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동진(東眞), 할라로(曷懒路), 동북 9성(九城) 본문
동하(東夏)에 대한 중국유기백과에 대한 내용이다.
东夏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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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東夏)에 대한 중국유기백과에 대한 본문과 번역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으로 번역했다. 번역이 어색할 수 있다. 감안하시기 바란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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东夏(1215年-1233年)是13世纪初蒲鮮萬奴在今中國东北及俄羅斯遠東建立的一个国家。原称大真,后改称东夏,也称东真。
歷史
中国东北地区历史
蒲鲜万奴原为金朝将领,担任辽东宣抚使讨伐反叛的契丹首领耶律留哥。他于贞祐三年(1215年)自立为天王,国号大真,年号天泰,金朝在东北的诸猛安谋克多响应。1216年降于蒙古,1217年再度自立。
势力最大时,西北至上京城(今黑龙江省阿城境内白城子),西南至婆速路(今辽宁丹东境内九连城)以及部分辽东半岛区域,东南到曷懒路(今朝鲜咸镜北道吉州郡)与恤品路(今俄罗斯滨海边疆区乌苏里斯克)。
东夏前期的政治中心在咸平(今辽宁开原北),复国后移至南京(今吉林图们市磨盘村山城)。蒲鲜万奴在国内依照金朝官制设立诸官,军队则按猛安谋克组织。
1233年,窝阔台派皇子贵由率领左翼蒙古军征讨蒲鲜万奴,在南京擒之,东夏從此滅亡,不再是獨立國家,但其后蒙古仍任命万奴子孙镇守原地,为其藩属。忽必烈建立元朝后,在东夏故地建立辽阳行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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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1215-1233)는 13세기 초 포선만노가 지금의 중국 북동부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 세운 나라이다. 원래는 대진(大真)이라 불렸고, 후에 동하(東夏)로 바뀌었으며, 동진(東真)이라고도 불린다.
역사
중국 동북부의 역사
포선만노는 본래 금나라의 장군이었다. 그는 요동선무사로 파견되어 거란의 반역자 야율유가를 진압했었다. 정우 3년(1215년)에 자신을 천왕(天王)으로 칭하고, 나라 이름을 대진(大真)으로 하고, 연호를 천태(天泰)로 하였다. 이에 금나라 동북의 맹안(猛安), 모극(謀克) 다수가 응했다. 1216년에 그는 몽골에 항복했고, 1217년에 다시 독립을 이뤘다.
전성기에는 북서쪽으로는 상경(지금의 흑룡강성 아성경내 백성자), 남서쪽으로는 파속로(지금의 요녕 단동 경내 구련성)와 요동반도지역 일부, 남동쪽으로는 할라로(갈라로)(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길주현 [내 개인적으론 중국유기백과에서 기재한 지금의 함경북도 길주가 아니라 해란강 북쪽과 수분하 서쪽이 서로 겹치는 교집합지역이라고 본다])와 휼품로(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동하(東夏) 이전의 정치중심지(국호가 대진[大真] 때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함평(지금의 요녕개원시 북쪽)이었다. 국가를 회복 후(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경(지금의 길림 도문시 마반촌산성)으로 이전했다. 포선만노는 금나라의 관리제도에 따라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었고, 군대는 맹안(猛安)과 모극(謀克) 제도에 따라 편성했다.
1233년, 우구데이는 아들(皇子) 구육을 보내 몽골군의 좌익을 지휘하게 하여 포선만노를 공격하게 하고 남경(南京,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성산자성)에서 그를 사로잡았다.
동하(東夏, 고려사에는 동진[東眞]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파괴되었고 더 이상 독립국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몽골은 여전히 포선만노의 자손들을 임명하여 그 지역을 지키게 하고 그 지역을 속번으로 삼았다.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건국한 후, 그는 동하(東夏, 고려사에는 동진[東眞]으로 기재되어 있다)의 옛 영토에 요양행성(遼陽行省)을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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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선만노의 대진국(大真國)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구로 중심지를 옮겼다. 이를 동하국(東夏国, 고려사에는 동진국[東眞國]으로 기재되어 있다)이라고 한다.
