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고려사(高麗史)의 철리(鐵利) 본문
고려사(高麗史)에선 철리(鐵利)에 대한 기사가 아홉 차례 등장한다. 다만 고려사(高麗史)에선 일리천 전투에 고려군 소속으로 참전한 철리(鐵利)를 철륵(鐵勒)으로 기재하고 있기 때문에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철륵(鐵勒)까지 포함한다면 철리(鐵利)는 총 열 차례 기재되어 있다(일리천 전투를 기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선 고려사[高麗史]와 달리 철륵[鐵勒]이 아닌 철리[鐵利]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일리천 전투에 참전한 흑수(黑水)처럼 철리(鐵利) 역시 936년 일리천 전투 이후 거의 80년 가까이 고려사(高麗史)에 등장하질 않다가 78년 후인 1014년 고려사(高麗史)에 다시 등장한다.
고려(高麗)와 거란(契丹)의 제2차 전쟁 이후 철리(鐵利)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철리(鐵利) 역시 흑수(黑水)처럼 고려(高麗)와 거란(契丹)의 전쟁을 본 후 자신들의 행동지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철리국(鐵利國)에 대한 내용이다.
일리천 전투 때 기재된 철륵(鐵勒)을 제외하고 작성한 도표이다.
| 철리국(鐵利國)에서 여진(女眞)이나 흑수(黑水), 이민족 출신을 고려(高麗)로 보낸 경우 | 철리국(鐵利國)에서 자국출신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을 고려(高麗)로 보낸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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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년 02월 08일 (음)
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여진(女眞)의 만두(萬豆)를 사신으로 보내 말과 담비의 초서피(貂鼠皮)와 날다람쥐의 청서피(靑鼠皮)를 바쳤다.
1022년 08월 17일 (음)
철리국(鐵利國)의 수령(首領) 나사(那沙)가 흑수(黑水)의 아부한(阿夫閒)을 보내 토산물[方物]을 바쳤다.
1030년 04월 17일 (음)
기해 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여진(女眞)의 계타한(計陁漢) 등을 보내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치며 책력(冊曆)을 요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1031년 06월 19일 (음)
철리국주(鐵利國主) 무나사(武那沙)가 약오자(若吾者) 등을 보내와서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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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년 03월 11일 (음)
무진 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사신 아로태(阿盧太)를 보내 토종말을 바쳤다.
1019년 05월 26일 (음)
임오 철리국(鐵利國)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방문에 답례하였다.
1021년 03월 18일 (음)
계사 철리국(鐵利國)에서 사신을 보내 예전처럼 귀부할 것을 청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1032년 02월 07일 (음)
철리국(鐵利國)에서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었다.
1033년 01월 04일 (음)
철리국(鐵利國)에서 사신을 보내 좋은 말과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치니, 왕이 기쁘게 여겨 답례로 더 많은 것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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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014년 02월 08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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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利國主那沙, 使女眞萬豆來, 獻馬及貂鼠·靑鼠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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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여진(女眞)의 만두(萬豆)를 사신으로 보내 말과 담비의 초서피(貂鼠皮)와 날다람쥐의 청서피(靑鼠皮)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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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여진(女眞)의 만두(萬豆)를 사신으로 보내(鐵利國主那沙, 使女眞萬豆來)라고 기재되어 있다.
