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졸본(卒本), 고려 화주(和州), 고려 동경(東京) 본문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한 내용이다.
삼국유사 < 한국 고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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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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髙句麗
髙句麗即卒夲扶餘也. 或云 “今和州又成州䓁”, 皆誤矣. 卒夲州在遼東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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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高句麗)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더러는 말하기를 “지금의 화주(和州) 또는 성주(成州)이다.”라고들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지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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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이 현재 고려의 영토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나라나 북한 모두 한반도 밖에 졸본(卒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고려 당시의 고려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본다.
고려 때 요동(遼東)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의 서경(西京), 성주(成州) 역시 모두 한반도 밖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인들 중 일부는 고려 화주(和州)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이라고 인식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고려 화주(和州)는 현재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견해처럼 함경남도 금야가 아니다. 한반도 안에 위치한 지역이 아니다.
아래는 중국 환인만주족자치현에 있는 오녀산(五女山)의 구글지도이다.
Wunvshan · 중국 번시 시 환런 만족 자치현 邮政编码: 117201
★★★★☆ · 산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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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서경(西京)은 오녀산(五女山)에서 동남쪽 방향 지금의 인공호수 안에 있었다고 본다.
고려는 이 지역을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이라고 봤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다수의 견해도 같은 견해이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成州本沸流王松讓之故都, 太祖十四年, 置剛德鎭. 顯宗九年, 改今名, 爲防禦使, 後爲知郡事. 別號松讓【成廟所定】. 有溫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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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원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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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州本沸流王松讓之故都, 太祖十四年, 置剛德鎭. 顯宗九年, 改今名, 爲防禦使, 後爲知郡事. 別號松讓【成廟所定】. 有溫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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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成州)는 본래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의 고도(故都)로, 태조 14년(931)에 강덕진(剛德鎭)을 두었다. 현종 9년(1018)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방어사(防禦使)로 삼았다가, 뒤에 지군사(知郡事)로 하였다. 별호(別號)는 송양(松讓)【성종[成廟] 때 정하였다.】이다. 온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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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成州)는 본래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의 고도(故都)로(成州本沸流王松讓之故都)'라고 기재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 성주(成州)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인 고려 서경(西京)과 가까이에 인접한 지역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중국 부이강(富尔江)의 구글지도이다.
Fu'er River · 중국 퉁화 시 퉁화 현 邮政编码: 134216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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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는 부이강(富尔江)에서 동남쪽에 있는 길림성 집안시(集安市) 북부를 송양(松讓)의 비류국(沸流國)이 위치했던 곳으로 정했다고 본다.
다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재되어 있듯이 고려에서는 '이 지역은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이 아닌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이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097년 12월 13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朕以昊蒼眷祐, 祖宗貽範, 統臨天下, 四十有三載矣. 外康百姓, 內撫諸侯, 咸底于道. 而海隅立社,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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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원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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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朕以昊蒼眷祐, 祖宗貽範, 統臨天下, 四十有三載矣. 外康百姓, 內撫諸侯, 咸底于道. 而海隅立社, 北抵龍泉, 西極鴨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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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계사 요(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파견하여 옥책(玉冊), 규(圭), 인(印), 관면(冠冕), 차로(車輅), 장복(章服), 안마(鞍馬), 필단(匹叚) 등의 물건을 보냈다. 책문(冊文)에서 말하기를,
“짐이 하늘에서 돌보아주심과 조종(祖宗)께서 남기신 규범으로 천하를 통치한 지 43년이 되었다. 밖으로는 백성을 편안히 하고 안으로는 제후를 어루만져 모두 바른 길로 가게 하였다. 〈고려는〉 바다 모퉁이에 사직을 세워 북쪽으로는 용천(龍泉)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압록(鴨綠)에 닿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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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경계가 북쪽은 용천(龍泉)에 이른다고 거란의 황제가 직접 밝히고 있다(北抵龍泉, 西極鴨綠).
