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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에 등장한 최초의 여진(女眞),우루부(虞娄部),야라(耶懒) 본문

만주족은 여진족이 아니다

당나라에 등장한 최초의 여진(女眞),우루부(虞娄部),야라(耶懒)

박지원( baghatur khan) 2025. 7. 16. 09:54

대금국지(大金國志)에 기재된 흑수 6부(黑水六部)의 지역적 범위는

가장 북쪽으로는 송화강(松花江)과 흑룡강(黑龍江, Амур)이 합류하는 지역인 지금의 중국 동강시(同江市)에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그리고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를 지나는 흑룡강 하류 일대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가장 남쪽은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남부 해안지역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주변까지와 연해주 전지역은 흑수 6부(黑水六部)가 거주하는 지역이며

대금국지(大金國志)에선

이들 흑수 6부(黑水六部)를 여진(女真)이라고 기재했다(其屬分六部,有黑水部,即今之女真).

신당서(新唐書)에서는

흑수말갈(黑水靺鞨)에 대해 기재한 후 말갈 9부(靺鞨 9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문맥으로 볼 때 말갈 9부(靺鞨 9部)는 고구려(高句麗) 멸망 전후에 등장한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분파들이라고 해석된다.

다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철리부(鐵離部)는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분파가 아니다.

그리고 우루부(虞娄部)는 흑수부(黑水六部)가 분파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독립된 세력이었지만 고구려 멸망 전후에야 두각을 드러낸 것인지 그 성격이 모호하다.

신당서(新唐書)에 기재된 말갈 9부(靺鞨 9部) 중에 대금국지(大金國志)에 기재된 흑수 6부(黑水六部)에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말갈부(靺鞨部)는 흑수부(黑水部), 우루부(虞娄部), 월희부(越喜部)이다.

아래는 흑수부(黑水部), 월희부(越喜部), 우루부(虞娄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흑수부(黑水部)는 지금의 중국 동강시(同江市)에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일대에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지금의 동강시(同江市) 구글지도이다.

 

퉁장 시 ·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 시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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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금의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구글지도이다.

 

하바로프스크 · 하바로브스키 변경주 러시아

하바로브스키 변경주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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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희부(越喜部)는 우수리강(乌苏里江) 동쪽의 비긴강(比金河) 유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비긴강(比金河) 구글지도이다.

 

Reka Bikin · 하바로브스키 변경주 러시아 682972

★★★★☆ ·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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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부(虞娄部)가 있던 곳은 싱카호(兴凯湖, Ханка) 동쪽에서 러시아 연해주 남부 해안가까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싱카호(兴凯湖, Ханка) 구글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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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러시아 파르티잔강(река Партизанская, Partizanskaya River)의 구글지도 내용이다. 중국유기백과와 러시아에선 이 지역에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의 근거지인 야라(耶懒)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Partizanskaya River ·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

★★★★★ ·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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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라(耶懒)의 위치는 우루부(虞娄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 안에 포함된 것을 볼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론,

원래 이 지역에 거주하던 여진족(女真族, 女眞族)이 있었고 흑룡강 주변의 흑수말갈(黑水靺鞨)이 확장하면서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분파가 이 지역 여진족(女真族, 女眞族)들과 함께 생활하고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거주하던 야라(耶懒)는 후에 우스리스크(Уссурийск) 주변에 거주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흑수부(黑水部)는 물길(勿吉)로 칭하던 시기인 중국 원위(元魏 386년~534년) 때부터 존재했지만 그 시기에 여진(女真)이라는 명칭은 중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여진(女真)이라는 명칭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당나라 정관(貞觀 627년~649년)시기부터이다.

당나라(唐) 정관(貞觀 627년~649년)시기 흑수부(黑水部)와 우루부(虞娄部)가 당나라(唐)를 방문했고 정관(貞觀 627년~649년) 시기에 처음 당나라(唐)에 여진(女真)이라는 명칭이 알려졌다고 하는데,

우루부(虞娄部)는 북사(北史)와 금사(金史)에 기재된 물길 7부(勿吉 7部)나 신당서(新唐書)에 기재된 말갈 6부(靺鞨 6部)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당서(新唐書)에선,

고구려(高句麗) 멸망 전후 새롭게 등장하는 흑수말갈(黑水靺鞨) 계열의 말갈 9부(靺鞨 9部)에 우루부(虞娄部)가 등장한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견해론,

흑수부(黑水部)는 그 이전인 원위(元魏 386년~534년) 때도 존재했지만 여진(女真)이라는 명칭이 중국에 알려진 시기는 당나라(唐) 정관(貞觀 627년~649년)시기이고

우루부(虞娄部)가 당나라(唐) 정관(貞觀 627년~649년)시기 중국을 방문한 후 여진(女真)이라는 명칭이 처음 중국에 등장한 것을 볼 때

결국, 우루부(虞娄部) 내에 여진(女真)이 있었거나 우루부(虞娄部) 자체가 여진(女真)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볼 때도 야라(耶懒)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파르티잔강(река Партизанская, Partizanskaya River)은 우루부(虞娄部)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지역에 포함된다.