위의 중국유기백과에서는 동하(東夏, 고려사에는 동진[東眞]으로 기재되어 있다))의 범위가,
남동쪽으로는 할라로(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길주현)와 휼품로(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까지 세력을 확장했다(东南到曷懒路[今朝鲜咸镜北道吉州郡]与恤品路[今俄罗斯滨海边疆区乌苏里斯克])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할라로(曷懒路)는 중국유기백과에서 기재한 것과는 달리 지금의 함경북도 길주는 아니라고 본다. 해란강(海蘭江, 海兰江) 북쪽에 있는 어느 광범위한 지역이라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내용이다. 1106년 미상 (음)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고려시대 사료 DB
HOI cnkb_050r_0010_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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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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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宗〉四年丙戌, 高麗遣黑歡·方石來賀襲位, 遣盃魯報之. 高麗約還諸亡在彼者, 乃使阿聒·勝昆往受之. 高麗背約, 殺二使, 築九城於曷懶甸, 以兵數萬來攻. 斡賽敗之. 斡魯亦築九城, 與高麗九城相對. 高麗復來攻, 斡賽復敗之. 高麗約以還逋逃之人, 退九城之軍, 復所侵故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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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康宗, 烏雅束)〉 4년(1106) 병술년에 고려가 흑환(黑歡)과 방석(方石)을 파견하여 〈절도사(節度使) 직위를〉 계승한 것을 하례하였으므로 배로(盃魯)를 파견하여 인사하였다. 고려가 도망가서 그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으므로 아괄(阿聒)·승곤(勝昆)을 파견하여 가서 접수하게 하였다. 그런데 고려가 약속을 배반하고 두 사신을 살해하였으며, 갈라전(曷懶甸)에 9성을 쌓고 수만 명의 군사로 공격해왔다. 완안알새(完顔斡賽)가 그들을 패배시키고 완안알로(完顔斡魯)도 역시 9성을 축성하여 고려의 9성과 상대하였다. 고려가 다시 공격해오자 완안알채가 다시 이것을 패배시켰다. 고려가 〈우리에게서 고려로〉 도망간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9성의 군대를 퇴각시키며 침략한 옛 땅[故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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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金史)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고려가....갈라전(할라전)에 9성을 쌓고(高麗....築九城於曷懶甸)라고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고려의 동북 9성(九城)은 금사(金史)에서 할라전(갈라전, 曷懶甸, hélǎndiàn)으로 기재한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권12 본문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12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欽定四庫全書 欽定滿洲源流考卷十二 疆域〈五〉 金上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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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만주원류고의 본문 일부와 번역이다. 흠정만주원류고(글모아)의 역자이신 남주성 박사님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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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史
康宗四年髙麗築九城於海蘭甸以兵數萬來攻斡色(滿洲語瓦也舊作斡賽今改)敗之亦築九城與髙麗九城相對髙麗復來攻斡色復敗之髙麗約以還逋逃之人退九城之軍復所侵故地乃罷兵(按 皇輿全圖鳯凰城東南有九連城與朝鮮之義州愛州相近當即其遺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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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강종 4년에 고려가 해란전(海蘭甸)에 9성을 쌓고 수만 명의 군사로 쳐들어 왔다. 알색(만주어로 기와이다. 이전에 알새로 쓴 것을 이번에 고침)이 이를 물리치고 또한 9성을 쌓아서 고려의 9성과 맞서게 하였다. 고려가 다시 침공해 오자 알색이 다시 물리쳤다. 고려가 포로와 도망한 사람들을 돌려주기로 약속하므로, 9성의 군사를 물렸으며 다시 옛 땅을 침범하였다가 곧 군사를 돌려갔다.(살펴보건대, 황여전도에는 봉황성 동남에 9연성이 있으며 조선의 의주와 애주가 서로 가깝다. 당연히 그 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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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한림원에서 편찬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 금사(金史)를 인용해 기술한 것을 보면,
