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명주(溟州), 신라 소경(小京), 고려 동원경(東原京) 본문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내용이다. 936년 09월 08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갑오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진(陣)을 친 뒤 왕이 견훤(甄萱)과 더불어 군대를 사열(査閱)하였다. 견훤과 대상(大相) 견권(堅權)·박술희(朴述希)·황보금산(皇甫金山) 및 원윤(元尹) 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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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본문과 번역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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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溟州大匡王順式·大相兢俊·王廉·王乂, 元甫仁一等, 領馬軍二萬, 大相庾黔弼, 元尹官茂·官憲等, 領黑水·達姑·鐵勒諸蕃勁騎九千五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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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溟州)의 대광(大匡) 왕순식(王順式)과 대상 긍준(兢俊)·왕렴(王廉)·왕예(王乂) 및 원보 인일(仁一) 등에게 마군 20,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대상 유금필(庾黔弼)과 원윤 관무(官茂)·관헌(官憲) 등에게 흑수(黑水)·달고(達姑)·철륵(鐵勒) 등 여러 번(蕃)의 정예 기병 9,500명을 거느리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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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고려와 후백제의 일리천 전투를 기술한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명주(溟州)의 대광(大匡) 왕순식이 일리천 전투에 출전한 내용이다.
명주(溟州)는 지금의 강릉이라고 우리나라의 대다수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서도 그렇게 해석되게 조선의 학자들이 기술했다.
그런데 지금의 강릉에서 마군 20,000명(馬軍二萬)이 필요할까?
흑수, 달고, 철륵은 기병(騎)으로 기재되어 있고 명주의 군사는 마군(馬軍)이기 때문에 말 한마리에 군사 두 명이나 세 명일 수도 있다.
기병(騎)과 마군(馬軍)은 표기에서 차이가 나듯이 다른 구성원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그렇게 계산을 해도 강원도 강릉에 마군 2만(馬軍二萬)이 필요할지 의문이고 어떻게 말을 충당하고 관리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사(高麗史)와 책부원구(册府元龜), 원일통지(元一統志) 그리고 옛 신라의 영토를 분석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편찬자들인 청나라 한림원 학자들의 의견들을 종합해서 검토해보면 명주(溟州)는 지금의 강릉이 아니라고 본다.
즉, 왕순식의 지역인 고려 명주(溟州)는 지금의 강릉이 아니라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와 러시아 국경이 접한 지역에서 러시아 하산스키 군 일대에 속한 어느 지역이라고 추정된다.
이 지역은 흑수말갈부(흑수부 계열 중 우루부)와 인접한 지역이었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권4의 내용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04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本作品在全世界都属于公有领域,因为作者逝世已经超过100年,并且于1930年1月1日之前出版。 Public domainPublic domainfalsefalse <!-- NewPP limit report Parsed by mw‐web.codfw.main‐cb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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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권4의 구당서(舊唐書)를 인용한 내용 일부와 번역이다. 번역은 흠정만주원류고(남주성 역주, 글모아)에 기재된 남주성 박사님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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顯慶五年命蘇定方為熊津道大總管統水陸十萬仍令春秋為嵎夷道行軍總管與定方討平百濟自是新羅漸有髙麗百濟之地其界益大龍朔元年春秋卒詔其子太府卿法敏嗣位為開府儀同三司上柱國樂浪郡王新羅王三年詔以其國為雞林州都督府〈按雞林與今吉林音譯地里俱符是時新羅既兼有百濟髙麗之地里與靺鞨故設都督府于此俾王領之以重其鎮耳〉授法敏為雞林州都督法敏以開耀元年卒其子政明嗣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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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5년(660)에 명을 내려 소정방을 웅진도대총관으로 삼고 수구과 육군 10만을 통솔하게 하였다. 이어서 영을 내려 춘추를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아 정방과 함께 백제를 평정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신라는 점차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점령하여 그 경계가 더욱 커졌다.
용삭 원년(661)에 춘추가 죽었다. 조칙을 내려 그 아들 태부경 법민이 자리를 잇게 하고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낙랑군왕 신라왕'으로 삼았다.