위의 고려사(高麗史) 내용을 보면 철리국(鐵利國) 내에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이 거주하고 있고 철리국(鐵利國)의 국주(國主)인 나사가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을 사신으로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철리국(鐵利國) 주변에 여진화(女眞化)가 된 흑수부(黑水部)가 있었고 그 여진부(女眞部)가 된 흑수부(黑水部)의 인편으로 고려(高麗)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이러한 고려사(高麗史) 기사는 철리국(鐵利國)이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하얼빈시 의란현이나 그 주변에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라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022년 08월 17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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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利國首領那沙遣黑水阿夫閒來, 獻方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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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국(鐵利國)의 수령(首領) 나사(那沙)가 흑수(黑水)의 아부한(阿夫閒)을 보내 토산물[方物]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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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국(鐵利國)은 지역적으로 흑수부(黑水部) 내지는 흑수부(黑水部)의 파생 부(部)와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030년 04월 17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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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 鐵利國主那沙遣女眞計陁漢等來, 獻貂鼠皮, 請曆日, 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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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 철리국주(鐵利國主) 나사(那沙)가 여진(女眞)의 계타한(計陁漢) 등을 보내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치며 책력(冊曆)을 요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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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국(鐵利國)은 지역적으로 여진부(여진화된 흑수부이다)와 지역적으로 가깝거나 철리국(鐵利國) 내에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이 거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내용이다. 1031년 06월 19일 (음)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db.history.go.kr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高麗史) 본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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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利國主武那沙遣若吾者等來, 獻貂鼠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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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리국주(鐵利國主) 무나사(武那沙)가 약오자(若吾者) 등을 보내와서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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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본문을 보면
'鐵利國主武那沙遣若吾者等來, 獻貂鼠皮'라고 기재되어 있고
이를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선
'철리국주(鐵利國主) 무나사(武那沙)가 약오자(若吾者) 등을 보내와서 노랑담비가죽[貂鼠皮]을 바쳤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번역한 이 문장의 번역이 완전하치 못하다고 본다. 若吾者(약오자, 야오자)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없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若吾者(약오자, 야오자)는 아래 도표와 같은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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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 + 吾者 = 若吾者
'若(약, 야)'은 '구별하다', '선택하다'라는 뜻이고 '吾者(오자)'는 '兀者(올자)'로도 불리는 철리국(鐵利國) 주변에 거주하던 이 지역 원주민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若吾者(약오자, 야오자)는 '선택된 오자인'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즉, 내가 번역한 문장은
'철리국주 무나사는 선택된(若) 오자(吾者) 등을 보내서, 담비가죽(貂鼠皮)을 헌상했다(獻貂鼠皮)'이다(鐵利國主武那沙遣若吾者等來, 獻貂鼠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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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兀者(올자)에 대한 네이버 중국어사전 내용이다.
네이버 중국어사전
다양한 사전 콘텐츠 제공, 발음듣기, 중국어 필기인식기, 보조사전, 내가 찾은 단어 제공.
zh.dict.naver.com
아래는 兀者(올자)에 대한 네이버 중국어 설명과 내가 번역한 내용이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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兀者
兀者(wùzhĕ)部落名。又作吾者(wúzhĕ)、斡者(wòzhĕ)、斡拙(wòzhu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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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자
올자(兀者, wùzhĕ)는 부락명칭이다. 또한 오자(吾者, wúzhĕ), 알자, 알졸로도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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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者(오자)와 兀者(올자)는 같은 뜻이며 현재 중국어 발음도 같다.
따라서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吾者(오자)는 兀者(올자)를 뜻한다고 본다.
아래는 오덕개인(乌德盖人)을 설명하는 중국유기백과 내용이다.
乌德盖人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乌德盖人(乌德盖语: Удиэ, 俄语:Удэгейцы)是生活在黑龍江支流的烏蘇里江東岸、東至日本海沿岸的民族,今俄羅斯滨海边疆区和哈巴罗夫斯克边疆区。自稱
zh.wikipedia.org
아래는 오덕개인(乌德盖人)을 설명하는 중국유기백과의 본문과 내가 번역한 내용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으로 번역했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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乌德盖人長期以漁獵为生。古稱烏惹或兀惹,窩集,意為“林中人”。
金代称之为“兀的改”或“烏底改”(屬胡里改路管轄)。元代称之为“斡拙”,兀者野人,明代称“野人女真与兀良哈”,兀狄哈,清代则称“窩集”(森林人)。乌德盖人在森林中活動捕殺毛皮動物,因此又叫捕貂鼠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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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개인(乌德盖人)은 오랫동안 어업과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고대에는 오야(烏惹) 또는 올야(兀惹) 또는 와집(窩集)이라고 불렸다. "숲의 사람들"을 뜻한다.
금나라 때 올적개(兀的改) 또는 "오저개(烏底改)"이다(호리개로[胡里改路] 관할에 속한다). 원나라 때는 "알졸(斡拙)", 올자야인(兀者野人)이 이들이다. 명나라 때는 "야인여진(野人女真)과 올량합(兀良哈)" 또는 "올적합(兀狄哈)"으로 칭했다. 청나라 때는 "와집(窩集)"(숲속의 사람)으로 칭했다. 오덕개인(乌德盖人)은 숲속에서 활동하며 모피동물을 사냥했기에 "담비 사냥꾼(捕貂鼠人)"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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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기백과 내용 중에 올량합(兀良哈)을 오자야인(吾者野人)으로 보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는 내 견해와 다르다.