아래는 완안부(完顔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하얼빈시 아성구 구글지도이다.

 

아청 구 ·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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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부(完顔部)는 금나라(金)를 세운 여진부(女真部)이다. 다만 지역적으로 볼 때 여진(女真)으로 불린 흑수 6부(黑水六部)에 해당되진 않는다.

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내용이다.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고려시대 사료 DB

처음에 어떤 의원이 있었는데 질병을 잘 치료하였으며 본래 고려인이었다. 애초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며, 그 성명도 역시 밝혀지지 않았는데, 여진의 완안부(完顔部)에 살았다. 목종(穆宗, 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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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의 원문과 번역이다.

初, 有醫者善治疾, 本高麗人, 不知其始自何而來, 亦不著其姓名, 居女直之完顔部. 穆宗時戚屬有疾, 此醫者診視之. 穆宗謂醫者曰, “汝能使此人病愈, 則吾遣人送汝歸汝鄕國.” 醫者曰, “諾.” 其人疾果愈, 穆宗乃以初約歸之.
乙離骨嶺僕散部胡石來勃菫居高麗·女直之兩間, 穆宗使族人叟阿招之, 因使叟阿送醫者, 歸之高麗境上. 醫者歸至高麗, 因謂高麗人, “女直居黑水部者部族日强, 兵益精悍, 年穀屢稔”. 高麗王聞之, 乃通使于女直. 旣而, 胡石來來歸, 遂率乙離骨嶺東諸部皆內附.
처음에 어떤 의원이 있었는데 질병을 잘 치료하였으며 본래 고려인이었다. 애초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며, 그 성명도 역시 밝혀지지 않았는데, 여진의 완안부(完顔部)에 살았다. 목종(穆宗, 盈歌) 때 친족[戚屬]이 질병이 있었는데, 이 의원이 진찰하였다. 목종이 의원에게 말하기를, “너가 능히 이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서 너의 고국으로 너를 돌려보내주겠다.”라고 하였다. 의원이 말하기를,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의 병이 과연 나았으므로 목종이 처음 약속한대로 돌려보내주었다.
을리골령(乙離骨嶺) 복산부(僕散部)의 호석래(胡石來) 발근(勃菫)이 고려와 여진[女直] 사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목종이 족인(族人) 수아(叟阿)를 시켜 불러오게 하고, 수아로 하여금 의원을 호송하여 고려 국경까지 돌려보내게 하였다. 의원이 돌아가 고려에 도착하여 고려인들에게 말하기를, “여진족으로 흑수부(黑水部)에 사는 부족은 날로 강성해져서 군대는 더욱 정예화되었으며 농사는 해마다 풍년이 든다.”라고 하였다. 고려의 왕이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여진에 사신을 통하였다. 얼마 후에 호석래가 귀부해왔으며 드디어 을리골령 동쪽의 여러 부족을 거느리고 모두 내부(內附)하게 하였다.

(金史)의 문장을 보면 완안부(完顔部)에 거주하던 고려인(高麗人) 의원의 발언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고려인(高麗人) 의원은 완안부(完顔部)에 거주하다가 고려(高麗)에 귀국한 후 여진족으로 흑수부(黑水部)에 사는 부족(女直居黑水部者部族)이라는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의 문맥으로 볼 때,

여진족으로 흑수부(黑水部)에 사는 부족(女直居黑水部者部族)은 고려인(高麗人) 의원 자신이 거주했던 완안부(完顔部)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즉, 이 문장을 풀이한 내 개인적인 해석은,

완안부(完顔部)는 본래 흑수말갈(黑水靺鞨) 계열의 말갈부(靺鞨部)내지는 흑수부(黑水部)에서 파생된 부(部)였지만 이 곳에 야라(耶懒)에서 파생된 여진족(女真族, 女眞族)들이 이주하고 거주하게 되면서

완안부(完顔部)는 여진화(女眞化)가 된 흑수부(黑水部)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래는 이전에 올린 글을 수정한 내용이다.

이전에 이 글을 올릴 때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여진(女眞)으로 흑수(黑水)에 살고 있는 자(女眞居黑水者)는 야라(耶懒)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었다.

하지만 금사(金史)의 내용을 교차 비교해 본 결과 이는 야라(耶懒)가 아니라 완안부(完顔部)로 해석된다.

 

여진족의 기원과 근거지 4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에서 제공하는 금사(金史)이다. 金史/卷1 - 维基文库,自由的图书馆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金之先,出靺鞨氏。靺鞨本號勿吉。勿吉,古肅慎地也。元魏時,勿吉有七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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