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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씨, 문수보살 그리고 청나라 황제 본문

고려 태조 왕건과 청 태조 누르하치

고려왕씨, 문수보살 그리고 청나라 황제

박지원( baghatur khan) 2023. 1. 25. 13:54

아래는 이전에 올려드린 글에서 참고자료로 올린 국가급 문화유산총람(황매희 출판)에 기재된 팔선전설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국가급 문화유산총람에 기재된 내용 중 일부이다. 그대로 올린다.

도교사원에서는 팔선을 모시는 장소 또는 팔선궁(八仙宮)이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연화(年画), 자수(刺繡), 자기(瓷器), 화등(花燈) 및 희극(戲剧) 등에 등장하고 있다.
또한 팔선이 서왕모(西王母)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팔선축수(八仙祝壽)라는 용어가 장수를 기원하는 소재로 전해 왔으며, 취팔선(醉八仙) 또는 팔선축수 등이 상연되고 있다.
팔선은 항상 같이 지내며 팔선이 동해를 건너며 용왕과 충돌하는 고사 팔선과해(八仙過海)라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위의 팔선에 대한 세 가지 내용은 고려사에도 등장하며

팔선(八仙)이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고 서왕모가 팔선을 접대하는 내용, 팔선(八仙)이 동해를 건넌 내용은 이미 이전에 올린 글에서 말씀드렸다.

세 가지 내용 중 나머지 하나인 도교에서 팔선(八仙)을 모신다는 팔선궁(八仙宮)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고려사 내용이다.

아래는 위의 고려사 내용의 일부이다.

妙淸又說王, 築林原宮城, 置八聖堂于宮中, 八聖,
一曰護國白頭嶽太白仙人, 實德文殊師利菩薩, 二曰龍圍嶽六通尊者, 實德釋迦佛, 三曰月城嶽天仙, 實德大辨天神, 四曰駒麗平壤仙人, 實德燃燈佛, 五曰駒麗木覓仙人, 實德毗婆尸佛, 六曰松嶽震主居士, 實德金剛索菩薩, 七曰甑城嶽神人, 實德勒叉天王, 八曰頭嶽天女, 實德不動優婆夷, 皆繪像.
묘청이 또 왕을 설득하여 임원궁(林原宮)에 성(城)을 쌓고 궁 안에 팔성당(八聖堂)을 설치하였는데, 팔성(八聖) 중
첫째는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문수사리보살(護國 白頭嶽 太白仙人 實德文殊師利菩薩),
둘째는 용위악 육통존자 실덕석가불(龍圍嶽 六通尊者 實德釋迦佛),
셋째는 월성악 천선 실덕대변천신(月城嶽 天仙 實德大辨天神),
넷째는 구려 평양선인 실덕연등불(駒麗 平壤仙人 實德燃燈佛),
다섯째는 구려 목멱선인 실덕비파시불(駒麗木覓仙人 實德毗婆尸佛),
여섯째는 송악 진주거사 실덕금강색보살(松嶽 震主居士 實德金剛索菩薩),
일곱째는 증성악 신인 실덕늑차천왕(甑城嶽 神人 實德勒叉天王),
여덟째는 두악 천녀 실덕불동우파이(頭嶽 天女 實德不動優婆夷)이며, 모두 화상을 그렸다.
묘청은 왕을 설득하여 임원궁(서경[西京]에 위치해 있다)에 성을 쌓고 궁 안에 팔성당(八聖堂)을 설치했다(妙淸又說王, 築林原宮城, 置八聖堂于宮中)는 내용이 보인다.

 

팔성당(八聖堂)을 설치했다는 내용 이후 여덟 명의 선인(仙人)과 거사(居士), 신인(神人), 천녀(天女)라는 신적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팔성당(八聖堂)은 팔선(八仙)을 모시는 팔선궁(八仙宮)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위의 고려사 내용의 일부이다.

