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삼국사기의 졸본, 삼국유사의 졸본, 고려 서경 (수정된 내용) 본문

태조왕건과 삼한

삼국사기의 졸본, 삼국유사의 졸본, 고려 서경 (수정된 내용)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7. 17. 21:16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髙句麗本紀) 동명성왕(東明聖王)에 대한 내용이다.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주몽(朱蒙) 이다.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이에 앞서 부여(扶餘)왕 해부루(解夫婁) 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db.history.go.kr

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의 원문과 번역이다.

及解夫婁薨, 金蛙嗣位. 於是時, 得女子於大白山南優㴾水. 問之曰, “我是河伯之女, 名柳花. 與諸弟出遊, 時有一男子, 自言天帝子解慕漱, 誘我於熊心山下, 鴨渌邊室中私之....
朱蒙乃與鳥伊·摩離·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淲水 一名盖斯水, 在今鴨綠東北., 欲渡無梁.....
與之俱至卒夲川 魏書云, “至紇升骨城.” .
觀其土壤肥羙,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宫室, 伹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髙句麗, 因以髙爲氏
一云, “朱蒙至卒本扶餘, 王無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其女妻之. 王薨, 朱蒙嗣位.” . 時朱蒙年二十二歳, 是漢孝元帝建昭二年, 新羅始祖赫居丗二十一年,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태백산(太白山)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여자를 만났다. 〔여자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저는 하백(河伯)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柳花)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함께 나가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저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 인근의 방 안으로 꾀어 사통하고 곧바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몽이 이에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명과 친구가 되어 가다가 엄사수(淹㴲水)(일명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하는데, 지금[고려]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에 이르러 건너려고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졸본천 (卒本川)에 이르렀다. 『위서』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주몽은〕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자연 지세[山河]가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단지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氏]로 삼았다.
혹 말하기를, “주몽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는데, 왕이 아들이 없었다.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라고 하였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로, 한(漢)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년(B.C.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甲申年)이었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국사기 저자는 두 개의 압록강을 고구려 본기에 기술하고 있다.

하나는 위의 문장 '鴨渌邊室(압록강 인근의 방)'의 鴨渌(압록)이며

또 하나는 위의 문장 '鴨綠東北(압록강 동북쪽)'의 鴨綠(압록)이다.

 

압록의 한문 표기가 다른 것은 삼국사기의 저자가 단순히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다! 한자표기가 다른 두 개의 압록강이 있었다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高句麗)에 대한 내용이다.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國史)≫ 「고려본기」에 이른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처음에 북부여왕해부루가 동부여로 자리를 피하고 나서 부루가 죽으매 금와가 왕위를

db.history.go.kr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 등 세 사람과 동무가 되어 엄수(淹水) 지금은 어딘지 자세하지 않다.까지 와서 물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손자인데 오늘 도망을 가는 길에 뒤따

db.history.go.kr

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高句麗)의 원문과 번역이다.

國史髙麗本記云. 始祖東明聖帝姓言氏諱朱蒙. 先是北扶餘王解夫婁旣避地于東扶餘及夫婁薨金蛙嗣位. 于時得一女子於太伯山南優渤水問之, 云 “我是河伯之女名桞花, 與諸弟岀遊時有一男子自言天帝子解慕漱, 誘我於熊神山下鴨綠邉室中知之而徃不返.
≪국사(國史)≫ 「고려본기」에 이른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처음에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자리를 피하고 나서 부루가 죽으매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에 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서 사정을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시 하백(河伯)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柳花)인데 여러 아우들과 함께 나와 놀던 중 때마침 한 사나이가 있어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자칭하면서 나를 유인하여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강변의 방​ 속에서 사통(私通)하고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자표기에서 서로 다름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선 '鴨邊室(압록강 인근의 방)'이라고 표기했는데

삼국유사에선 '鴨邉室(압록강 인근의 방)'로 표기했다.

즉, 삼국사기에선 渌(거를 록, 중국어 발음 [])자를 쓰고 삼국유사에선 綠(푸를 록, 중국어 발음[])자를 썼다.

 

 

역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高句麗)의 원문과 번역이다.

