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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흉노의 '탱리고도선우'와 무당의 '굿' 본문
아래는 중국CCTV에서 방송한 冒頓(묵돌, 묵특, Mòdú)에 대한 영상이다.
冒頓(묵돌, 묵특, Mòdú)은 흉노제국의 지도자이다.
우리나라에선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로 알려진 인물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버지 두만선우(頭曼單于)를 명적이라는 화살로 살해한 후 흉노의 지도자가 되었다.
서쪽의 월지(이란 계 혈통의 세력이다)를 더 서쪽으로, 동쪽의 동호(몽골 계 혈통의 세력이다)를 더 동쪽으로 몰아내었으며, 남쪽의 중국 한나라(漢, 前漢, 西漢)를 제압한 후 한나라부터 매년 조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동호가 冒頓(묵돌, 묵특, Mòdú)에게 밀려 동쪽으로 이동해서 선비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설적으로 冒頓(묵돌, 묵특, Mòdú)은 선비족이라는 명칭을 만든 인물이 된다.
아래는 冒頓(묵돌, 묵특, Mòdú)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유기백과사전에 기재된 일부 내용과 번역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서 정확히 번역을 할 수 없지만 번역기를 이용하고 내가 알고 있는 한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번역된다. (물론 정확한 번역은 아니니, 읽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아래 번역에 가로 안에 파란색 글씨는 내 개인적인 해설이다.)
「冒頓」,南京官話:mä5 du5,中古擬音:mok tuot,
莫北切、當沒切,由此反推,
其名字的發音在上古漢語中,有可能類似於*baγtur。
*baγtur和在後世中亞語言中意為「英雄」的字
眼baγatur可能有關。
[此字第詞源不詳,但其第一部分,
很有可能源自伊朗語支中意為「神」或「主子」的字眼*baγ,
也見於後世許多中亞人士的頭銜當中。
Clauson則聲稱此字是匈奴語的固有單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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冒頓(묵돌)의 '남경관화(아마도 근대 중국의 표준 발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로는 mä5 du5라고 발음되지만, 중세 중국어 발음은 mok tuot이라고 발음되며, 고대 중국어 발음으론 baγtur(박투르)와 유사한 발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γ'자는 영어알파벳 'Y ,y'가 아니라 그리스 알파벳의 '감마'이며 대략 g로 발음된다.)
*baγtur(박투르)는 후기 중앙아시아 언어에서 "영웅"을 의미하는 baγatur(바가투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첫 부분은, 아마도 "신(god)" 또는 "주인(lord)"을 의미하는 이란어 *baγ(bag)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후세에 많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칭호에서도 볼 수 있다.
Clauson은 그 단어가 흉노 고유의 단어라고 주장한다.
(이란어[페르시아어] 계통의 어원인 baγ[bag]가 흉노에선 baγtur 라는 단어로 파생되었다는 견해이며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는 '크리스토퍼 백위드'이다. 그에 반해 흉노 고유의 단어로 보는 학자는 '클라우슨'이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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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발음이 순수한 한족(漢族)의 발음이라면, 중기 이후 중국어 발음에 변화를 보이는 것은 투르크어와 몽골어 만주어의 영향을 받아 발음이 달라진 거라 한다.
冒頓(묵돌)은 흉노인들의 발음을 고대의 중국인들이 들리는 데로 한자로 음차표기한 것인데,
당시엔 흉노인들이 baγtur(박투르)라고 발음한 것을 중국인들이 들리는 데로 冒頓이라고 한자음차표기 한 것이다.
冒頓은 현대 중국어로는 Mòdú 라는 발음하지만 중세 중국어로는 mok tuot이라고 발음하며,
고대 중국어로는 baγtur(bagtur)로 발음했을 거라는 내용이다.
冒頓이라는 한자(漢字)를 지금 우리나라 발음으로 읽으면 '묵돌'이나 '모둔'으로 발음하고 표기된다.
아래는 위키백과에 기재된 그리스어 알파벳 감마에 대한 설명이다.