3년(663)에 조칙으로 그 나라를 계림주도독부로 삼고(살펴보건대, 계림과 현 길림은 발음과 지리가 모두 부합한다. 이때 신라는 이미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차지하고 말갈과 이웃하였다. 그래서 도독부를 설치하여 신라왕이 다스리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그 진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법민에게 계림주도독을 제수하였다. 법민(신라 문무왕이다)이 개요 원년(681)에 죽었다. 그 아들 정명(신문왕)이 자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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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편찬자인 청나라 한림원 학자들이 중국의 역대 사서를 보고 결론을 내린 내용이다.
신라는 고구려 멸망 5년 전인 663년에 이미 지금의 길림성 길림시를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길림시까지는 신라가 영토로 만들었을지 의문이고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서 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지역과 그와 인접한 러시아 하산스키 군의 일부 지역은 신라가 고구려 멸망 전에 이미 탈환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훈춘시 팔련성 주변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서쪽은 옛 진한(辰韓, 秦韓)에 속했으니 신라 입장에서는 고토회복에 해당된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권5의 내용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05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欽定四庫全書 欽定滿洲源流考卷五 部族〈五〉 靺鞨 南北朝 北史靺鞨即古肅慎氏也所居多依山水渠帥曰大莫弗瞞咄〈案滿洲語謂長曰達稱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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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권5의 책부원구(册府元龜)를 인용한 내용 일부와 번역이다. 번역은 흠정만주원류고(남주성 역주, 글모아)에 기재된 남주성 박사님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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册府元龜
靺鞨在髙麗之北其地在營州東二千里南與新羅相接地方二千里編戸十餘萬兵數萬人北齊武成帝河清二年三年俱遣使朝貢後主天統元年至四年武平元年四年六年並遣使朝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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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부원구(북송시대인 1005년에서 1013년에 완성된 책이다)
말갈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다. 그 땅은 영주에서 동쪽으로 2천 리 떨어져 있고 남쪽으로 신라와 서로 닿아 있다. 그 땅은 사방 2천 리이고 편입된 호는 10여 만이며 군사는 수만 명이다. 북제 무성제 하청 2년과 3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후주 천통 원년에서 4년까지, 무평 원년과 4년 그리고 6년에도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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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고 남쪽으로 신라와 서로 닿아 있다(靺鞨在髙麗之北....南與新羅相接地)고 책부원구(册府元龜)에 기재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이러한 국경의 형태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상황이라고 본다.
아마도 말갈의 분포는 고구려의 동북쪽에서 동쪽 아래를 기역자(ㄱ) 형태로 둘러서 분포했다고 본다.
따라서 기역자(ㄱ)의 끝은 신라가 탈환한 영토와 닿다고 해석된다.
신라가 탈환한 옛 진한(辰韓)에 해당되는 고토는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중에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지역과 이 지역과 가까운 러시아 하산스키군 중의 어느 지역이라고 해석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명주(溟州)의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명주(溟州)는 본래 예국(濊國)으로【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장군을 보내어 우거(右渠)를 토벌하고 사군(四郡)을 정할 때에 임둔(臨屯)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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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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溟州本濊國【一云鐵國, 一云蘂國】, 漢武帝遣將討右渠, 定四郡時, 爲臨屯. 高句麗, 稱河西良【一云何瑟羅州】, 新羅善德王, 爲小京, 置仕臣. 太宗王五年, 以地連靺鞨, 罷京爲州, 置都督, 以鎭之. 景德王十六年, 改今名, 惠恭王十二年, 復古. 太祖十九年, 號東原京. 二十三年, 又以爲溟州. 成宗二年, 稱河西府, 五年, 改溟州都督府, 十一年, 更爲牧. 十四年, 爲團練使, 後又改防禦使. 元宗元年, 以功臣金洪就鄕, 陞慶興都護府. 忠烈王三十四年, 改江陵府. 恭讓王元年, 陞爲大都護府. 別號臨瀛. 有五臺山【五峯環列, 大小均敵, 故名. 西臺之下, 有泉湧出, 卽漢水之源】. 有大嶺. 有鏡浦. 屬縣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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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溟州)는 본래 예국(濊國)으로【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장군을 보내어 우거(右渠)를 토벌하고 사군(四郡)을 정할 때에 임둔(臨屯)이라 하였다. 고구려 때에 하서량(河西良)이라 불렀고【하슬라주(何瑟羅州)라고도 한다.】, 신라 선덕왕 때에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신(仕臣)을 두었다. 태종왕 5년(658)에 이 지역이 말갈(靺鞨)에 접한다 하여 경(京)을 없애고 주(州)로 삼아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경덕왕 16년(757)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12년(775)에 옛 이름을 회복하였다. 태조 19년(936)에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렀다. 〈태조〉23년(940)에 또 명주(溟州)라고 하였다. 