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동의한다.
이 유기백과의 내용을 보면,
올자(兀者, wùzhĕ)는 담비사냥꾼(捕貂鼠人)으로 불렸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서도,
선별된 오자(吾者, wúzhĕ)를 보내 담비가죽(貂鼠皮)을 고려에 헌상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若吾者(약오자, 야오자)는 '선별된(若) 오자(吾者)'로 번역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다.
아래는 중국 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원나라(元) 역사인 원사(元史)의 내용이다.
元史/卷041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三年春正月丙子,中書左丞許有壬辭職。丁丑,享于太廟。乙酉,中書平章政事納麟辭職。庚寅,沙汰怯薛丹名數。 二月戊戌,祭社稷。甲辰,太陰犯井宿。填星犯牛
zh.wikisource.org
아래는 위의 원사(元史)의 일부 내용과 내가 번역한 내용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이 서투르다. 감안하시기 바란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아래의 본문은 지정3년, 1343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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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月戊戌,祭社稷................... 遼陽吾者野人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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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무술(戊戌) 오곡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요양(遼陽) 오자야인(吾者野人)이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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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본문은 지정4년, 1346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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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四月壬子,遼陽為捕海東青煩擾,吾者野人及水達達皆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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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월 임자(壬子), 요양은 해동청을 포획하는 것으로 혼란하고 시끄럽게 되었다, 오자야인(吾者野人)은 수달달(水達達, 수달달은 원나라에서 송화강과 흑룡강이 만나는 지점에 거주하는 세력을 칭하는 용어이다. 대략 지금의 동강시[同江市]일대이다)과 함께 반란에 연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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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元史)의 내용을 보면,
오자야인(吾者野人)과 수달달(水達達)이 반란을 일으켰다(吾者野人及水達達皆叛)고 기재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오자야인(吾者野人)과 수달달(水達達)이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볼 때 두 세력은 서로 인근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며, 수달달(水達達)은 지금의 동강시(同江市) 부근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오자야인(吾者野人) 역시 그 부근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지금의 동강시(同江市) 구글지도이다.
퉁장 시 ·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 시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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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변에 수달달(水達達)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수달달(水達達) 주변에 오자야인(吾者野人)도 거주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이 지역은 흑수부(黑水部)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포함된다.
지금의 중국 동강시(同江市)에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일대는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중심인 흑수부(黑水部)가 활동하던 지역이라고 본다.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중심은 이 지역이고 이곳을 중심으로 여러 흑수말갈(黑水靺鞨) 계열의 부(部)들이 분파되었다고 해석된다.
아래는 철리국(鐵利國)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하얼빈시 의란현(依兰县) 구글지도이다.
이란 현 ·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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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다수 학자들은 이 지역에 철리국(鐵利國)이 있었다고 보고있다.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내용을 해석하면 이 지역 내에 여진족(女真族, 女眞族)도 함께 거주했거나 이 지역 부근에 흑수부(黑水部) 내지는 여진화(女眞化)된 흑수부(黑水部)가 있었다는 내용이며 오자(吾者)도 이 부근에 있었다는 내용이다.
아래는 하얼빈시 아성구(阿城区) 구글지도이다.
아청 구 ·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www.google.co.kr
이곳은 금나라(金)를 세운 완안부(完顔部)가 거주한 곳으로 중국의 학자들은 보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와 금사(金史)를 보면,
완안부(完顔部)를 가리켜 각각 여진(女眞)으로 흑수(黑水)에 살고 있는 자(女眞居黑水者), 여진족으로 흑수부(黑水部)에 사는 부족(女直居黑水部者部族)으로 기재되어 있다.
즉, 완안부(完顔部)는 원래 흑수부(黑水部) 계열이었지만 이곳으로 이주하고 거주한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에 의해 이 흑수부(黑水部) 계열인 완안부(完顔部)는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에게 장악된 흑수부(黑水部)가 되었다고 정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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