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世安民 bagtur khan
고려(高麗)의 동여진 , 거란(契丹)의 생여진 본문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이다.
金史/卷1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湼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隋稱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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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원문과 번역일부이다. 중국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으로 번역했다. 번역이 어색할 수 있다. 감안하시기 바란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해설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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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湼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隋稱靺鞨,而七部並同。唐初,有黑水靺鞨、粟末靺鞨,其五部無聞。
粟末靺鞨始附高麗,姓大氏。李勣破高麗,粟末靺鞨保東牟山。後為渤海,稱王,傳十餘世。有文字、禮樂、官府、制度。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黑水靺鞨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于高麗。嘗以兵十五萬眾助高麗拒唐太宗,敗于安市。開元中,來朝,置黑水府,以部長為都督、刺史,置長史監之。賜都督姓李氏,名獻誠,領黑水經略使。
其後渤海盛強,黑水役屬之,朝貢遂絕。五代時,契丹盡取渤海地,而黑水靺鞨附屬于契丹。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
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兄阿古廼好佛,留高麗不肯從,曰:「後世子孫必有能相聚者,吾不能去也。」獨與弟保活里俱。始祖居完顏部僕幹水之涯,保活里居耶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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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선조는 말갈씨이다. 말갈은 본디 물길로 불렸다. 물길은 옛 숙신의 땅이다. 원위 때 물길은 7부가 있었다. 속말부, 백돌부, 안차골부, 불열부, 호실부, 흑수부, 백산부로 불렸다. 수나라는 말갈로 칭했고 7부는 동일하다. 당나라 초에 흑수말갈과 속말말갈이 있었고 그 외 5부는 듣지 못했다.
흑수말갈은 처음에 고려에 종속되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이적이 고려(고구려)를 격파하자 속말말갈은 동모산을 지켜냈다. 발해를 세우고 왕으로 불렸으며 10여세를 이었다. 문자와 예악, 관부와 제도가 있었다. 오경과 15부, 62주를 두었다.
흑수말갈은 숙신에 거했다. 동쪽은 바다와 접하고 남쪽은 고려(고구려)와 접했으며 역시 고려(고구려)에 의지해서 붙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15만 병력으로 고구려를 도왔으나 안시에서 패배하였다. 개원(開元, 713년 12월 ~ 741년) 중에 당나라에 래조했고 흑수부가 설치되었으며 부장(부족장)이 도독과 자사를 했으며 장사를 설치해 감독하였다. 도독의 성은 이씨 성을 하사했고 이름은 헌성이며 흑수경략사로 임명했다.
그 후 발해는 번성하고 강력해졌으며 흑수도 발해에 속하게 되어 조공이 끊어졌다. 오대 때 거란이 발해의 영토를 취했고, 이후 흑수말갈은 거란에 귀부해 속하게 되었다. 그 땅의 남쪽은 거란에 적했고(거란의 명부에 기록되었고) 이들은 숙여진으로 불렸다. 하지만 북쪽은 거란에 적하지 않아(거란의 명부에 기록되지 않아) 생여진으로 불렸다.
생여진의 땅엔 혼동강과 장백산이 있으며, 혼동강은 흑룡강으로도 불린다, 소위 '백산,흑수'이다.
금나라의 시조는 함보(函普)이다. 고려에서 왔다, 당시 나이는 60세가 넘었다. 형 아고내(阿古廼)는 불교를 좋아해서 고려를 떠나기를 거부했다, 그는 "후세의 후손들은 분명 모일 수 있겠지만 나는 갈 수 없다"며 고려를 떠나기를 거부했고 오직 동생 보활리(保活里)만 함께 갔다. 시조(금나라 시조 함보[函普])는 완안부족(完顏部) 복간수(僕幹水) 물가에서 살았고, 보활리(保活里)는 야라(耶懶)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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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金史)에 보면,
그 땅의 남쪽은 거란에 적했고(거란의 명부에 기록되었고) 이들은 숙여진으로 불렸다. 하지만 북쪽은 거란에 적하지 않아(거란의 명부에 기록되지 않아) 생여진으로 불렸다(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 땅은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영역을 포함한 옛 발해(渤海)의 땅을 가리킨다.
그 땅의 남쪽이 숙여진(熟女直)이고 발해(渤海) 영토의 북쪽이 생여진(生女直)이기 때문에 생여진(生女直)의 영역은 한반도와 닿지 않았고 멀리 떨어져있다고 해석된다.
또한 금사(金史)에선,
생여진의 땅엔 혼동강과 장백산이 있으며, 혼동강은 흑룡강으로도 불린다, 소위 '백산,흑수'이다(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라고 기술되어 있다.