거란의 황제가 밝힌 용천(龍泉)은 옛 발해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뜻한다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내용이다.(음력 1088년 9월 미상)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九月 遣太僕少卿金先錫如遼, 乞罷榷場. 表曰, “三瀆靡從, 雖懼冒煩之非禮, 一方所願, 豈當緘黙以不言? 况昔者, 投匭上書, 萬姓悉通於窮告, 呌閽檛鼓, 四聰勿閡於登聞. 幸遭宸鑑之至公, 盍寫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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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원문 일부와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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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伏審承天皇太后, 臨朝稱制, 賜履劃封, 舞干俾格於舜文, 執玉甫叅於禹會. 獎憐臣節, 霑被睿恩. 自天皇鶴柱之城, 西收彼岸, 限日子鼈橋之水, 東割我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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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살펴보건대 승천황태후(承天皇太后)가 국정을 맡아 섭정할 때에 봉토를 나누어 내려 주었으니, 순(舜)의 문덕(文德)에 따라 방패를 들고 춤추듯[舞干] 하였고 우(禹)의 회합에 옥(玉)을 들고 참여한 듯하였습니다. 신하의 절개를 칭찬하여 황제의 은혜를 입게 해주었으니, 천황학주(天皇鶴柱)의 성(城)으로부터 서쪽의 언덕까지 거두고 일자별교(日子鼈橋)의 물(水)로 한정하여 동쪽을 우리의 강토로 할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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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씀드린 거란의 황제가 직접 고려와 거란의 경계를 밝힌1097년보다 9년 전인 1088년도에 고려선종이 밝힌 내용이다.
두 내용은 고려와 거란간의 국경을 정한 합의내용이다.
고려 선종은 거란의 승천황태후(承天皇太后) 때 확정된 양국의 경계를 거란의 황제에게 다시 한 번 언급한다(審承天皇太后, 臨朝稱制, 賜履劃封).
당시 고려와 거란의 경계는 이 표문에 기재된
"천황학주(天皇鶴柱)의 성(城)으로부터 서쪽의 언덕까지 거두고 일자별교(日子鼈橋)의 물(水)로 한정하여 동쪽을 우리의 강토로 할애하였습니다(自天皇鶴柱之城, 西收彼岸, 限日子鼈橋之水, 東割我疆)"라는 문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천황학주(天皇鶴柱)의 성(城)이란
내 개인적인 견해론 요나라 때 동경요양부 학야현으로 추정되는 현재 요양시(遼陽市)의 화표주(華表柱)를 뜻한다고 본다.
따라서 고려와 거란은 서해에서 의주(義州)까지는 압록강(鴨綠江)을 경계로 하고,
지금의 의주(義州)에서 지금의 요양시 화표주(遼陽市 華表柱) 주변까지는 애하(璦河 Aihe River) 일부와 국경선이 경계라고 본다.
그리고 고려 동쪽의 경계라는 일자별교의 수(日子鼈橋之水)는 거란의 황제가 밝힌 용천(龍泉)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아래 도표와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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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동부여 추격대를 피해 건넌 강 = 일자별교의 수(日子鼈橋之水) = 용천(龍泉)과 가까운 강 = 옛 발해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와 가까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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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 기재된 삼국지(三國志) 위서 권100 열전 제 88 내용이다.
魏書 (四庫全書本)/卷100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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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문고에 기재된 삼국지(三國志) 위서 권100 열전 제 88 내용 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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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蒙乃與烏引烏違等二人棄夫餘東南走中道遇一大水欲濟無梁夫餘人追之甚急朱蒙告水曰我是日子河伯外孫今日逃走追兵垂及如何得濟於是魚鼈並浮為之成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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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삼국지(三國志) 내용은,
주몽이 부여를 탈출하여 부여 동남(夫餘東南)으로 도피하던 중 큰 강(大水)을 만난 내용이다.
주몽은 큰 강 앞에서 자신은 태양의 아들이라고 외친다(朱蒙告水曰我是日子).
그러자 강의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준다(魚鼈並浮為之成橋).
위의 내용을 보면 日子(일자, 태양의 아들)와 鼈(별, 자라), 橋(교, 다리)가 등장한다.
고려에서 거란의 황제에게 보낸 표문에 등장하는 '일자별교(日子鼈橋)의 물(水)'이라는 문구는 '주몽이 자라가 만들어 준 다리를 이용해서 건넜던 강'이라는 의미이다.
아래는 흑룡강성모단강시영안발해진(黑龙江省牡丹江市宁安渤海镇)구글지도이다.
Bohaizhen · 중국 헤이룽장 성 무단장 시 닝안 시 邮政编码: 157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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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중국의 학자들은 이 지역을 발해국(渤海国)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가 위치한 곳이라고 추정한다.