아래는 위의 위키백과에 기재된 내용의 일부이다.
Γ, γ(그리스어: Γάμμα 감마[*])는 그리스 문자 중 세 번째 글자이다.
그리스 숫자에서는 3을 의미한다.
원래는 페니키아 문자의 기멜 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문자의 C와 G, 키릴 문자의 Г가 이 문자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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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흉노 제국의 지도자 호칭인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에 대한 실크로드사전(정수일 저, 창비 출판)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실크로드 사전 내용의 일부이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조(趙)나라의 효성왕(孝成王, 재위 기원전 265~245) 시대에 선우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 칭호로 쓰인 것은 기원전 209년에 아들 모돈(冒頓)에게 살해된 두만선우(頭曼單于) 때부터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의하면 선우의 정식 명칭은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다.
흉노어로 ‘탱리’는 ‘하늘’ ‘고도’는 ‘아들’ ‘선우’는 ‘광대한 모습’이란 뜻이다.
‘탱리’가 투르크어나 몽골어에서 하늘, 즉 신을 의미하는 ‘텡구리’에서 유래한 것은 틀림 없는 것 같다.
‘고도’는 투르크어의 ‘행운’이나 샤머니즘에서 영혼을 뜻하는 ‘꾸트’(qut)에서 연유하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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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지도자 호칭은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이다.
위의 백과사전 설명에서도 기재되어 있듯, 冒頓(묵돌, bagtur)때에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며 지도자의 호칭으론 冒頓(묵돌, bagtur)의 아버지인 頭曼(두만, tóumàn) 때에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라는 지도자 명칭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후한' 때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에선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의 뜻을 풀이하는 내용이 등장하는 데,
탱리(撑犁)는 흉노인들의 숭배 대상인 '하늘의 신' 탱그리를 뜻한다고 하며 고도(孤塗)는 한서(漢書)에선 '아들'이라는 뜻으로 기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서(漢書)에서 풀이한 내용과 달리 학자들 중엔 고도(孤塗)의 의미를 '아들'이라고 풀이하기 보다는
'제사장(무당)이 하늘의 신 탱그리에게 받는 은혜나 축복'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고도(孤塗)의 1차적 의미는 '제사장(무당)이 하늘의 신 탱그리에게 받는 은혜나 축복'이고,
2차적 의미는 '아들'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제사장(무당)이 탱그리에 접신 된 상태를 '하늘의 신 탱그리에게 받은 은혜 내지 축복'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탱그리와 접신이 된 상태이므로 '하늘의 신 탱그리의 아들'이라고,
즉, 천자(天子)라는 개념으로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한문으로 음차표기된 고도(孤塗)는 흉노의 언어 즉, 투르크어 꾸트(qut)의 한문 음차표기로 본다.
아래는 '한국민속신앙사전'의 '무속신앙' 편에 기재된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한국민속신앙사전'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대개는 무당이 신에게 바치는 제의를 가리킨다.
굿은 굿을 의뢰하는 인간과 굿을 받는 신, 중간존재로서 무당이 있어야 진행된다.
굿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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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제사장(무당)이 그들의 신과 접신된 상태에서 행하는 행동이며 주로 귀신을 퇴치하거나 질병을 퇴치하거나 복을 비는 의식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우리나라에서 무당들이 행하는 '굿'과 투르크어 '꾸트(qut)'는 같은 단어라고 본다.
발음도 유사하며 의미는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흉노의 지도자 호칭인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의 고도(孤塗)는 투르크어 꾸트(qut)이며 이 단어가 우리나라로 이전되어 '굿'이 되었다 본다.
또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러한 투르크(철륵)어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부계가 선비계이고 모계가 투르크(철륵)계인 고려태조 왕건의 조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며 그 조상의 후손이 한반도로 이주한 후 전해진 것이라고 본다.
박혁거세의 예에서 보듯 박혁거세로 인해 진한(辰韓) 때 투르크어가 서라벌(徐羅伐)로 전해진 것 아니냐고도 볼 수 있지만 고려태조 왕건의 조상 때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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