생여진(生女直)은 발해(渤海)의 영토에서 숙여진(熟女直)보다 북쪽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니 이 지역은 한반도와 닿지 않은 지역이라고 해석된다.
그리고 그 곳에 혼동강(混同江)과 장백산(長白山)이 있다고 하니 이 장백산(長白山)은 현재 북한의 백두산(白頭山)이 아니다.
혼동강(混同江)을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 흑룡강(黑龍江)이 지금의 흑룡강(黑龍江)을 지칭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금사(金史)는 대금국지(大金國志)와는 달리 금나라를 세운 완안부(完顔部)를 중심으로 원나라 때 기술하고 편찬한 역사서다.
그리고 이 문장 이후 바로 완완부(完顔部)와 금나라의 시조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혼동강(混同江)과 장백산(長白山)은 완안부여진(完顔部女真)이 거주하던 지역인 지금의 하얼빈시 아성구에서 멀지 않은 산이며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불린 혼동강(混同江) 역시 지금의 흑룡강(黑龍江)이 아닌 하얼빈시 아성구에서 멀지 않은 강이라고 해석된다.
아래는 완안부(完顔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하얼빈시 아성구 구글지도이다.
금사(金史)에 기재된 장백산(長白山)과 혼동강(混同江)은 이 지역에서 멀지 않은 산과 강이라고 본다.
아청 구 ·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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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백과에서 제공하는 대금국지(大金國志) 내용이다.
大金國志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臣懋昭上言:竊惟紀外國之暦年,簡書具在;考累朝之文館,事迹难磨。爰輯遺聞,少裨淵覽。伏念臣偷生淮浦,竊祿金朝,少讀父書,因獲清流之選;日親文苑,粗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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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중국유기백과에서 제공하는 대금국지(大金國志) 본문과 번역이다. 번역기와 내가 아는 한문을 통해 번역한 내용이다. 번역이 어색할 수 있으니 감안하시기 바란다. ( )안에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기재한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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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國本名朱里真,番语舌音讹為女真,或曰慮真,避契丹興宗名,又曰女直,肅慎氏遺種,渤海之別族也。或曰三韓辰之後,姓拏氏,於北地中最微且賤。
唐貞觀中,靺鞨來中國,始聞女真之名,世居混同江之東長白山下。其山乃鴨綠水源。
南鄰高麗,北接室韋,西界渤海、鐵離,東瀕海,《三國志》所謂挹婁,元魏所謂勿吉,唐所謂黑水靺鞨者,今其地也。其屬分六部,有黑水部,即今之女真。
其水掬之則色微黑,契丹目為混同江,深可二十丈餘,狹處可六七十步,闊者至百步。居江之南者謂之“熟女真”,以其服屬契丹也;江之北為“生女真”,亦臣於契丹。後有酋豪受宣命為首領,號太師。契丹自賓州混同江北八十里建寨以守。
又云:契丹乘唐衰興北方,吞諸番三十六,女真在其中。契丹恐女真為患,誘豪右數千家處之遼陽之南而著籍焉,分其勢,使不得與本國通,謂之“合蘇欸”。自咸州東北分界入宮口至束沫江,中間所居之女真,隸咸州兵馬司,與其國往來無禁,謂之“回霸”。極遠邊而野居者,謂之“黃頭女真”。
又,居束沫江之北,寧江州之東,地方千餘里,戶十餘萬。無大君長,亦無國名,止是族帳散居山谷間,自推豪傑為酋長。小者千戶,大者數千戶,蓋七十二部落之一也。僻處契丹東北隅,臣屬一百餘年,世襲節度使,兄弟相傳,周而復始。
或又云:其初酋長(本新羅人,號完顏氏。“完顏”,猶漢言“王”也。女真妻之以女,生二子,其長)即胡來也。其自此傳三人至楊割太師,以至阿骨打。以其國產金及有金水源,故稱大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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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원래 이름은 주리진(朱里真)이다, 변방 발음으로 설음이 와전되어 여진(女真)이 되었다, 혹은 려진(慮真)으로도 불린다. 거란 흥종(興宗)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여직(女直)으로도 불렸다. 숙신씨의 후예이며 발해의 별족이다(같은 말갈족이지만 계통은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혹은 삼한(三韓) 중에 진한(辰韓)의 후예이며 나씨(拏氏)라고도 일컬어진다, 북쪽 지역에 가장 보잘것 없고 비천한 사람들이다.
당나라 정관(正觀, 627~ 649년) 때에 말갈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여진이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그들은 대대로 혼동강 동쪽의 장백산 아래에 살았다. 이 산은 압록강의 근원이다.