성종 2년(983)에 하서부(河西府)라 불렀고, 〈성종〉5년(986)에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로 고쳤다가, 〈성종〉11년(992)에 다시 목(牧)으로 바꾸었다. 〈성종〉14년(995)에 단련사(團練使)로 하였다가, 뒤에 또 방어사(防禦使)로 고쳤다. 원종 원년(1260)에 공신 김홍취(金洪就)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충렬왕 34년(1308)에 강릉부(江陵府)로 고쳤다. 공양왕 원년(1389)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별호(別號)는 임영(臨瀛)이다. 오대산(五臺山)【다섯 개 봉우리가 둘러서 있는데 크기가 비슷하여 이름지었다. 서대(西臺)의 아래쪽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곧 한수(漢水)의 발원지이다.】이 있다. 대령(大嶺)이 있다. 경포(鏡浦)가 있다. 속현(屬縣)이 3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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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전인 신라 선덕왕(문맥으로 볼 때 선덕여왕이라고 해석된다) 때 명주(溟州)는 신라의 소경(小京)이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즉, '작은 서울'이었다고 기재하고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때 명주는 말갈과 접한다고 해서 서울이라는 명칭을 없애고 주로 삼았다(太宗王五年, 以地連靺鞨, 罷京爲州)고 한다.
고려 왕건 때 다시 서울이라는 명칭인 동원경(東原京)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이 당시는 고려에는 동경(東京)이라는 지명은 등장하질 않았다.
940년에 동원경(東原京)을 명주(溟州)라고 불렀다고 한다.
1260년에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라고 불렸다고 한다.
1308년에 강릉부(江陵府)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서도 명주는 말갈부와 가깝다(以地連靺鞨)고 한다.
또한 북송 때 편찬된 책부원구(册府元龜)에서도 말갈의 남쪽은 신라와 닿아 있다(南與新羅相接地)고 기재하고 있다.
중국사료에 기재된 말갈7부를 분석하면 한반도에 말갈 7부 중에 하나가 거주했다고 해석되는 내용이 등장하질 않는다.
말갈의 거주지는 두만강 바깥지역까지가 한계라고 해석된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말갈이 특정민족 외에 하류층을 뜻하는 명칭이기도 해서 한반도 어디에서든
하류층을 뜻하는 명칭인 말갈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냥 백제와 진한(辰韓, 秦韓)이 한반도 중남부에서 시작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맞춰서 만든(파생된) 이론이라고 본다.
함경북도 경흥군에 대한 위키백과 내용이다.
경흥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문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에 관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명목상의 행정 구역에 대해서는 경흥군 (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경흥
ko.wikipedia.org
아래는 위키백과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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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7년 이곳이 조선 목조가 살던 곳이라 하여 경흥(慶興)으로 개칭하고 군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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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경흥군은 함경북도의 끝자락이며 중국 훈춘과 마주보는 지역이다.
1437년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의 고향이라고 해서 경흥이라고 불렸다고 하지만
이미 고려 때 명주(溟州)를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 1260년 ~ 1308년까지의 고려 때 명칭이다)라는 지명으로도 불렀다.
훈춘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조부가 옷치긴 울루스에서 다루가치로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과 두만강을 경계로 마주보는 이 지역을 이성계의 고조부가 태어난 곳이라고 해서 경흥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의 명주(溟州) 즉,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는 이 지역이 아니라고 본다.
고려 명주(경흥도호부)는 지금의 강릉도 아닐뿐더러 지금의 함경북도 경흥군도 아니라고 본다.
고려의 명주(溟州) 즉,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는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중에 러시아 국경 부근이거나 이 지역과 인접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쪽 지역 중 어느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쪽 지역 중 어느 지역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아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 경신진 지역의 구글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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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지금의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 경신진 부근에서 원나라 관리인 다루가치로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보다 조금 북쪽인 지금의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 팔련성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다수 학자들이 발해의 동경(東京)으로 추정하는 지역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지금의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 경신진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국경 부근의 훈춘시나 그 인근인 러시아 하산스키 군의 어느 지역에 고려 명주가 있었고,
이 곳은 또한 신라의 소경(小京)이었며 고려태조 왕건 때는 동원경(東原京)이었고,
고구려 멸망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신라가 이미 고토회복한 땅이었며,
옛 진한(辰韓, 秦韓)에 속했었고 말갈부(흑수말갈 내지는 흑수부 중 우루부)와 접하거나 연결된 지역이었다고 본다.
