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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世安民 bagtur khan
부여국의 동명왕 스토리 분석 1 본문
고려 때 기록된 삼국유사 북부여(北扶餘)에 보면 부여국을 세운 인물은 해모수(解慕漱)라 기재되어 있고 역시 고려 때 기록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髙句麗本紀)에 보면 부여국(扶餘國)을 세운 인물은 해부루(解夫婁)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만 삼국사기의 행간의 내용을 따로 해석해 볼 때 외부세력인 해모수(解慕漱)가 해부루(解夫婁)를 몰아내고 부여왕(扶餘王)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렸었다.
하지만 중국의 문헌인 논형(論衡)과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부여국(扶餘國)을 세운 인물은 동명왕(東明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면,
위의 두 책이 고려 때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선 기록들이고 위의 책들이 등장한 연대로 볼 때 한나라(漢) 때 인물인 왕충(王充)이 논형(論衡)에 기재한 부여국(扶餘國)의 동명왕(東明王) 스토리가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재된 부여국(扶餘國) 동명왕(東明王)이나 건국자 스토리 보다는 원래의 동명왕(東明王)스토리에 더 가까울 거라고 본다.
따라서 먼저 논형(論衡)에 기재된 부여국(扶餘國)의 동명왕(東明王) 스토리를 먼저 다룬 후 삼국지(三國志)에 기재된 동명왕(東明王)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논형(論衡)에 대한 설명이다.
위의 두산백과 내용을 보면 논형(論衡)은 중국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저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논형(論衡)의 저자인 후한(後漢) 때의 인물 왕충(王充)에 대한 설명내용이다.
백과사전 설명에 보면 왕충(王充)은 기원전 27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삼국유사에 기재된 해모수(解慕漱)가 북부여(北扶餘)를 세운 시기는 대략 기원전 58~59년이다.
따라서 왕충(王充)은 부여국(扶餘國)이 등장한 후 31~32년이 지나고 한나라(漢)에서 태어난 인물이며 부여국(扶餘國) 초기에 활동한 인물인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중국 문헌 논형(論衡)의 내용이다.
부여국(扶餘國)을 세운 동명왕(東明王)에 대해 기록한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중국 문헌 논형(論衡)의 내용 중 일부이다.
부여국(扶餘國)을 세운 동명왕(東明王)에 대한 원문과 번역 내용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제공한 내용 그대로 올린다. ( )안의 파란색 글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北夷橐離國王侍婢有娠, 王欲殺之. 婢對曰:「有氣大如鷄子, 從天而下, 我故有娠.」. 後産子, 捐於猪溷中, 猪以口氣噓之, 不死. 復徙置馬欄中, 欲使馬藉殺之, 馬復以口氣噓之, 不死. 王疑以爲天子, 令其母收取, 奴畜之, 名東明, 令牧牛馬. 東明善射, 王恐奪其國也, 欲殺之. 東明走, 南至掩淲水, 以弓擊水, 魚鼈浮爲橋, 東明得渡. 魚鼈解散, 追兵不得渡. 因都王夫餘, 故北夷有夫餘國焉. 東明之母初姙時, 見氣從天下. 及生, 棄之, 猪馬以氣吁之而生之. 長大, 王欲殺之, 以弓擊水, 魚鼈爲橋. 天命不當死, 故有猪馬之救命. 當都王夫餘, 故有魚鼈爲橋之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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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北夷) 탁리국왕(橐離國王)의 시비(侍婢)가 임신하자 왕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시비를 죽이려했다는 건지 시비가 임신한 자식을 낙태 내지는 살해하려고 했다는 것인지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시비가 말하기를, “닭과 같이 기운이 창성한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아이를 낳아 돼지우리 안에 버렸더니 돼지들이 숨을 불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다시 마구간 안에 두어 말이 그를 밟아 죽이게 하려 하였으나 말들도 숨을 불어주고 죽이지 않았다. 왕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이 아닐까 의심하여 아이의 어머니에게 데려가도록 하여, 노축(奴畜)으로 삼았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여 우마를 돌보도록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았기에 왕은 〔동명이〕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 죽이고자 하였다. 동명이 도망쳐 남쪽으로 표수(淲水)에 가로막히자 활로 물을 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져 뒤쫓던 병사들은 건널 수 없었다. 부여(夫餘)에 도읍을 세우고 왕 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북이(北夷)에 부여국이 있게 되었다. 동명의 어머니가 처음 임신하였을 때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온 것을 보았다. 낳은 후 버리자 돼지와 말이 숨을 불어 그것을 키웠다. 장성하자 왕이 죽이고자 하였으나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었다. 그 천명이 죽는 것에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돼지와 말이 목숨이 구한 것이다. 부여에 도읍을 세워 왕 노릇을 함이 마땅하였기 때문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그를 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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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東明王)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곳을 논형(論衡)에선 탁리국(橐離國)으로 기재하고 있는데, 위략(魏略)에선 고리국(高離國)으로 기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고리국(高離國)으로 지칭하는 분위기다.
