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신라 박씨의 어원에 대한 견해 본문

三韓에 鮮卑와 鐵勒 문화

신라 박씨의 어원에 대한 견해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1. 31. 15:09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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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의 본문 번역 일부이다.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 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 楊山村, 二曰突山 髙墟村, 三曰觜山 珍支村(或云干珍村), 四曰茂山 大樹村, 五曰金山 加利村, 六曰明活山 髙耶村, 是爲辰韓六部.
髙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徃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及年十餘歳, 岐嶷然夙成. 六部人以其生神異, 推尊之, 至是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 居西干 辰言王(或云呼貴人之稱).
시조의 성은 박(朴)이고, 이름은 혁거세(赫居世)이다. 전한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B.C. 57) 갑자년(甲子年) 4월 병진일(丙辰日)(일설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한다.)에 즉위하여 호칭을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하니, 이때 나이가 13세였다. 나라 이름은 서나벌(徐那伐)이라고 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면서 6촌(六村)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觜山)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이라고도 한다.), 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으로, 이들이 바로 진한(辰韓)의 6부이다.
고허촌의 우두머리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의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서 가서 살펴보니 홀연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이에 거두어서 길렀는데, 나이 십여 세가 되자 쑥쑥 커서 남들보다 일찍 성인의 모습을 갖추었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진한 사람들(辰人) 표주박[瓠]을 일컬어 ‘박’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큰 알이 표주박처럼 생겼으므로, 이로 인해 ‘박’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 말(辰言)로 ‘왕’이라는 뜻이다. (혹은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아래는 양주동 교수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이다.

 

양주동

일제강점기 『조선의 맥박』, 『조선고가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영문학자, 시인. [개설] 본관은 남해(南海). 호는 무애(无涯). 아버지는 양원장(梁元章)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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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어릴 때는 박씨(朴氏)를 '밝씨'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신라 박씨(新羅 朴氏)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이름은 '붉은 해'와 관련된 단어이기 때문에

박씨의 '박'은 순수한 우리 말인 '밝다'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는 이러한 주장이 등장한 것은 바로 양주동 교수에 의해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상의 뿌리는 역시 내가 알기로는 최남선 교수의 불함 문화론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반만 맞는다고 본다.

내 개인적인 주장으론,

신라 박씨(新羅 朴氏)의 유래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은 태양신(日神)과도 관련은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박씨(朴氏)는 태양신 즉, 일신(日神)에만 한정된 단어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선 박씨(朴氏)의 박(bak)이라는 발음이 순수한 우리나라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박(bak)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의 어원인 'bag'가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인물을 통해 진한(辰韓)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본다.

즉,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bak)은 진한(辰韓)으로 이주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원래 출신지역의 단어로 보이고

거서간(居西干)은 진한(辰韓)으로 이주한 조선 유민이나 원래 진한(辰韓)의 단어로 보인다는 것이다.

아래는 투르크와 몽골, 만주에서 사용하는 바가투르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이다.

 

바가투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바가투르(몽골어: ᠪᠠᠭᠠᠲᠦᠷ Baghatur)는 튀르크-몽골의 역사적인 칭호다. "영웅" 또는 "용사"를 의미한다.[1] 13세기 교황청에서 로마 제국에 파견한 사절 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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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는 위의 위키백과 설명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바가투르(몽골어: ᠪᠠᠭᠠᠲᠦᠷ Baghatur)는 튀르크-몽골의 역사적인 칭호다.
"영웅" 또는 "용사"를 의미한다.
13세기 교항청에서 로마 제국에 파견한 사절 플라노 카르피니는 이 칭호를 유럽의 기사 작위에 비견했다.
현대 몽골어 발음으로는 바타르(몽골어: Баатар Baγatar)라고 한다.
이 낱말의 어원은 불확실하지만 이란계 언어에서 "신, 주"라는 뜻의 바그(*bag)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위의 위키백과 사전에선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바가투르(Baghatur)는 흉노 때부터 등장한 단어라고 학자들은 본다.

이 바가투르(Baghatur)는 후에 몽골에선 바토르(Bator), 바타르(Batqr), 만주에선 바투르(Batur),

투르크 계열인 튀르키예에선 바하디르(Bahadır), 타타르어, 카자크어, 우즈베크어의 바티르(Батыр)

동유럽인 러시아에선 보하디르(Богатырь), 폴란드어의 보하테르(Bohater), 헝가리어의 바토르(Bátor)

페르시아에선 바하도르(Bahador), 인도에선 바하두르(Bahadur)로 사용된다.

그리고 미국의 학자인 크리스토퍼 백위드는 바가투르(Baghatur)가 이란어 계열 단어인 bag를 어원으로 한다고 보고 있으며,

바가투르(Baghatur)로 발음되기 이전엔 박투르(Baghtur)로 불렸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란 계 언어 bag는 신(god)이나 'lord(主)'를 뜻한다고 한다.