고려가 해란전(海蘭甸, hăilándiàn)에 9성을 쌓고(康宗四年髙麗築九城於海蘭甸)라고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를 편찬한 청나라 한림원 학자들은 금사(金史)를 인용할 때,
금사(金史)에 기재된 曷懶甸(할라전, 갈라전, hélǎndiàn)이 아닌 청나라의 음차표기로 바꾸어 海蘭甸(해란전, hăilándiàn)으로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아래의 도표와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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曷懶甸(hélǎndiàn, 할라전, 갈라전) = 海蘭甸(hăilándiàn, 해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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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동계(東界)는 본래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성종 14년(995)에 영토를 나누어 10도(道)로 할 때 화주(和州)·명주(溟州) 등의 군현(郡縣)으로 삭방도(朔方道)라 하였다. 정종 2년(1036)에 동계(東界)【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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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본문과 번역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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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咸州迆北, 沒於東女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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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함주(咸州) 이북지역은 동여진(東女眞)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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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함주 이북지역이 동여진에게 편입되었다(咸州迆北, 沒於東女眞)고 기재하고 있다.
즉, 고려가 여진에게 반환한 동북 9성 중에 함주(咸州)는 가장 아래 지역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는 오랫동안 여진(女眞)이 기거하던 곳이다. 예종 2년(1107)에 원수(元帥) 윤관(尹瓘)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쳐서 내쫓았다. 〈예종〉3년(1108)에 주(州)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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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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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州大都督府久爲女眞所據. 睿宗二年, 命元帥尹瓘等, 率兵擊逐. 三年, 置州, 爲大都督府, 號鎭東軍. 築大城, 徙南界丁戶一千九百四十八, 以實之. 四年, 撤城, 以其地, 還女眞, 後又沒於元, 稱哈蘭府. 恭愍王五年, 收復舊疆, 爲知咸州事. 尋改萬戶府, 置營, 聚江陵·慶尙·全羅等道軍馬, 防守. 十八年, 陞爲牧. 別號咸平. 要害處二, 咸關嶺【在府北】, 大門嶺【在洪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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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는 오랫동안 여진(女眞)이 기거하던 곳이다. 예종 2년(1107)에 원수(元帥) 윤관(尹瓘)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쳐서 내쫓았다. 〈예종〉3년(1108)에 주(州)를 설치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로 삼았고, 진동군(鎭東軍)이라 불렀다. 큰 성(城)을 쌓아 남계(南界)의 정호(丁戶) 1,948호를 이주시켜 그곳을 채웠다. 〈예종〉4년(1109)에 성을 철수하고 그 땅을 여진에게 돌려주었고, 뒤에 또 원(元)나라에 편입되어 합란부(哈蘭府)라고 불렀다. 공민왕 5년(1356)에 옛날 영토를 수복하여 지함주사(知咸州事)라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만호부(萬戶府)로 고치고 영(營)을 설치하였으며, 강릉(江陵)·경상(慶尙)·전라(全羅道) 등의 군마(軍馬)를 모아 지키게 하였다. 〈공민왕〉18년(1369)에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별호(別號)는 함평(咸平)이다. 요해처가 2곳으로, 함관령(咸關嶺)【부(府)의 북쪽에 있다.】과 대문령(大門嶺)【홍헌(洪獻)에 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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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주는 여진에게 돌려준 동북 9성 중에 하나(咸州大都督府久爲女眞所據....築大城, 徙南界丁戶一千九百四十八, 以實之. 四年, 撤城, 以其地, 還女眞)이며 후에 원나라 때엔 원나라 합란부가 되었음(沒於元, 稱哈蘭府)을 볼 수 있다.