安等又奏, “請祭八聖.”
知常撰其文曰, “不疾而速, 不行而至, 是名得一之靈, 卽無而有, 卽實而虛, 盖謂本來之佛. 惟天命, 可以制萬物, 惟土德, 可以王四方. 肆於平壤之中, 卜此大華之勢, 創開宮闕, 祗若陰陽, 妥八仙於其閒. 奉白頭而爲始, 想耿光之如在, 欲妙用之現前. 恍矣! 至眞雖不可象靜, 惟實德卽是如來, 命繪事以莊嚴, 叩玄關而祈嚮.” 其飾誣說如此. 有武人崔逢深, 與知常密契, 師事妙淸, 嘗上言, “陛下欲平治三韓, 則舍西京三聖人, 無與共之.” 卽指妙淸·壽翰·知常也.
김안 등이 또한 아뢰기를,
“청하건대 팔성(八聖)에게 제사를 지내십시오.”라고 하였다.
정지상이 제문(祭文)을 지어 이르기를,
“달리지 않아도 빠르며 가지 않아도 도달하니, 이는 득일(得一)의 신령이라 부르고, 곧 없으면서 있고 실하면서 비어있는 것을 대개 본래(本來)의 부처라 일컫습니다. 오직 천명(天命)만이 만물(萬物)을 제어할 수 있고, 오직 토덕(土德)만이 사방(四方)의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마음대로 평양성 가운데 이 대화(大華)의 지세를 골라 궁궐을 짓고 삼가 음양(陰陽)의 이치를 따져 그 가운데 팔선(八仙)을 모십니다. 백두(白頭)를 받들어 시초로 삼으니 밝은 빛이 여기에 있는 듯하고 신묘한 현상이 눈앞에 나타나려 합니다. 황홀하도다! 지극한 진리는 비록 그 고요한 모습을 형상화 할 수는 없으나 오직 실덕(實德)은 곧 여래(如來)이니 명하여 장엄하게 그름을 그리게 하고 현관(玄關)을 두드려 흠향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무인(武人) 최봉심(崔逢深)이란 자가 정지상과 은밀히 약속하고 묘청을 스승으로 섬겼다. 일찍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삼한(三韓)을 평안하게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서경의 세 성인(聖人)을 버려두고 더불어 함께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즉 〈세 성인이란〉 묘청·백수한·정지상을 가리킨 것이다.

위의 내용 중에서도

팔성(八聖)에게 제사를 지내십시오(祭八聖)라는 내용과

팔선(八仙)을 모십니다(妥八仙)라는 내용이 등장하듯이,

팔성당(八聖堂)은 바로 도교에서 팔선(八仙)을 모신다는 팔선궁(八仙宮)에 해당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먼저 올려드린 고려사 일부의 내용을 보면,

도교의 개념인 선인(仙人)과 불교의 개념인 보살(菩薩)이 함께 기술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대상은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문수사리보살(護國 白頭嶽 太白仙人 實德文殊師利菩薩)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의 고려사 내용을 보면 고려의 서경 출신 정지상은 제문에서,

백두(白頭)를 받들어 시초로 삼으니(奉白頭而爲始)라며,

백두악(白頭嶽)을 팔선궁의 여덟개의 신령한 악(嶽 큰산) 중에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음을 제문에서 밝힌다.

여기서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백두산(白頭山, 청나라에선 장백산[長白山]으로 칭한다)이 고려 왕건의 조상과 관련된 산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고려왕과 고려 왕씨의 시작을 알리는 산이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위의 고려사에서,

묘청은 이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을 상징(or관할)하는 신령한 존재는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만주실리보살[曼殊室利菩萨], 만주사리보살[曼珠师利菩萨])임을 밝힌다.

또한 그 앞에 태백선인(太白仙人) 역시 백두산(白頭山)을 상징하는 신령한 존재임을 밝힌다.

이전에 말씀드린 고려사의 내용에서도,

당숙종이 송악에 왔을 때 팔진선과 마하갑이라는 도교와 불교 용어가 함께 등장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도 도교의 태백선인(太白仙人)과 불교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함께 등장한다.

역시 내가 이전에 올려드린 글에서 도교의 선인(仙人)은 아직 천상에 승천해 천상의 신이 되진 못했다는 점에서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불교의 보살(菩薩)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었다.

