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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중국무술 십팔기와 소호연 본문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인 1979년도로 기억하는데,
당시 마스다유지의 쿵후교범이라는 책이 있었다.
당시는 이소룡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중국무술에 대해 인기가 많았다.
또한 70년대 중반엔 중국무술 도장과
태권도 도장 그리고 합기도 도장들이 인기가 많았고
더불어서 육체미 도장(지금의 헬스클럽이다)도 인기가 높았다.
당시엔 중,고등학교에 내신이라는 제도도 없어서
일반적인 학생들도 도장에 등록하는 경우가 많았고
성인부도 운영이 잘 되었다.
성인들이나 학생들 중에는
중국무술이나 태권고 내지는 합기도 중에 하나를 선택한 후
선택한 무술과 함께 육체미(보디빌딩)까지 수련해서
영화배우가 되거나 홍콩 영화계로 진출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중국무술의 명칭은
당랑권 등을 제외한다면 '십팔기'로 불렸고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십팔기'와 '쿵후'가
중국무술의 명칭으로 서로 혼용해 사용되고 있었다.
즉, 쿵후라는 명칭은 이소룡이 등장하면서
중국무술을 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것은 이소룡이 등장한 홍콩도 비슷했던 것 같다.
이소룡 등장 이전의 홍콩에선 중국무술은
'국술'로 칭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홍콩의 미종라한 문파의 1974년도 시연영상이다.
무대 뒤에 '쿵후'라고 칭하지 않고 '국술'이라고 칭한 것을 볼 수 있다.
시연 영상의 제목 역시 '국술의 밤'이다.
이소룡 활동 영역인데 홍콩 역시 기존 명칭인 '국술'을 사용한다.
1928년 국민당 정부의 남경 '중앙국술관'이 설립되면서
당시 관장이었던 장지강 장군이 중국무술의 명칭이자 무관의 명칭을
'국술'로 정하게 되었고 이후 중국무술의 명칭은 '국술'이 되었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 이전의 청나라 때
청나라 정부가 인정한 공식적인 중국무술 명칭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40년대 초의 조선일보 자매지인 조광의 기사를 보면
청나라 관리인 원세개가 중국무술을 삼십육계(36계)로 칭했고
원세개에 의해 조선에 전해진 중국무술의 명칭을
원세개가 십팔계(18계)라는 이름으로 정한 것을 보면
청나라에선 중국무술의 명칭을 삼십육계(36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식으로 무술교사를 통한 중국무술이
조선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 교습된 중국무술을 원세개가 정한 명칭인
십팔계(18계)로 조선에선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 25 전까지
만주권법을 교습하던 YMCA권법부의 윤병인님을 보고
서울시민들이 '경농 십팔기(18기)'라고 별명을 붙이고 칭한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십팔계(18계)와 십팔기(18기)는 조선에선
중국무술을 칭하는 용어였다고 본다.
아래는 1959년도 대한뉴스에 등장한 중국무술 십팔기 시범영상이다.
(대한뉴스의 제 241호를 계산하면 대략 1959년도 영상이다.)
시연영상의 오른쪽 위를 보면 중국대사관이라는 휘장이 보인다.
당시 자유중국대사관(대만대사관)과 관련된 시연행사로 보인다.
(10) 대한뉴스 제 241호-한.중 친선 무술대회 - YouTube
위의 시연영상을 보면 자유중국국기를 도복에 부착한
화교무술가의 시연이 보이는데 소호연이라는 투로의 시연이다.
이 소호연은 내가 80년대 중국무술 십팔기(북소림권)를
배울 때도 역시 수련하던 투로(권법)였다.
그런데 1979년도 일본인 마스다유지의 저서에 보면
바로 소호연이라는 권법이 소개되어 있었고
소호연이라는 투로의 유래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었다.
지금 그 책이 없어서 자세히는 기억할 수 없으나
그 책의 영향으로 내가 80년대 중국무술 십팔기를 수련할 땐
마스다 유지의 글은 국내 중국무술 계에선 일반 상식이 되었었다.
내용은 대략 이런데
1910년(?) 미종권의 곽원갑님이 중국 최초의
사설 무술교육 기구인 정무체육회를 설립하자
각지의 무술 교사들이 상해의 정무체육회 교사로 부임했고
그 교사 중에 칠성당랑권 무술가인 나광옥 님이 계셨는데
그 나광옥 님이 정무체육회에서 미종권의 투로인 소호연을 보고
미종권 소호연에 자신의 칠성당랑권을 혼합해서
칠성당랑권의 소호연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보면 미종권에 소호연이라는 투로가 있었고
그 투로를 나광옥님이 정무체육회에서 보았다고 했으니
정무체육회의 설립자인 곽원갑님의 미종권 투로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유튜브가 등장한 지 한참이 되었지만
상해 정무체육회의 무술을 계승하는 단체 중에
미종권의 소호연을 하는 동영상은 없었다.
대부분 대만에 전해진 장권당랑권(칠성당랑권)의
소호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스다유지는
홍콩에서 수련한 것이 아니라 대만 무단에서 수련했기에
대만에 전해진 칠성당랑권(장권당랑권)의 소호연과
그 대만 칠성당랑권(장권당랑권)에서 전해지던
소호연의 유래를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1979년 마스다유지의 저서에 기재된 소호연의 모습이다.
대만 장권당랑권(칠성당랑권)에서 이러한 형태의 소호연을 시연한다.
아래는 홍콩의 정무체육회 무술을 교습하는 무술단체의 소호안 시연이다.
소호안이란 명칭을 사용하며 북당랑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대만에서 유래한 투로는 북당랑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홍콩의 정무체육회 무술 교습단체에선 소호연이란 투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명칭도 달라서 소호연이 아니라 소호안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맨 위의 '국술의 밤'을 시연하던 무술 단체는
홍콩에 전해진 정무체육회의 무술교사를 시조로 하는 무술단체이다.
홍콩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무술단체로 보이는데
이 문파는 '미종라한문'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무술단체는 정무체육회 출신의
미종권 교사였던 섭우정과 나한권(북소림권) 교사였던 손옥봉을 시조로 한다.
그리고 미종라한권 문파의 투로 중에 소화연이라는 투로가 있다.
대만 장권당랑권(칠성당랑권)의 소호연 내지는 소호안과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동작과 기술에서 차이가 난다. 또한 지당권 동작도 보인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견해인데,
어쩌면 나광옥님이 본 미종권의 소호연은
정무체육회의 설립자인 곽원갑님의 미종권이 아니라,
정무체육회의 무술교사였던 섭우정님의 미종권이었고
그 섭우정님의 미종권 투로인 소화연을 보고
나광옥님이 칠성당랑권 소호연을 만든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대만의 칠성당랑권(장권당랑권)에
소호안 내지는소호연이라는 투로가 전해지고 있었고
그 장권당랑권 내부에서 이 투로가 나광옥님과
관련된 투로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나광옥님 관련 이야기는 실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홍콩에서 나광옥님 칠성당랑권 전수자들의
소호연 시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호연이라는 투로의 시연은 유튜브에 보인다.
또한 내 페이스북의 페친이신 무술 선배께선
중국 산동성에 가보니 우리나라에 전해진 중국무술 십팔기 '소호연'이
중국 산동성에선 '소학연'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아래는 홍콩 미종라한문의 소화연 시연영상이다.
(2) WhatsApp Video 2018 05 28 at 1 37 19 PM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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