다시 돌아온 북원(北元) 초기,
원나라 황제 내지 대칸인 쿠빌라이칸의 후손 출신의 북원 황제는 토곤 테무르(원나라 혜종, 명나라에선 원 순제라고 칭한다), 아유시리다라(원나라 혜종과 고려출신의 기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투구스 테무르(아유시리다라의 동생이라는 설이 다수이다)로 이어지다가
투구스 테무르가 예수데르(쿠빌라이의 동생인 아맄부케의 후손이다)에게 피살 당한 후 일시적으로 쿠빌라이칸의 후손의 대칸 승계가 끊어진 적이 있었다.
투구스 테무르를 살해한 예수데르가 오이라트(서몽골)의 도움을 받아 몽골에서 대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데르도 칭기즈칸의 후손이긴 하지만 원세조 쿠빌라이의 후손은 아니며 쿠빌라이에 의해 몽골지역에서 실권을 잃은 쿠빌라이 동생 아맄부케의 후손이다)
그리고 보르지긴 에맄부케(Borǰigin Ariq Böke, 孛兒只斤 阿里不哥)의 후손인 보르지긴 예수데르(孛兒只斤 也速迭兒)가 대칸(卓里克圖汗 조리극도한)이 되었을 때는
원세조 쿠빌라이(元世祖忽必烈)의 색체를 지우기 위해 국호를 대원국(大元國)이 아닌 몽골(Mongol)이라고 칭했었다.
하지만 쿠빌라이칸(忽必烈可汗)의 후손들은 다시 북원(北元)에서 대칸이 되었다.
물론 당시 북원(北元)의 실제 권력은 오이라트(서몽골) 출신의 에센 타이시(也先 太師) 집안이 장악하면서 쿠빌라이칸(忽必烈可汗)의 후손인 톡토아 부카 대칸은 명목 상의 대칸으로 있었지만.
그러다가 1487년 쿠빌라이칸(忽必烈可汗)의 후손인 다얀칸(大元汗)이 오이라트(서몽골)세력을 몰아내고 동몽골을 재 부흥시키면서 그 동안 몽골에서 강력한 세력이었던 6개의 부족들을 통합시킨다.
그리고 다얀칸(大元汗)은 이 몽골의 6개 부족을 각각 3개씩 좌익과 우익으로 나눈 후,
좌익엔 차하르 만호, 할하 만호, 우량카이 만호(Wulianghai Tumen)로 편재하고 우익엔 투메드 만호, 오르도스 만호, 윙시에부 만호로 편재한다.
그리고 좌익 3만호는 다얀칸(大元汗) 자신이 직접 지배하고,
우익 3만호는 다얀칸(大元汗)의 아들 중 유력자를 지농(Жонон, Жинон 濟農, 吉囊)이라는 직분으로 다스리게 한다.
즉, 도표를 만들면 아래와 같다.
좌익 3만호(다얀칸이 대칸으로서 좌익을 직접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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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3만호(다얀칸 아들 중 유력자가 지농으로서 우익을 직접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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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하르 만호
우량카이 만호(오랑캐 만호 兀良哈 萬戶)
할하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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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메드 만호
오르도스 만호
윙시에부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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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좌익에 보면 우량카이 만호(兀良哈萬戶)가 보인다.
그리고 맨 위의 다얀칸(大元汗)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에 보면 우량카이 3위(兀良哈三衛 or 朵顏三衛 or 韃靼三衛)가 있다.
또한 북원 때엔 조선 두만강 안팎엔 하얼빈시 의란현에서 남하한 오랑캐(兀良哈)가 있었다.
오랑캐(兀良哈 우량카이)라고 불리던 이 세 개의 세력은 각각의 세력이었다.
하얼빈시 의란현 출신으로 남하해서 조선의 두만강 부근에 거주하던 오랑캐(兀良哈, 우량카이)에 대해선 이미 이전에 말씀드렸었다.