남쪽으로는 고려, 북쪽으로는 실위, 서쪽으로는 발해와 철리, 동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읍루, 북위의 물길, 당나라의 흑수말갈이 지금의 그 땅이다. 흑수부엔 6개 부가 속해있으며, 그들이 지금의 여진이다.
그 물을 양손으로 떠서 보면 약간 검은색이다. 거란은 이 강을 혼동강이라고 부른다. 깊이 20장 남짓하고, 좁은 곳은 60~70보이며, 넓은 곳은 100보에 이른다. 강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거란에 속했기 때문에 "숙여진"이라고 칭했고, 강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생여진"이라고 칭했으며, 이들 역시 거란의 신민이었다. 후에 추호(추장)가 칙명을 받아 수령이 되었고, 이를 태사(太師)라고 부른다. 거란은 혼동강에서 북쪽으로 80리 떨어진 주에 군영을 세워 방어했다.
또 다른 말에 의하면 : 당나라가 쇠퇴할 때 거란은 북방에서 발흥해서, 여러 36개 변방세력(番)을 병합했고 그 중에 여진이 있다는 설도 전해진다. 거란은 여진이 근심거리가 될 것이 두려워, 호족 수천가를 꾀어 요양의 남쪽으로 이주시켜 거란에 호적하게 하고, 그 기세를 분산시켰으며, 사신이 본국과 소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합소애"라고 칭했다. 함주시 북동쪽 경계에서 궁구에서 속말강까지, 중간에 여진이 거주하는 지역은, 함주병마사에 예속되었으며, 다른 나라와 교류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회패(回霸, 휘발[辉发]여진을 지칭한다)"라고 불렸다. 아주 먼 변방 지역의 들판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황두여진"이라고 부른다.
또한, 속말강 북쪽에 거하며, 영강주(寧江州, 지금의 길림성 부여시로 추정된다)의 동쪽에 있으며, 그 땅은 대략 천리이고, 가구 수는 대략 10만이다. 대군장도 없으며, 국가의 명칭도 없고, 다만 족들(族, 가족은 아니며 부족으로 해석된다)의 천막이 산 골짜기 간에 흩어져 산제해 있고, 각자의 호걸을 추장으로 추대한다. 작게는 수가 천 가구이고, 크게는 수천 가구이며, 아마도 72개 부락 중 하나이다. 거란의 북동쪽 모퉁이 궁벽한 곳에 거하는 이들은, 대략 100년 가량 속국이었으며, 형제 간 끊이지 않고 절도사(節度使)라는 칭호가 세습되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 최초의 추장(본래 신라인이며, 완안씨로 불렸다. 중국어로 "왕"과 같다. 여진의 처를 통해서, 2남을 얻었고, 그는 수장이다)은 이방에서 온사람이 맡았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3인이 양활태사(楊割太師)로 전승되었으며, 이는 아골타(阿骨打)로 이르게 된다. 그 나라는 금이 산출되고 금수(金水, 대략 금강[金江]이라는 강의 명칭이다)의 발원지가 있다, 그런 연고로 대금(大金)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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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국지(大金國志)를 보면,
그들은 대대로 혼동강 동쪽의 장백산 아래에 살았다(世居混同江之東長白山下)라고 기술하고 있다.
대금국지(大金國志)의 저자는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다만 북송에서 원나라로 이어지는 시기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금국지(大金國志)는 금사(金史)와 달리 완안부(完顔部)만을 중심으로 기술된 책이 아니다. 금나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여러 여진(女真)세력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대금국지(大金國志)를 보면 대략 5개의 여진(女真)세력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세부적으로는 모호한 내용도 보인다.
대금국지(大金國志)를 보면,
금사(金史)와 마찬가지로 혼동강(混同江)과 장백산(長白山)이 등장한다.
하지만 기술하는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금사(金史)에서는
생여진의 땅엔 혼동강과 장백산이 있으며, 혼동강은 흑룡강으로도 불린다, 소위 '백산,흑수'이다(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대금국지(大金國志)에서는
그들은 대대로 혼동강 동쪽의 장백산 아래에 살았다. 이 산은 압록강의 근원이다(世居混同江之東長白山下. 其山乃鴨綠水源)라고 기술되어 있다.
금사(金史)와 달리 대금국지(大金國志)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은 혼동강(混同江) 동쪽에 있다고 위치를 좀 더 세분해서 기술하고 있다.
혼동강(混同江) 동쪽에 장백산(長白山)이 있고 이 산이 압록강(鴨綠江)의 근원이라고 한다.
대금국지(大金國志)의 저자가 가리킨 압록강(鴨綠江)이 정확히 어떤 강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 강을 지금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압록강(鴨綠江)이라고 한다면 이 문장에서 기재한 장백산(長白山)은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이 된다.