동명왕(東明王)의 스토리에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탁리국(橐離國)에서 왕을 모시는 시비(侍婢)가 아이를 가졌는데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죽이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죽이려는 대상이 시비(侍婢)인지 아니면 임신한 태아(胎兒)를 지칭하는 것이지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
논형(論衡)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자신과 시비(侍婢)가 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시비(侍婢)가 임신했기 때문에 죽이려했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죽이려한 대상은 임신한 시비(侍婢)와 태아(胎兒)였다고 본다.
그러자 시비는 탁리국왕(橐離國王)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닭이나 계란과 같은 기운(有氣大如鷄子, 從天而下)'이 태아의 아버지라고 밝힌다.
즉, 임신한 태아(胎兒)의 아버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從天而下)'라고 밝힘으로서 아이의 아버지가 신적인 존재임을 탁리국왕(橐離國王)에게 암시한다.
또한 탁리국왕(橐離國王)은 후에 아 아이를 동물들이 숨을 불어 넣으면서 살리는 모습을 보자 "하늘의 아들이 아닐까?(王疑以爲天子)"라고 생각했다.
즉, 탁리국왕(橐離國王)이 죽이려 할 때 시비(侍婢)가 한 말인 "하늘에서 내려온 계란 같은 기운(有氣大如鷄子 從天而下)"에 대해 탁리국왕(橐離國王)이 그 당시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비(侍婢)의 말처럼 신령한 아이라면 아이가 태어난 후 정상적으로 신성하게 키우거나 아니면 죽이려고 했던 심정을 그대로 이어갔다면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죽였어야 했는데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이도저도 못하고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렸다가 다시 마구간에 버린 후 말이 밟아 죽이기를 바랐다(欲使馬藉殺之).
즉, 직접 죽이지도 못하고 다른 대상으로 인해 죽기를 바랐다.
왜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처음에 작심한 것처럼 직접 죽이지 못하고 돼지우리, 마구간으로 유기한 후 동물에 의해 아이가 죽기를 기대했을까?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활을 잘 쏘자 탁리국왕(橐離國王)은 그 아이가 자신의 나라를 빼앗을까봐
두려워서 동명을 죽이려 했다(東明善射, 王恐奪其國也, 欲殺之).
아이는 노축(奴畜, 노예처럼 기르다라는 뜻이다)으로 자랐는데 노예 한 명이 활을 잘 쏜다고 나라가 빼앗길 일은 아니다.
그런데 탁리국왕(橐離國王)은 성장한 아이가 활을 잘 쏜다는 이유로 왜 자신의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이 아이(동명왕)를 죽이려했을까?
지금부터는 이 동명왕 스토리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탁리국은 주변의 어느 강력한 나라를 상국(上國)이나 종주국(宗主國)으로 받들고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탁리국이 받드는 상국의 국왕이 탁리국에 왔었고 탁리국왕은 자신의 시비에게 그 국왕의 시종을 들게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탁리국왕의 시비는 상국의 왕 아이를 임신했다고 본다.