또한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의 실제 고향일 가능성도 있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권13 본문이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 인용한 원나라의 지리서인 원일통지(元一統志) 내용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13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本作品在全世界都属于公有领域,因为作者逝世已经超过100年,并且于1930年1月1日之前出版。 Public domainPublic domainfalsefalse <!-- NewPP limit report Parsed by mw‐web.codfw.main‐866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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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흠정만주원류고의 본문 일부와 번역이다. 흠정만주원류고(글모아)의 역자이신 남주성 박사님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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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一統志
自南京而南曰海蘭府又南曰雙城直抵於髙麗之王京(按渤海南京在海州遼南京在遼陽此所云南京而南或僅指海蘭府冶所然亦當在東而非南也雙城亦非遼之雙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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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통지
남경(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연길시, 도문시)의 남쪽을 해란부(원나라의 합란부이며 고려의 함주이다)라 하고, 또 그 남쪽을 쌍성(쌍성총관부)이라 하는데, 곧바로 고려의 왕경(고려 동경으로 해석된다)과 닿는다.(살펴보건대, 발해의 남경은 해주이고 요나라 남경은 요양에 있다. 여기에서 남경의 남쪽이라 한 것은 혹 겨우 해란부의 치소를 가리키느 것이 아닌가 한다. 당연히 동쪽이지 남쪽이 아니다. 쌍성 또한 요나라 쌍성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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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연길시, 도문시) 남쪽에 해란부(원나라의 합란부이며 고려의 함주이다)가 있었고, 해란부 남쪽에 쌍성(雙城, 쌍성총관부)이 있었으며, 그 곳은 고려의 왕경(髙麗之王京, 고려 동경)과 닿아 있다고 기재한 것이다.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는 고려 화주(和州)이며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향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의 함경남도 금야(조선과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에선 함경남도 금야가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향으로 알려져있다)가 아니라고 본다.
아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마반촌 구글지도이다.
Mopan Village ·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 시 邮政编码: 1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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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图们市) 마반촌은 포선만노(蒲鮮滿奴)의 동진국(東眞國, 동하국[東夏國]) 남경(南京)이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
원일통지(元一統志)에서 지칭한 남경(南京)은 이 지역을 포함한다.
원일통지(元一統志)에선
이 지역의 남쪽에 해란부(고려의 함주) 즉, 원나라 해란부(합란부, 청나라의 해란과 원나라의 합란은 여진어 할라를 음차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가 있고 그 아래에 쌍성(쌍성총관부)이 있다고 하며 그곳은 곧바로 고려의 왕경(고려의 동경)과 닿는다(自南京而南曰海蘭府又南曰雙城直抵於髙麗之王京)고 기재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발해의 동경(東京)으로 추정하는 지금의 중국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 팔련성이 고려의 왕경(고려 동경)이라고 본다. 쌍성(쌍성총관부, 고려 화주)의 동쪽에 고려 동경(東京)이 있었다고 본다.
즉,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가 고려 동경(東京)은 아니라고 본다.
이에 대한 내용은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다룰 때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내용이다. 1199년 02월 02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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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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盜起溟州, 陷三陟·蔚珍二縣. 盜又起東京, 與溟州賊合, 侵掠州郡. 遣郞將吳應夫, 借閤門祗候宋公綽于溟州道, 將作少監趙通, 郞將韓祗于東京, 招撫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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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溟州)에서 도적떼가 일어나 삼척(三陟)·울진(蔚珍) 2현(縣)을 함락하였다. 또 동경(東京)에서도 도적떼가 일어나서 명주의 도적떼와 합류하여 주군(州郡)을 노략질하였다. 낭장(郞將) 오응부(吳應夫)와 차합문지후(借閤門祗候) 송공작(宋公綽)을 명주도(溟州道)로 보내고, 장작소감(將作少監) 조통(趙通)과 낭장(郎將) 한지(韓祗)를 동경으로 보내어 적을 회유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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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溟州) 즉,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와 고려 동경(東京)의 도적떼가 서로 합류하여 주군을 노략질을 했다(盜起溟州, 陷三陟·蔚珍二縣. 盜又起東京, 與溟州賊合, 侵掠州郡)고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되어 있다.