즉, 曷懶甸(hélǎndiàn, 할라전, 갈라전) 안에는 동북 9성(九城) 중 하나인 哈蘭府(hālánfǔ, 합란부, 고려 함주)가 있었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권13 본문이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 인용한 원나라의 지리서인 원일통지(元一統志) 내용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13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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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만주원류고의 본문 일부와 번역이다. 흠정만주원류고(글모아)의 역자이신 남주성 박사님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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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一統志
自南京而南曰海蘭府又南曰雙城直抵於髙麗之王京(按渤海南京在海州遼南京在遼陽此所云南京而南或僅指海蘭府冶所然亦當在東而非南也雙城亦非遼之雙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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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통지
남경(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도문시)의 남쪽을 해란부(원나라의 합란부, 고려의 함주이다)라 하고, 또 그 남쪽을 쌍성(쌍성총관부, 고려 화주)이라 하는데, 곧바로 고려의 왕경(고려 동경으로 해석된다)과 닿는다.(살펴보건대, 발해의 남경은 해주이고 요나라 남경은 요양에 있다. 여기에서 남경의 남쪽이라 한 것은 혹 겨우 해란부의 치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당연히 동쪽이지 남쪽이 아니다. 쌍성 또한 요나라 쌍성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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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남쪽에 해란부(고려 함주)가 있고 다시 그 남쪽에 쌍성(雙城, 쌍성총관부, 고려 화주이다)이 있으며 그 곳은 고려의 왕경(髙麗之王京, 고려 동경)과 닿아 있다(自南京而南曰海蘭府又南曰雙城直抵於髙麗之王京)고 한다.
만주원류고에서 인용한 원일통지는(元一統志) 원나라 당대인 쿠빌라이 칸(元 世祖, 원나라 세조) 때 초안이 완성된 지리서이다.
즉, 원일통지(元一統志)는 학자들의 해석이 필요없는 그 당시에 쓰여진 지리서이다.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원나라 합란부(哈蘭府, hālánfǔ)를 후대인 청나라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선 청나라 음차표기인 원나라 해란부(海蘭府, hăilánfǔ)로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아래와 같은 등식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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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란부(哈蘭府 [hālánfǔ] 고려사의 음차표기) = 해란부(海蘭府 [hăilánfǔ] 만주원류고의 음차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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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마반촌 구글지도이다.
Mopan Village ·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 시 邮政编码: 133001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 시 邮政编码: 1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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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마반촌은 포선만노(蒲鮮滿奴)의 동진국(東眞國, 동하국[東夏國]) 남경(南京)이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
원일통지(元一統志)에선,
남경 아래에 원나라 해란부가 있다(自南京而南曰海蘭府)고 기재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원나라 해란부(海蘭府 [hăilánfǔ])는 원나라 합란부(哈蘭府 [hālánfǔ])를 뜻하며 고려사(高麗史)에 원나라 합란부(哈蘭府 [hālánfǔ])는 고려 함주(咸州)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고려 함주(咸州)는 바로 남경(南京) 아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에는,
함주(咸州)가 동북 9성에 속하고 함주(咸州)는 동북 9성 중에 가장 남쪽에 있다고 기재하고 있으니 고려 때 동북 9성은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아래 지역에서 북쪽으로 도문시(图们市)를 포함한 그 윗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금사(金史)에 기재된 曷懶甸(hélǎndiàn, 할라전, 갈라전)은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아래 지역에서 북쪽으로 지금의 러시아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 서쪽의 중국 동녕시(东宁市) 어느 지역까지로 추정된다.