至卒夲州 玄菟郡之界.遂都焉. 未遑作宫室但結廬扵沸流水上居之, 國號髙句麗, 因以高爲氏, 夲姓解也. 仐自言是天帝子承日光而生, 故自以高爲氏. 時年十二歳, 漢孝元帝建昭二年甲申歳即位稱王. 高麗全盛之日二十一万五百八户
그는 졸본주 현토군의 지역이다.까지 와서 드디어 여기에 도읍을 하였다. 미처 궁실을 지을 사이도 없어 그저 비류수(沸流水)가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따라서 고씨로 성을 삼으니 본래의 성은 해씨였는데 이제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고 낳았다 하여 자신이 높을 고자로 성을 삼았다. 당시의 나이가 열두 살이요, 한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년 갑신(甲申)에 즉위하고 왕으로 일컬었다. 고[구]려의 전성시대에는 210,508호였다.

는 그동안 북부여의 해모수와 압록강 부근 세력인 하백의 딸이 압록강 부근의 방에서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주몽이 동부여에서 태어났으며 주몽은 동부여를 탈출해서 자신이 태어나게 된 장소이자 외할아버지 영역인 압록강 부근의 비류수로 와서 고구려(졸본부여)를 개국했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해모수와 유화가 관계를 가진 압록강의 한문은 삼국유사에 기재된 압록강과 한문이 다르다.

삼국사기에선 鴨渌으로 기재하고 삼국유사에선 鴨綠으로 기재했다.

 

2017년부터 국내 학계에선 鴨渌은 지금의 중국 요하(遼河)이고, 鴨綠은 지금 북한과 중국의 경계인 압록강(鴨綠江)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주몽이 다시 압록강을 찾아온 후 압록강 주변 비류수 근처 졸본에서 고구려(졸본부여)를 세웠을 때(비류수가 압록강 주변에 있다는 것은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삼국사기에서 주장하는 주몽이 세운 졸본지역과 삼국유사에 주장하는 졸본지역은 서로 다른 지역이 된다.

 

비류수는 주몽의 외할아버지의 영역이자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가 서로 관계를 가진 압록강 부근의 하천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주몽은 비류수 주변에 도읍하고 고구려(졸본부여)를 세웠기 때문에 압록강을 어떤 한문으로 표기했느냐에 따라 도읍한 장소가 달라진다.

 

즉, 삼국사기에 기재된 것처럼 鴨渌 주변에 비류수가 있다면 주몽이 도읍한 고구려는 요하(遼河) 주변에서 건국한 나라가 된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기재된 것처럼 鴨綠 주변에 비류수가 있다면 주몽이 도읍한 고구려는 현재 압록강(鴨綠江) 주변에서 건국한 나라가 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 권13 卷第三十七 雜志 第六 지리(地理) 고구려(髙句麗)에 대한 내용이다.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구려 초기 도읍 홀승골성과 졸본 ( 기원전 37년 ) 살펴보건대 《통전(通典)》에서 이르기를 “주몽(朱蒙)이 한(漢) 건소(建昭) 2년(기원전 37년)에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동남쪽으로 나아가 보술

db.history.go.kr

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 권13 卷第三十七 雜志 第六 지리(地理) 고구려(髙句麗)에 대한 내용이다.

則所謂朱蒙所都紇升骨城·卒夲者, 蓋漢玄菟郡之界, 大遼國東亰之西, 漢志所謂玄菟屬縣髙句麗是歟.
곧 이른바 주몽이 도읍한 곳이라고 말하는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아마도 한(漢)의 현도군(玄菟郡)의 경계이고,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이며, 《한지(漢志)》에 이른바 현도(玄菟)의 속현 고구려(高句麗)가 이것일 것이다.

의 삼국사기에 기재된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은 현재 중국 요녕성 요양시(遼陽市, 辽阳市)라고 대다수의 학자들이 주장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지금의 요양시(遼陽市, 辽阳市)는 거란의 동경(東京)이 아니라 동경(東京)에 속한 동경 학야현(東京 鶴野縣)이라고 해석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한 내용이다.

 

자료일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구려(高句麗)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더러는 말하기를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이다.”라고들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지역에 있다.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본문과 번역이다.

髙句麗
髙句麗即卒夲扶餘也. 或云 “今和州又成州䓁”, 皆誤矣. 卒夲州在遼東界.
고구려(高句麗)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더러는 말하기를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이다.”라고들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지역에 있다.