따라서 금사(金史)에 기재된 장백산(長白山)과는 다른 산이 된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대금국지(大金國志) 저자는 금사(金史)와 달리 5개의 여진부(女真部)를 다루다보니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을 완안부여진(完顔部女真)의 장백산(長白山)
즉, 금사(金史)에 기재된 장백산(長白山)으로 착각을 해서 기술한 것이라고 본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내용이다. 거란에서 고려국왕을 책봉하는 내용이다. (1097년의 기사이다)
고려사 < 고려시대 사료 DB
12월 계사 요(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파견하여 옥책(玉冊), 규(圭), 인(印), 관면(冠冕), 차로(車輅), 장복(章服), 안마(鞍馬), 필단(匹叚) 등의 물건을 보냈다. 책문(冊文)에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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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원문과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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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朕以昊蒼眷祐, 祖宗貽範, 統臨天下, 四十有三載矣. 外康百姓, 內撫諸侯, 咸底于道. 而海隅立社, 北抵龍泉, 西極鴨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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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계사 요(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파견하여 옥책(玉冊), 규(圭), 인(印), 관면(冠冕), 차로(車輅), 장복(章服), 안마(鞍馬), 필단(匹叚) 등의 물건을 보냈다. 책문(冊文)에서 말하기를,
“짐이 하늘에서 돌보아주심과 조종(祖宗)께서 남기신 규범으로 천하를 통치한 지 43년이 되었다. 밖으로는 백성을 편안히 하고 안으로는 제후를 어루만져 모두 바른 길로 가게 하였다. 〈고려는〉 바다 모퉁이에 사직을 세워 북쪽으로는 용천(龍泉)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압록(鴨綠)에 닿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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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契丹)의 황제는 고려(高麗)의 국왕에게 고려(高麗)와 거란(契丹)의 국경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북쪽으로는 용천(龍泉)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압록(鴨綠)에 닿았으며(北抵龍泉, 西極鴨綠).
이 문장의 '抵(저)'는, '용천(龍泉)에 닿았다'내지는 '용천(龍泉)에 접한다'로 해석된다.
따라서 고려(高麗)와 거란(契丹)의 국경은 용천(龍泉)의 남쪽에 접한 지역이라고 해석된다.
즉, 지금의 흑룡강성모단강시영안발해진(黑龙江省牡丹江市宁安渤海镇) 남쪽에 접한 지역이 당시 고려(高麗)와 거란(契丹)의 국경이라고 본다.
아래는 흑룡강성모단강시영안발해진(黑龙江省牡丹江市宁安渤海镇)구글지도이다.
Bohaizhen · 중국 헤이룽장 성 무단장 시 닝안 시 邮政编码: 157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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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에선 이 지역 아래지역에 흐르는 모단강(牡丹江)을 주몽이 건넌 일자별교의 수(日子鼈橋之水)로 인식했다고 본다.
아래는 중국유기백과와 러시아에서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의 근거지인 야라(耶懒)가 있었다고 보고 있는 러시아 파르티잔강(река Партизанская, Partizanskaya River)의 구글지도이다.
Partizanskaya River ·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 ·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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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라(耶懒)는 옛 발해(渤海)의 용천(龍泉)보다 남동쪽에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금사(金史)에서,
북쪽은 거란에 적(籍)하지 않아 생여진으로 불렸다(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라며 생여진(生女直)은 옛 발해(渤海) 영토 내에서 북쪽에 위치한다고 기재한 것을 볼 때
옛 발해(渤海)의 동쪽 내지 동남쪽에 있었던 야라(耶懒, 여진의 본거지)는 생여진(生女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야라(耶懒)는 거란(契丹)의 영역이 아닌 고려(高麗)의 속번(屬藩)이어서 대금국지(大金國志)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석된다.
나는 기존에 올린 글에서 회패(回霸, 휘발[辉发]여진을 지칭한다)를 숙여진(熟女直)으로 지칭했었다.
그런데 대금국지(大金國志)를 읽어보니 회패(回霸, 휘발[辉发])는 숙여진(熟女直)도 생여진(生女直)도 아니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기존에 올린 글 중에 회패(回霸, 휘발[辉发])를 숙여진(熟女直)으로 보고 올린 글을 수정했다.
아래는 기존에 올린 글 중에 수정한 글이다.
태조왕건, 계림(鷄林), 고려의 번(蕃) 달고(達姑)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권1 태조 원년(太祖 元年)에 대한 내용이다. (음력 918년 9월 26일, 양력 918년 11월 2일) 고려시대 사료 DB丙申 諭群臣曰, “平壤古都, 荒廢雖久, 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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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완충지대 요동반도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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