결국, 고려 왕과 고려 왕씨의 발상지는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이며,

그 백두산(白頭山, 長白山)의 신령한 존재는 도교신앙에선 태백선인(太白仙人)이고, 불교신앙에선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만주실리보살[曼殊室利菩萨], 만주사리보살[曼珠师利菩萨])이라는 것을 묘청을 통해 밝힌 것이다.

비록, 팔성당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묘청이 밝힌 것이지만 실제론 고려왕의 내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등장한 편년통록과 편년강목에서도 기재된 백두산이 고려왕씨(白頭山, 청나라에선 장백산[長白山]으로 칭한다)의 발상지라는 내용을 인정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아래는 중국유기문고의 만주원류고 권1 원문이다.

아래는 만주원류고 원문 내용이다. 그대로 올린다.

是为国家开基之始以国书考之
满洲本作满珠二字皆平读
我朝光启东土每岁西藏献丹书皆称曼珠师利大皇帝
翻译名义曰曼珠华言妙吉祥也又作曼殊室利大教王
经云释迦牟尼师毗卢遮那如来而大圣曼殊室利为毗卢遮那
本师殊珠音同室师一音

아래는 위의 만주원류고 원문을 번역한 내용이다. 흠정만주원류고(남주성 역, 글모아 출판)에 기재된 남주성 박사의 번역을 그대로 올린다.

이것이 바로 처음에 나라의 기틀을 연 것으로 국서를 고찰해 보면
만주(满洲)는 본래 만주(满珠)라고 했었고, 두 글자는 모두 평성으로 읽는다.
우리 왕조가 빛나는 동쪽 땅에서 새로 나라를 열자,
매년 서장(지금의 티벹이다)에서 단서를 보냈는데,
그 문서에서 우리 황제를 만주사리대황제(曼珠师利大皇帝)라고 불렀다.
그 이름의 뜻을 번역하면 만주(曼珠)인,
중국말로 '묘하고 길하고 상서롭다'는 뜻이며,
또는 만주실리대교왕(曼殊室利大教王)라고도 적었다.
경에는 "석가모니사(释迦牟尼师 석가모니의 스승)는 비로차나여래이다"라고 하였으니, 대성만주실리가 곧 비로차나이다.
본래 사(师), 수(殊), 주(珠)는 모두 발음이 같고 실(室)과 사(师) 또한 같은 것이다.

위의 만주원류고의 내용은 이전에도 언급드렸었다.

이 내용은 만주원류고의 '부족', '만주'에서 두 번에 걸쳐서 언급한다.

한 번은 만주원류고의 편저자들인 한림원 학자에 의해서,

또 한 번은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글에 편찬자들이 해설을 달면서 언급된다.

그 만큼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주(满洲)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인데 만주(满洲)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으며

하나는 만주(Manju)란 후르카부족의 시조 '부쿠리용숀'이 세운 나라의 이름인 만주나라(Manju nation)에서 파생된 만주(Manju)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만주(满洲 [mănzhōu])란 바로 만주실리(曼殊室利, 문수사리[文殊師利])의 원래 인도어 발음인 Mañjuśrī(만주슈리)를 한자로 음차표기 할 때 만주사리(曼珠师利 [mànzhūshīlì])라고 표기한 만주(曼珠 [mànzhū])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위의 만주원료고에선

만주(满洲 [mănzhōu])라는 단어의 또 하나의 유래인 만주사리(曼珠师利 [mànzhūshīlì])에 대해서 밝히면서,

티벹의 달라이라마도 청나라 황제를 만주사리대황제(曼珠师利大皇帝, 문수사리대황제[文殊師利大皇帝]) 인정했음을 밝힌다.

고려 왕건의 조상과 관련된 고려 왕씨의 발상지인 백두산(고려사에선 백두악[白頭嶽]이라고 표현한다)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만주실리보살[曼殊室利菩萨], 만주사리보살[曼珠师利菩萨])의 관할임을 고려사의 팔성당 기사에서 기재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견해지만,

역시 고려 왕건의 후손으로 보이는 청나라 황제 역시 만주사리대황제(曼珠师利大皇帝)임을

즉, 고려사에 기재된 고려식으로 표기하면 문수사리대황제(文殊師利大皇帝)임을 밝힌 것이다.