( Empires of the Silk Road: A History of Central Eur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Present, 저자 Christopher I.Beckwith, 출판사 Princeton University Press.페이지 387)

원래 페르시아 계의 어원인 bag가 흉노나 투르크족인 돌궐제국, 몽골지역에선 파생어인 바가투르(Baghatur)로 사용된 것을 보면(흉노 때는 바가투르[Baghatur] 이전의 발음인 박투르[Baghatur]로 사용했다고 본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흉노 출신은 아니라고 해도 아마도 흉노와 인접지역에서 거주하며 영향을 받던 인접지역 출신 인물이 아닐까 추정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흉노나 돌궐제국에서 사용하던 바가투르(Baghatur)의 이란어 어원인 bag가 신(god)이나 lord(主)라는 단어인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씨(朴氏)의 한문을 파자(破字)해서 분석해 보거나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아들인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삼국사기에선 신(god)과 밀접한 단어인 무당(巫, 제사장[祭司長])이라는 뜻인 것을 보면,

이란 계 단어인 bag와 박씨(朴氏)는 관련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 남해차차웅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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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이 되었다. ‘차차웅’은 혹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방언으로 무당을 일컫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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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는 위의 삼국사기 남해차차웅에 대한 번역 일부이다.

南解次次雄立(次次雄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丗人以巫事鬼神, 尚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爲慈充.” ). 赫居丗嫡子也.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이 되었다. ('차차웅’은 혹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방언으로 무당을 일컫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그래서 존장자(尊長者)를 칭하여 ‘자충’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혁거세(赫居世)의 적자이다.

삼국사기에서도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아들을 무당(巫, 제사장[祭司長])이라는 이름의 차차웅(次次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인 고대 국가 서라벌에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아들인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은 무당(巫, 제사장[祭司長])이며 왕(王)인 것을 볼 수 있다.

'(朴)씨'의 '박(朴)'을 파자(破字)하면 '나무목(木)'자와 '점복(卜)'자로 분해된다.

+=

파자(破字)를 풀이하면 나무(木) 옆에서 점(卜)을 치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나무 옆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무당(巫, 제사장[祭司長])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지금도 시골에선 신목과 돌무지가 있는 서낭당이나 몽골에선 돌무지 위에 나무가 꽂힌 어워를 볼 수 있다.

아래는 서낭당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내용이다.

 

서낭당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 성황당. [내용]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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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들이 헝겁을 묶은 신목(神木) 앞에서 굿을 한다고 전해진다.

즉, 고대로부터 무당(巫, 제사장[祭司長]) 신목(神木) 옆에서 신목(神木)을 통해 접신(接神)이 되어 예언을 하고 제사를 지낸다 생각했었다.

아래는 서몽골의 어워에 대한 EBS 영상이다.

 

서몽골의 어워

[서몽골의 어워] 서몽골 타왕복드 가는 길에 만난 '어워'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어워'는 여행하는 길에 안전을 기원하면서 돌을 올려놓는 장소로서 돌을 올려놓는 방법과 생김새를 살펴본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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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의 서낭당과 비슷하게 돌무더기 위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헝겁을 묶은 형태이다.

지금 몽골에 가면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워는 흉노시대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진 묵돌(冒頓)이라는 인물의 이름은

'바가투르', '바토로', '바투르' 등의 투르크, 몽골, 만주어와 관련된

즉, 바가투르, 바토르, 바투르의 원래 발음이 되는 고대 흉노제국 때의 발음 박투르(bagtur)를 고대 중국 한자발음으로 음차표기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 Empires of the Silk Road: A History of Central Eurasia from the Bronze Age to the Present, 저자 Christopher I.Beckwith, 출판사 Princeton University Press.페이지 387)

그리고 그 묵돌(冒頓, 박투르, bagtur)은 이 어워 앞에서 하늘의 신(흉노, 돌궐, 몽골 때의 탱그리[tängri]이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흉노의 지도자 명칭은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인데 이 명칭이 '하늘의 신 탱그리(tängri)와 신접한 인물(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를 직역하면 '탱그리[tängri]와 접신된 거대한 자[지도자]'로 대략 번역되며, 이를 해석하면 '탱그리[tängri]의 아들인 무당[제사장]지도자'라는 뜻이라고 본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묵돌(冒頓, 박투르, bagtur)이기 때문이다.

즉, 선비족 계열인 몽올실위(후에 몽골인으로 불린다)가 몽골지역으로 이주해서 거주하기 전에도 원래 몽골지역에서 거주하던 흉노 사회에선 하늘의 신 탱그리(tängri)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당시엔 버드나무가지를 세운 어워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역사, 마츠 히사오 외 저, 소나무 출판 페이지 56)

즉, 이러한 이유로 신라 박씨(新羅 朴氏)는 태양신(日神)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흉노의 문화에 영향을 받던 지역 출신인 박혁거세가(朴赫居世) 진한(辰韓)으로 이주하면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신앙인 탱그리 신앙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bag란 단어의 의미를 진한(辰韓)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표주박 닮아서 박씨라고 했다'고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칸(干)이나 한(汗)으로 추정되는 거서간(居西干, 삼국유사에선 '거슬한[居瑟邯]'으로 표기한다)이라는 단어가 진한(辰韓)에서 쓰이는 단어인 것을 보면

이 칸(干)이나 한(汗)이라는 단어는 흉노 내지 투르크 계의 단어는 아니며,

박혁거세(朴赫居世) 당시엔 투르크 계에선 사용되지 않았고 동호(東胡)나 삼한(三韓)에서 사용하던 단어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