고려에선 주몽이 건넌 강을 지금의 영안시(宁安市)를 흐르는 모단강(牡丹江)으로 본 후,
이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부근 모단강(牡丹江)을 일자별교의 수(日子鼈橋之水)로 칭하며 고려와 거란의 국경으로 정했다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본기 내용이다.
삼국사기 < 한국 고대 사료 DB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주몽(朱蒙) 이다.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이에 앞서 부여(扶餘)왕 해부루(解夫婁) 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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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본기 본문과 번역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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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其土壤肥羙,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宫室, 伹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髙句麗, 因以髙爲氏(一云, “朱蒙至卒本扶餘, 王無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其女妻之. 王薨, 朱蒙嗣位.”) . 時朱蒙年二十二歳, 是漢 孝元帝建昭二年, 新羅始祖赫居丗二十一年, 甲申歳也. 四方聞之, 來附者衆. 其地連靺鞨部落, 恐侵盗爲害, 遂攘斥之, 靺鞨畏服, 不敢犯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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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자연 지세[山河]가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기에 단지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氏]로 삼았다. (혹 말하기를, “주몽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는데, 왕이 아들이 없었다.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라고 하였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로, 한(漢)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년(B.C.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甲申年)이었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부락에 잇닿아 있기에 침입과 도적질의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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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기원전 37년 주몽은 자신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한 졸본(卒本)과 닿아 있는 말갈(靺鞨)부락을 물리쳤다(伹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髙句麗, 因以髙爲氏...其地連靺鞨部落, 恐侵盗爲害, 遂攘斥之, 靺鞨畏服, 不敢犯焉)고 기재되어 있다.
위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재된 내용은 고려인들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졸본(卒本)과 말갈(靺鞨)이 서로 가까운 지역으로 인식했다.
또한 여진(女眞)은 말갈(靺鞨)과 혈통적으론 같은 계통이니,
지금의 러시아 파르티잔강(Partizanskaya River) 주변이나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 주변에 거주하는 여진(女眞)과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은 서로 인접한 지역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고 본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려사(高麗史) 제신 윤관에 내한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瓘又使林彦, 記其事, 書于英州廳壁曰, “孟子曰, ‘弱固不可以敵强, 小固不可以敵大.’ 吾諷斯言久矣, 而今信之矣. 女眞之於國家, 强弱衆寡, 其勢懸殊, 而窺覦邊鄙, 於肅宗十年, 乘隙構亂, 多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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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고려사(高麗史) 제신 윤관에 대한 본문과 번역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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瓘又使林彦, 記其事, 書于英州廳壁曰, “孟子曰, ‘弱固不可以敵强, 小固不可以敵大.’ 吾諷斯言久矣, 而今信之矣. 女眞之於國家, 强弱衆寡, 其勢懸殊, 而窺覦邊鄙, 於肅宗十年, 乘隙構亂, 多殺我士民, 其繫縲爲奴隷者, 亦多矣. 肅宗赫然整旅, 將欲仗大義以討之, 惜乎厥功未集, 永遺弓劒. 今上嗣位, 亮陰三載, 甫畢祥禪, 謂左右曰, ‘女眞, 本勾高麗之部落, 聚居于盖馬山東, 世脩貢職, 被我祖宗恩澤深矣. 一日背畔無道, 先考深憤焉. 嘗聞古人之稱大孝者, 善繼其志耳. 朕今幸終達制, 肇覽國事, 盍擧義旗, 伐無道, 一洒先君之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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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尹瓘)이 또 임언(林彦)으로 하여금 그 일을 기록하게 하고, 영주(英州) 관청의 벽에 쓰게 하여 말하기를,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약한 것은 본디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작은 것은 본디 큰 적을 대적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외운 것이 오래되었으나 지금에서야 〈이것을〉 믿게 되었다. 여진(女眞)은 우리나라보다 강함을 따지면 약하고 많은 것을 따지면 적어 그 기세가 아주 다른데, 변방을 엿보다가 숙종(肅宗) 10년(1105)에 틈을 타 난을 일으켜 우리의 사민(士民)을 많이 죽였고, 포승으로 묶어 노예로 삼은 것이 또한 많았다. 숙종께서 분노하여 군사를 모아 대의(大義)에 의거하여 그들을 토벌하려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그 공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 임금〈예종〉께서 왕위를 이어 상복을 입으신지 3년이라 이제 막 대상(大祥)과 담제(禫祭)를 마치시고 좌우에 말하기를, ‘여진은 본디 고구려[勾高麗]의 부락으로서 개마산(盖馬山) 동쪽에 모여 살면서, 대대로 공직(貢職)을 바치며 우리 조종(祖宗)의 깊은 은혜를 깊이 입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무도(無道)하게 배반하니, 선고(先考)께서 크게 분노하였다. 일찍이 듣건대 옛사람이 말하는 큰 효도라는 것은 그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일 뿐이라 하였다. 짐이 지금 다행스럽게도 달제(達制)를 마치고 국사(國事)를 보게 되었으니, 어찌 의로운 깃발을 들어 무도함을 정벌하여 아버지의 치욕을 완전히 씻지 않겠는가?’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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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지리지(韓地)를 보면,