아래는 해란강(海蘭江, 海兰江)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海兰江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海兰江 中国东北地区境内与邻国朝鲜交界的一条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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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해란강(海蘭江, 海兰江)에 대한 중국유기백과 본문과 번역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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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兰江(中国朝鲜语:해란강/海蘭江),位于中华人民共和国吉林省延边朝鲜族自治州境内,是布尔哈通河右岸支流,辽、金称曷懒水,明代称合兰河,清代称海兰河、骇浪河,河名源自满语(满文:ᡥᠠᡳᠯᠠᠨ,转写:hailan),意为“榆树”。[來源請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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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강(중국어와 한국어: 해란강/海蘭江)은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하며, 포이합통하의 우안 지류이다. 요나라와 금나라 때에는 할라수(曷懒水), 명나라 시대에는 합란하(合蘭河, 合兰河), 청나라 시대에는 해란하(海蘭河, 海兰河), 해랑하로 불렸다. 이 강의 이름은 만주어(만주어: ᡥᠠᡳᠯᠠᠨ, 음역: hailan)에서 유래했으며, "느릅나무"를 의미한다. [다만 느릅나무를 의미한다는 내용은 출처가 불명확해서 정확한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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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강(海蘭江)의 해란(海蘭)은 청나라의 음차표기이고 금사와 고려사 그리고 명나라 때 제작한 지도를 보면 각각 자국의 음차표기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금나라에선 할라(曷懒), 고려사에선 합란(哈蘭), 명나라에선 합란(合蘭)으로 표기했다.
아래는 할라전(曷懶甸)이나 합란부(哈蘭府), 합란하(合蘭河), 해란하(海蘭河), 해란부(海蘭府) 등에 등장하는 공통된 발음의 비교 도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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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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曷懶, (hélǎn), 할라(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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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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哈蘭, (hālán), 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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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지도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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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蘭, (hélán), 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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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서적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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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蘭, (hăilán), 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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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견해론,
시대별로 한자표기가 다른 이유는 금나라 때 여진어의 한문 음차표기인 할라(曷懒)를 각 나라들이 자신들의 한문음차표기를 선택해서 기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래는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 대한 나무위키 내용이다.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가 1602년에 이지조(李之澡) 와 함께 중국에서 제작해 목판으
namu.wiki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는 카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때인 1602년 이지조(李之澡)와 함께 중국에서 제작해낸 세계 지도라고 한다.
나무위키 설명 중에 위에서 두번 째 지도를 보면 평안도와 함경도 위에 산이 그려져있다.
대략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이나 백두산맥(白頭山脈, 长白山地)을 나타낸 것 같다.
그리고 그 산들 위에 合蘭(합란)이 기재되어 있다.
이 合蘭(합란)의 서쪽에 개원(開元, 지금의 개원시이다)이 기재되어 있고 그 보다 북쪽에 황룡부(黃龍府, 지금의 장춘시보다 북쪽에 위치했었다)가 기재되어 있다.
또한, 合蘭(합란)은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이나 백두산맥(白頭山脈, 长白山地)보다 북쪽에 위치한 지역인 것을 볼 수 있다.
명나라 때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 표기된 合蘭(hélán, 합란)은 금나라의 曷懒(hélǎn, 할라, 갈라)이다.
따라서 금나라의 曷懒(hélǎn, 할라, 갈라)나 曷懶甸(hélǎndiàn, 할라전)은 지금의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이나 함경남도 함흥시(咸興市)가 아니다.
아래는 개원시(开原市) 구글지도이다.
카이위안 시 · 중국 랴오닝 성 톄링 시
중국 랴오닝 성 톄링 시
www.google.co.kr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보면,
개원시(开原市)의 동쪽이며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의 북쪽에 合蘭(hélán, 합란)이 있었다고 해석된다.
즉, 금사(金史)에는 曷懶甸(hélǎndiàn, 할라전, 갈라전)으로 기재되어 있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는 海蘭甸((hăilándiàn, 해란전)으로 기재되어 있는 지역은,
지금의 개원시(开原市)에서 동쪽 방향이며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이나 백두산맥(白頭山脈, 长白山地)보다 북쪽 위도(緯度 Latitude)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결국 아래의 도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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曷懶(hélǎn, 할라, 갈라) = 哈蘭(hālán, 합란) = 合蘭(hélán, 합란) = 海蘭(hăilán, 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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