즉, 두 지역은 가깝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에 기재된 삼척과 울진도 지금의 강원에 있는 지역이 아니다.
모두 조선 때 지금의 강원도 어느 다른 지역을 삼척과 울진으로 지명을 바꿨다고 추정된다.
고려 동경(東京)이 지금의 훈춘시(珲春市) 팔련성이고 고려 명주(溟州)인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가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珲春市)에서 러시아 하산스키 군 지역 중 어느 지역이라면 지역적으로 이해가 되는 고려사(高麗史) 기사이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안덕현(安德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이화혜현(伊火兮縣)으로,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연무(緣武)로 고치고, 곡성군(曲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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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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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德縣本高句麗伊火兮縣, 新羅景德王, 改名緣武, 爲曲城郡領縣. 高麗初, 更今名. 顯宗九年, 來屬. 恭讓王 二年, 置監務.【恭愍王十八年, 陞知道保部曲, 爲宜仁縣, 屬安東. 恭讓王二年, 移屬禮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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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현(安德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이화혜현(伊火兮縣)으로,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연무(緣武)로 고치고, 곡성군(曲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종(顯宗) 9년(1018)에 〈안동부에〉 내속(來屬)하였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공민왕(恭愍王) 18년(1369)에 지도보부곡(知道保部曲)을 승격시켜 의인현(宜仁縣)으로 삼고, 안동(安東)에 소속시켰다. 공양왕(恭讓王) 2년(1390)에 예안(禮安)으로 옮겨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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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현(安德縣)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이라고 우리나라 학자들은 보고 있고 고려사(高麗史)에서도 그렇게 해석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안덕현은 고구려의 이화혜연이었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연무로 이름을 바꿨다(安德縣本高句麗伊火兮縣, 新羅景德王, 改名緣武)고 한다.
고구려 땅이고 통일신라 때 지명을 바꿨으면 이 지역은 경상북도 청송이 될 수 없고 경상북도 안동의 관할이 될 수 없다.
고려 현종 때인 1018년에 내속되었다고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되어 있는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선 〈안동부에〉라는 글자를 삽입했다.
그런데 이 안동부는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이 아니라고 본다.
고려 동경(東京)을 고려 현종 때인 1014년부터 1030년까지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불렀었다.
즉, 고려 안덕현(安德縣)은 고려 동경(東京) 관할이며 지금의 훈춘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고 해석된다.
그렇게 해석을 해야지 안덕현(安德縣)은 본래 고구려의 이화혜연(安德縣本高句麗伊火兮縣)이라는 고려사(高麗史)의 내용과 부합한다.
또한 고려 현종 1018년도면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막바지이니 고려에서 내속시켰다(顯宗九年, 來屬)는 고려사(高麗史) 기사와도 부합한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내용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 경주(慶州)는 본래 신라(新羅)의 옛 도읍이다. 시조(始祖) 박혁거세왕[赫居世王]이 개국하여 도읍(都邑)을 세우면서 나라이름[國號]를 서야벌(徐耶伐)이라 하였는데, 혹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의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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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年, 改安東大都護府. 二十一年, 復爲東京留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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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5년(1014)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다. 〈현종〉 21년(1030)에 다시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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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동경(東京)을 고려 현종 때인 1014년부터 1030년까지 안동대도호부로 불렀었다(五年, 改安東大都護府. 二十一年, 復爲東京留守)고 고려사(高麗史)에 기술되어 있다.
즉, 내 개인적인 견해론,
안덕현이 1018년 〈안동부에〉 내속되었다(顯宗九年, 來屬)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은 당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불리던 고려 동경(東京)에 내속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리고 고려의 동경(東京)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팔련성으로 추정되고 고려 안덕현(安德縣) 역시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에서 멀지 않은 어느 지역이라고 추정된다.
종합하면 내 개인적인 견해론,
고려의 동경(東京)과 고려의 경주(慶州)는 서로 다른 지역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후에 이 내용을 다룰 때 다시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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