위만조선 멸망 후 한사군 지역에서 현도군에 속한 곳엔 고구려와 서개마가 있었다(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고 기재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 윤관 열전을 보면,
‘여진은 본디 고구려[勾高麗]의 부락으로서 개마산(盖馬山) 동쪽에 모여 살면서, 대대로 공직(貢職)을 바치며 우리 조종(祖宗)의 깊은 은혜를 깊이 입었다(女眞, 本勾高麗之部落, 聚居于盖馬山東, 世脩貢職, 被我祖宗恩澤深矣)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고려인들은 아래와 같이 고구려와 고려를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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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군 고구려현(玄菟郡 高句驪縣) = 졸본(卒本) = 서경(西京) or 성주(成州) or 화주(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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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군 서개마(玄菟郡 西蓋馬) = 개마산(盖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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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卒本)과 맞닿은 말갈(靺鞨) = 고려의 어느 지역과 맞닿은 여진(女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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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러시아 파르티잔강(Partizanskaya River)의 구글지도 내용이다.
Partizanskaya River ·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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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와 러시아는 이 지역에 여진 야라부(女眞 耶懒部)가 있었다고 본다.
아래는 러시아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 구글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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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와 여진이 충돌했을 땐 동여진의 중심은 파르티잔강(Partizanskaya River)이 아니라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에 있었다고 본다.
해란강(海蘭江, 海兰江) 구글지도이다.
Hailan River ·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 시 邮政编码: 133400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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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 화주(和州)는 이 해란강(海兰江) 남쪽에 있었다고 본다.
고려 화주(和州)로 추정되는 해란강(海兰江) 남쪽 지역과 동여진(東女眞)의 중심지 야라부(耶懒部)로 추정되는 지금의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나 파르티잔강(Partizanskaya River) 이 지역적으로 멀지 않기 때문에,
고려인들 중에서는 고려 화주(和州)를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卒本)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221년 02월 14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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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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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年二月己巳 西京馬灘邊, 有大石, 自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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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8년(1221) 2월 기사 서경(西京)의 마탄(馬灘) 가에서 큰 돌이 저절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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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의 마탄(西京馬灘)이라고 고려사(高麗史)에 기술되어 있다.
탄(灘)이 여울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마탄(馬灘)은 서경(西京)의 대동강(지금의 환인만주족자치현을 흐르는 혼강이라고 본다, 지금의 북한 평양 대동강이 아니다)에 있는 여울이라고 해석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253년 7월 15일(음) 신묘(辛卯)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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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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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 蒙兵涉大同江下馬灘, 指古和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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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 몽고병이 대동강(大同江) 아래의 마탄(馬灘)을 건너 옛 화주(和州)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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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지금[고려]의 대동강(大同江)이 패수(浿水)인 것은 명백하며, 곧 서경(西京)이 평양(平壤)이었던 것 또한 가히 알 수 있다(今大同江爲浿水明矣, 則西京之爲平壤, 亦可知矣)고 기술되어 있다.
고려 때의 기록인 제왕운기(帝王韻紀)까지 검토하면 고려 서경(西京)의 대동강(大同江)은 지금의 환인만주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县) 혼강(渾江)으로 해석된다.
원일통지(元一統志)를 보면,
쌍성(쌍성총관부이고 고려 화주이다)은 고려의 왕경(고려 동경)과 닿아 있다(南曰雙城直抵於髙麗之王京)고 기술되어 있다.
이 고려사 기사는 몽골군이 고려의 서경(西京)과 동경(東京)을 공격하기 위해 행했던 몽골군의 진격방향을 기술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즉, 몽골은 고려를 침략하면서 서경(西京)을 공격하고 동경(東京)을 공격하기 위해 동경(東京)의 서쪽에 있고 동경(東京)과 접한 화주(和州)로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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