탁리국왕이 시비에게 내 아이가 아니라는 뜻으로 죽이려고 하였으나 탁리국의 시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한 기운을 언급하며 누구의 자식인지 암시했고 탁리국왕은 그 아이가 실제로 자신이 받드는 상국의 왕 자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직접 죽이지 못하고 돼지우리나 마구간에 유기해서 돼지나 말의 발굽에 의해 죽게끔 방치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시비가 언급한 '하늘에서 내려온 기운'은 제사장이 국가의 지도자를 겸하는 제정일치사회에서 한 나라의 제사장 지위를 가진 군주를 뜻하며 시비는 바로 그러한 상국의 왕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탁리국왕은 정말로 상국 지도자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비도 살려두고 그 아이도 낙태나 살해하지 못하고 살려둔 것이다.
다만 탁리국왕 자신이 직접 죽이진 못하고 유기를 하여 돼지우리나 마구간에 둠으로서 동물들이 그 아이를 죽이게 끔 미필적 고의로 살해하려했던 것이라고 본다.
이 당시만 해도 탁리국왕은 시비가 낳은 아이가 완전히 상국의 왕 아들일지 아니면 시비가 다른 남자를 통해 낳은 아들일지 정확히 판단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탁리국왕이 아이를 돼지우리와 마구간에 버렸는데 동물들이 아이에게 숨을 불어넣어 살아났다는 것은
결국, 시비가 언급한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한 기운의 아들이 바로 그 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신화적인 표현이므로 실제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그 아이가 자라자 하인(奴畜)으로 두었는데 그 아이가 뛰어난 명궁(善射 선사)의 능력을 보여주자 탁리국왕이 자신의 나라가 빼앗길까 두려워서 장성한 그 아이(동명왕)을 죽이려했다는 것은 장성한 동명이 바로 탁리국왕이 모시던 상국의 지도자와 같은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상국의 지도자는 뛰어난 명궁(善射 선사)이었을 것이다.
즉, 단순히 자신의 하인(동명)이 활 솜씨가 뛰어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하인으로 부리는 동명이 바로 상국의 지도자 아들임을 확인한 순간인 것이고
만일 동명이 상국의 지도자나 상국과 서로 결탁을 해서 자신의 나라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동명을 죽이려 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내가 위에서 말씀드린 견해에서 탁리국왕이 받드는 상국은 어떤 나라이고 어느 지역일까?
탁리국은 현재 중국 치치하얼의 부유현에 있었던 나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견해론
탁리국왕이 상국으로 받들던 나라와 지역은 탁리국의 북쪽 지역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으며 어쩌면 탁발선비(拓跋鮮卑)이거나 탁발선비(拓跋鮮卑)와 인접한 선비(鮮卑)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말씀드리겠다.
아래는 옛 탁리국(橐離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흑룡강성 치치하얼시 부유현(富裕县)의 구글지도이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에 대한 설명이다.
두산백과의 설명을 보면 진수(陳壽)는 진나라(晉)의 학자이며 그의 생존연대는 서기 233년에서 287년인 것을 볼 수 있다.
이 삼국지에서도 부여국을 세운 동명왕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동명왕 스토리를 직접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위나라(魏)의 낭중(郞中)이었던 어환(魚豢)이 지은 책인 위략(魏略)에 기재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다루고 있다.
아래는 두산백과에서 설명하는 어환(陳壽)이 지은 위략(魏略)에 대한 설명이다.
위의 두산백과를 보면 위략은 서진(西晉) 무제(武帝) 태강(太康) 연간(280~289)에 위나라(魏)의 낭중(郞中)이었던 어환(魚豢)이 지은 책으로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논형(論衡)을 기록한 왕충(王充) 이 태어났을 때 보다는 대략 307년에서 316년 후에 기록된 책이며 왕충(王充)이 동명왕(東明王)을 기록했을 때보다는 대략 270년 후에 기록된 동명왕(東明王) 이야기로 보인다.
위략에 기재된 동명왕(東明王) 이야기는 논형(論衡)에 기제된 동명왕(東明王) 이야기와 강의 명칭 정도에서 차이가 날뿐 전체적으로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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