부식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은 요나라(遼) 동경(東京) 서쪽이라고 추정한다. 지금의 중국 요하(遼河)주변이나 요하(遼河)의 서쪽에서 고구려(졸본부여)를 세웠다는 것이다.

 

즉,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은 지금의 요하(遼河)주변이나 요하(遼河) 서쪽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사기에선 압록의 한자를 鴨渌으로 표기했다고 본다.

 

2017년 이후 국내 학자분들이 제기한 한문 鴨渌은 현재 압록강(鴨綠江)이 아닌 중국 요하(遼河)를 가리킨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 내용과 별개로 주몽이 도읍한 지역인 졸본이 삼국사기에 기재된 것처럼 실제 요하(遼河)주변이나 서쪽일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삼국사기의 저자나 삼국유사의 저자 모두 지금의 압록강(鴨綠江)보다 북쪽 지역에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지역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역시 고려 때 인물인 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졸본에 해당된다)이 고려 당시엔 서경(西京)이라고 자신의 저서에 기술했다.

(이승휴는 고구려나 졸본부여라고 표기하지 않고 주몽이 고구려현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웠다[高句麗縣名立國]고 기재했다. 개국한 장소도 졸본이나 홀승골성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마한의 왕검성[開國馬韓王儉城]이라고 표기했다.)

 

즉,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떤 책을 선택해도 고려 서경(西京)은 압록강(鴨綠江)보다 북쪽이지 현재 북한의 평양은 아니다.

 

그리고 제왕운기에서 저자 이승휴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곳이 지금의 압록강(鴨綠江)보다 북쪽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그 지역이 이승휴가 활동하던 고려 충렬왕 때 고려 서경(西京)이라고 밝혔다.

(제왕운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고구려는 마한의 영토를 계승한 나라이다)

 

따라서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에 한하지 않고 고려 사람들 대부분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 지역은 한반도보다 북쪽이라고 인식했었다 본다.(제왕운기의 저자 이승휴[1224~1300]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1206~1289]은 같은 시대 인물이며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1075~1151]은 이들보다도 113년에서 149년 이상 앞선 시대의 인물이다)

 

결국, 고려 서경(西京)은 압록강(鴨綠江)보다 북쪽이지 현재 북한의 평양은 아니다.

 

 

아래는 현재 대다수 학자들이 요나라의 동경(東京)으로 추정하는 중국 요양(遼陽) 구글지도이다.

 

Google Maps

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

www.google.co.kr

김부식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인 졸본을 대요국(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에 있다고 추정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지도에 표시된 요양(遼陽)이 거란의 동경(東京)이라고 주장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의 요양(遼陽)은 거란의 동경(東京)이 아니라 거란의 동경(東京)에 소속된 동경 학야현(東京 鶴野縣)이라고 본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거란의 동경(東京)은 요하(遼河)의 서쪽에 있다고 본다.

 

 

아래는 현재 대부분의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이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으로 추정하는 중국 환인만주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县)의 오녀산 구글지도이다.

 

Wunvshan · 중국 번시 시 환런 만족 자치현 邮政编码: 117201

★★★★★ · 산봉우리

www.google.co.kr

몽과 고구려인들은 지금의 오녀산에 산성을 쌓은 후 평소에는 오녀산 산성 아래의 평지에서 활동하다가 적이 오면 오녀산 산성으로 들어가서 항전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지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고려 서경(西京)은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북쪽 지역이며 현재 중국 환인만주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县)의 오녀산 주변이라고 본다.(고려 때는 태조 왕건 때부터 우왕 때까지 이 지역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곳으로 인식했었다고 본다)

 

 

아래는 내가 송양의 비류국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는 중국의 부이강(富爾江) 구글지도이다.

 

Fu'er River · 중국 퉁화 시 퉁화 현 邮政编码: 134216

www.google.co.kr

려 서경(西京)으로 추정되는 오녀산 아래 지역과 인접한 지역이다.

나는 이 지역이 고려 평양(平壤)으로 추정했었는데 고려사 전체를 읽어 볼 때 이 지역은 고려인들이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이 있었다고 생각하던 성주(成州)이며 고려 평양은 이 지역보다 약간 남쪽에 있는 압록강(鴨綠江)과 접한 지역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