아래는 제농(濟農)에 대한 중국유기백과의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제농(Жонон, Жинон 濟農, 吉囊)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설명내용 중 일부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清朝至中華民國(1649年-1949年)
額璘臣1649年1656年博碩克圖之子
청나라에서 중화민국(1649年-1949年)
액린신(額璘臣)은 1649년도에서 1656년도까지 (지농으로) 재임했고 박석극도(博碩克圖)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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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해석하면 청나라 때 몽골 오르도스의 수장이자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이었던 액린신(額璘臣)은 박석극도(博碩克圖)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액린신은 북원 말기와 청나라 때에도 몽골지역에서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으로 재임했었고 청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청나라 시기 초대 몽골지역의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을 역임했다.
아래는 액린신(額璘臣)의 아버지인 박석극도(博碩克圖)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박석극도(博碩克圖)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 중 일부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布延巴圖爾鴻台吉長子
(박석극도[博碩克圖]는) 포연파도이 홍태길(布延巴圖爾 鴻台吉 부얀바투르 콩타이지)의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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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얀바투르(布延巴圖爾)의 이름 끝에 칭기즈칸 후손을 뜻하는 칭호인 콩타이지(鴻台吉 Qong Tayiji)가 있는 것을 볼 때,
포연파도이 홍태길(布延巴圖爾 鴻台吉 부얀바투르 콩타이지)나 박석극도(博碩克圖 보슈어커투) 모두 칭기즈칸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아래는 박석극도(博碩克圖 보슈어커투)의 아버지인 포연파도이 홍태길(布延巴圖爾 鴻台吉 부얀바투르 콩타이지)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포연파도이 홍태길(布延巴圖爾 鴻台吉부얀바투르 콩타이지)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 중 일부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袞必里克墨爾根之孫
(포연파도이 홍태길[布延巴圖爾 鴻台吉]은) 곤필리극 묵이근(袞必里克 墨爾根 군빌리케 메르겐)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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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곤필리극 묵이근(袞必里克 墨爾根 군빌리케 메르겐)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곤필리극 묵이근(袞必里克 墨爾根 군빌리케 메르겐)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설명 중 일부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他是達延汗之孫,主要統領鄂爾多斯部(即濟農部)
그는 달연한(達延汗, 북원의 대칸인 다얀칸[大元汗]의 명나라 표기이다)의 손자이며, 악이다사(鄂爾多斯 우익의 만호 중 하나인 오르도스 부)의 최고 지도자이다. 오르도스 부는 우익 제농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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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오르도스부의 우익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인 군빌리케 메르겐(袞必里克 墨爾根)은 북원의 대칸인 다얀칸(大元汗) 손자인 것을 볼 수 있다.
다얀칸(大元汗)은 대원국의 황제인 쿠빌라이칸(元世祖 忽必烈 可汗)의 후손인 것은 말씀드렸었다.
아래는 달연한(達延汗)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달연한(達延汗)은 북원의 대칸인 다얀칸(大元汗)의 명나라식 표기이다.
위의 중국유기백과 내용들을 종합하면,
다얀칸(大元汗)의 손자가 군빌리케 메르겐(袞必里克 墨爾根)이며 군빌리케 메르겐(袞必里克 墨爾根)의 손자는 부얀바투르 콩타이지(布延巴圖爾 鴻台吉)인 것을 볼 수 있다.
즉, 북원 때 오르도스부의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인 군빌리케 메르겐(袞必里克 墨爾根)은 원태조 칭기즈칸과 원세조 쿠빌라이칸(元世祖 忽必烈 可汗)의 후손이며,
부얀바투르 콩타이지는 콩타이지(布延巴圖爾 鴻台吉)라는 이름에서 보듯 쿠빌라이칸(忽必烈 可汗)의 후손이자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의 손자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청나라 때 몽골에서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이었던 액린신(額璘臣)은 부얀바투르 콩타이지(布延巴圖爾 鴻台吉)의 손자인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칭기즈칸 후손 중에서도 북원(北元)이나 청나라 초기의 몽골에선 쿠빌라이칸(忽必烈可汗)의 후손들이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을 역임한다.
쿠빌라이칸(忽必烈 可汗) 후손이 아닌 다른 칭기즈칸 아들이나 손자 계통이 북원(北元)에서 제농(濟農 Жонон, Жинон)을 역임한 경우는 내 경우엔 아직 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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