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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아래는 내가 제미나이에게 질문한 내용이다."20세기 초중반에 요녕성 대련이나 요녕성 요하 동쪽 지역은 중국 산동성 사람들이 많이 이주한 지역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이 이주했나요?"아래는 제미나이에서 답변한 내용이다."네, 대단히 그렇습니다.20세기 초중반 요녕성 대련(大連)과 요하(遼河) 동쪽 지역은 중국 산동성(山東省) 출신 이주민이 집중적으로 정착한 핵심 지역입니다.중국 역사에서는 이 대규모 이주 현상을 '틈관동(闖關東, 촹관둥)'이라 부르며, 산동성 주민들이 산해관(山海關) 건너 만주(동북 지역)로 몰려든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산동성 사람들이 대련과 요동으로 대거 이주한 이유1) 밀어내는 힘 (산동성의 절망적 상황)극심한 기근과 자연재해: 19세기 말~20세기 초 산동성은 황..
아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의 영상이다. 나는 아직 이 애니메이션은 시청하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국민학교 때 대만 애니메이션인 봉신방도 관람하지 못했다.이 애니메이션의 액션에서 중국무술의 동작을 조언하고 만들어준 인물은 미국 기반의 산동무술 단체인화림당랑탄퇴문이라고 한다.1980년대 무술잡지 블랙벨트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중국무술가와 단체이다.화림당랑탄퇴문이라고 한다. 산동성 북소림권과 당랑권을 수련한 진배(찬푸)라는 분이 뉴욕을 기반으로 설립한 단체이다.이 영상에서 남성분이 진배이고 상대 여성은 이 분의 따님이다.이 여성분이 애니메이션 뮬란의 무술동작을 조언한 분이라고 한다.화림당랑탄퇴문 시연 영상이다.이 영상의 투로는 적요2단으로 보인다.아래는 미국 산동성 북소림권과 탄퇴, 당랑권을..
아래는 왕옥산 계열 태극당랑권의 붕보(붕박) 영상이다. 왕옥산 선생은 송자덕 선생의 제자이다. 송자덕 선생은 흔히 태극당랑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스승인 강화룡 선생에게 배운 매화당랑권의 계승자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오히려 그의 제자인 왕옥산과 최수산 선생이 실질적으로 태극당랑권을 창시한 인물들이며, 스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송자덕 선생을 태극당랑권의 창시자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아래는 최수산 계열 태극당랑권의 붕박 영상이다.최수산 선생은 송자덕 선생의 제자로, 왕옥산 선생과 함께 태극당랑권을 실질적으로 창시한 인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태극당랑권의 실제 창시자는 최수산·왕옥산 선생이며, 스승인 송자덕 선생을 창시자로 칭하는 것은 제자들이 스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모신..
이준구 선생 태권도 단체의 1983년도 단 심사 모습이다. 심사에서 발차기 모습이 등장하는데 앞돌려차기와 옆차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영상 중반부에 뒤돌려차기가 등장하는데 동작은 매우 어설프다.뒤돌아 앞차기와 중국무술의 뒤돌아 빼랭규어(파련각)의 중간형태의 발차기이다.이준구 선생은 이원국 선생의 청도관 출신이라고 한다.이원국 선생은 일본 공수도 송도관의 후나고시 선생의 직제자라고 한다.일본 후나고시 선생의 송도관 공수도 - 이원국 선생의 청도관 공수도를 수련하신 이준구 선생 계열의 모습을 보면 청도관 공수도에선 뒤돌려차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원국 선생과 후나고시 직제자로서 일본 송도관 동문이신 개성 송무관의 노병직 선생님은 뒤돌려차기(뒤꿈치돌려차기)를 가르치셨다고 회전무술 명재옥 총재님께..
아래는 중국 CCTV에서 음양팔괘장 수련학생에 대해 다룬 내용이다.아래는 내가 제미나이에게 질문한 내용이다."음양팔반장(陰陽八盤掌)의 교습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원을 도는 투로는 많지 않은 것 같네요. 주로 단수가 주를 이루는 것 같고요."아래는 제미나이의 답변이다."음양팔반장(陰陽八盤掌, 임명걸·임지성 전승)은 동해천 계열의 일반적인 팔괘장과 달리 직선상의 단수(單手) 및 단식(單式) 수련이 핵심이자 주를 이루는 권법이 맞습니다.원을 도는 주원(走圈) 위주의 팔卦장과 달리, 팔반장은 형의권이나 직파 권법처럼 직선 방향으로 나아가며 단식을 반복 연습하는 구조가 매우 강합니다.음양팔반장의 단계별 교습 과정음양팔반장의 전통 교습 과정은 크게 기초 공법 → 팔반 단수(단식) → 팔반 연결 투로 → 응용..
1982년 국내에서 이연걸의 소림사 영화가 등장하기 전에 국내에서 인식한 소림사는복건성의 천주 소림사였다.홍콩 영화들은 항상 천주 소림사를 배경으로 한족중심의 반청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히 불교신자이고 선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70년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 대해서 무지했고 하남성 숭산 소림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래는 1978년 국내에서 개봉했던 소림36방에 대한 영화해설이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한족중심의 반청 문화 그리고 남소림사로 불린 천주 소림사가 70년대 당시 홍콩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던 소림사와 청나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아래는 1982년에서 1983년 겨울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이연걸의 소림사에 대한 영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